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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Dec 30. 2021

2호의 삶

빌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소동물의 이야기


오늘은 별로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새들 중 한 마리, 2호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건, 페이스북의 담벼락 '10년 전 오늘' 코너에 새들의 당시 사진이 떴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 사진 옆에 '1호가 감수 분열했다'라고 써놨다. 뭔가 이과적인 감성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



 이 사진은 2011년 12월 29일, 즉 정확히 10년 전의 오늘 찍은 사진이었다. 내가 2호를 우리 집에 데려왔던 날은 2011년의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3일 정도의 관찰 기간을 거쳐서야 나는 페이스북에 비로소 내가 두 번째 '새' 식구를 맞이했음을 선포했던 것이다.



 평소에 나를 아는 지인이나, 우리 집 새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내게 이렇게 물어오곤 한다.



"너는 왜 맨날 1호 얘기만 해? 새 두 마리 키우는 거 아냐?"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독한 편애쟁이이다. 비록 새 두 마리와 살고 있지만, 내 모든 관심과 애정은 오직 1호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도 오늘만큼은 이상하게 2호가 눈에 밟힌다. 1호가 11년이나 살아서 그렇지(2010년 2월생), 사실 2호도 1호랑 1년 반 정도의 차이밖에(2011년 10월생) 안 난다. 그러니까, 2호의 나이는 10살. 엄밀히 말하자면 2호도 평균 수명은 이미 훌쩍 넘긴 지 오래라는 것이다.


 벌써 10년이라니. 그놈의 '10'이라는 숫자가 참 기분을 묘하게 한다. 그동안 1호님과의 이야기는 종종 했었으니, 이번에는 늘 나의 지독한 편애의 베일에 가려져 왔던 2호를 조명하는 글을 한번 써볼까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독사진 찾느라 사진첩을 정말로 한참 뒤져야 했다(...) 대부분이 1호와 함께 찍힌 사진이기 때문에!






 2호. 우리 집 구성원 중에서 그의 캐릭터를 정해 보자면 그것은 아마도 '빌런'일 것이다. 1호와 나의 꽁냥꽁냥한 세계관 속에서 그는 언제나 조금 엇나가 있었고, 때로는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빌런 캐릭터들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흑화'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이 있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그와의 첫 만남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발단 : 첫 만남


1호, 2호.

둘의 첫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1년의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대학 졸업반이 되며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될 1호의 정서를 염려하여 그의 친구 겸 배우자를 섭외하고 있었다.


문제는, 1호가 사람의 손을 따르는 애완조였기 때문에, 짝으로 들이게 될 1호의 친구 또한 가급적 사람의 손에 이유식을 받아먹고 커서 인간에게 두려움이 없는 애완 조이길 바랬다는 것이다. 보통 애완조의 경우에는 생후 2~3개월 쯤의 나이에 분양을 해서 새 주인에게 적응을 시켜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부분 털갈이를 하지 않은 어린 새이므로 성별을 정확하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털갈이를 마치려면 6개월은 지나야 하는데 그때 입양하기는 머리가 커서 분양하기 늦고.


여름에 이미 한 마리를 추가로 입양하려고 했었는데, 그 아이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에게 너무 집착했다. 그래서 1호가 질투에 휩싸여 스트레스를 받아하길래 다른 집으로 다시 재입양을 보내야 했다. 2호는 그 후에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였다.


아직 털갈이도 안 한 까까머리 애기 시절.


반려조 카페에서 2호의 사진을 처음 봤다.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손에 이유식을 먹으면서 컸고,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덥석 그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털갈이를 전부 마치고 성조가 되기 전의 문조의 성별을 판별하는 방법은 그나마 '울음소리'였기 때문이다. 울음소리를 노래처럼 내면 수컷이고, 울음소리가 거의 없고 뾱뾱 조용하게 울기만 하면 대체로 암컷인 경우가 많았다.


기왕 데려올 거면 암컷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입양을 결정한 날. 입양을 보내시는 분이 지방에 살고 있어서, 고속버스 택배(*숨구멍을 뚫은 상자에 핫팩과 베딩을 넣어 새와 함께 포장한 다음, 고속버스 운전기사님 옆자리 조수석에 벨트를 채워서 올라오는 방식)로 2호를 받기로 하고 평소 1호가 쓰는 새장과 똑같은 크기의 새장을 주문했다. 그렇게 새 식구를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새장에 뚜껑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닌가?


아쉬운 대로 대충 뚜껑 쪽을 담요로 덮어두고 고속버스터미널로 2호를 데리러 갔다. 2호를 태우고 서울로 올라온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쪼르르 운전석으로 달려가 자그마한 상자를 받았다. 추운 날씨에 혹시라도 2호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신속하게 차로 옮겨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1호, 2호 둘이 첫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벽 하나를 두고 수줍은 첫 대면...



그날 밤, 나는 잠시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을 했고 집에 돌아온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2호가 두꺼운 담요가 덮여 있던 새장 천장을 뚫고 1호의 새장에 달라붙어있던 것이다. 떼어서 다시 새장에 넣어도,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2호는 살금살금 담요를 빠져나와 1호의 새장에 답삭 붙었다.


 아마도 둘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2호는 1호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것 같다. 그는 마치 알에서 처음 깬 병아리처럼 1호를 보자마자 그에게 단단히 각인되어 버렸다. 처음 우리 집에 들어와서 1호를 봤던 그 순간부터, 2호의 세계는 전부 1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날부터 2호의 1호에 대한 미친 사랑의 직진이 시작되었다.



자기 새장을 똑같이 옆에 클론처럼 만들어줬는데도 굳이 1호의 새장과 둥지에서 떠나지를 않는 2호의 집착..




전개 : 본투비 껌딱지


전 주인이 직접 이유식을 먹여 키워서 사람의 손을 어느 정도 따를... 것만 같았던 2호는 애완조인 것치고는 처음부터 인간인 나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첫날부터 그랬듯이 그는 마치 껌딱지처럼 1호만 졸졸 쫓아다녔다. 1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갔고, 어디든 몸 한구석이라도 붙이고 앉아야 안심이 되는 듯이 굴었으니까.





초반에는 1호도 그런 2호를 내버려 두었다.


문조는 귀여운 생김새와는 달리 성질머리가 장난이 아니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새인지라 (악마조..) 자기가 선택한 반려가 아니면 옆에 몸을 붙이게 두지 않는 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호가 이렇게 초반에 치대는 것을 그 지랄 맞은 성격을 가진 1호가 가만 냅둔 것은.. 나름 어린 개체에 대한 배려였나?(아이언맨도 스파이더맨이 치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만 받아주지 않았나...) 그렇지만, 그렇다면 그 해 여름에 데려 왔던 다른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치를 떨 정도로 하악대면서 싫어했던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나마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하나였다. 2호는 사람인 나에게 데면데면했으며, 오직 1호에게만 관심을 쏟았다. 그러니 1호 입장에서는 굳이 질투를 느낄 만한 상황도 아닌 것이었다. 게다가 2호가 그렇게 치대도 그럭저럭 대부분 받아주는 것을 보면, 2호는 나름 1호의 허용 범위(?) 내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심지어는 이렇게 뽀뽀도 해주고 애인끼리만 한다는 '긁긁'도 해줬다.



혹시라도 여름에 데려왔던 아이처럼 곧 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될까 봐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둘 사이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렇게 비로소 2호는 우리 집 식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 이 상황에서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아직은 미지수의 영역인 2호의 성별이 하루 빨리 암컷으로 판명 나서 둘이 무탈하게 '짝'이 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거의 20살 차이..




위기 :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런데 꼭 이런 순간에, 반전이 하나 튀어나오지 않던가.


그렇다.

2호는 사실... 남자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호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였다. 전 주인의 집에서는 울지 않고 조용하다던, 작은 울음소리만 뾱!뾱! 하고 낼뿐이라던... 애조인들의 분류 기준에 의하면 암컷일 확률이 70~80%는 되어 보였던 2호가...


1호를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얼핏 듣고 1호가 심심해서 노래를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귀 기울여 보니 소리가 좀 더 굵고 컸다. (2호는 대만 혈통으로, 1호에 비해 전반적으로 체구가 다부지고 몸도 목소리도 더 힘차다). 귓구멍을 파고드는 강렬한 목소리에 '뭐지, 이 늠름한 느낌은...?'하고 돌아보니... 아직 털갈이도 하지 않은 2호가... 신나게.. 1호의 노래를 판박이로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1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는 구애 춤까지 어설프게 추면서!


문조 수컷들은 고유의 노랫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암컷을 유혹하는 구애의 춤을 춘다. 그렇기에 불확실하게나마 암수 구분을 할 때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여부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조용하다던 애가 노래를 부르다니. 그것도 같은 수컷인 1호에게 수컷으로서 열렬하게 구애하기 위해서라니!


암수 한쌍을 정답게 키워보려던 내 가족계획은 그렇게 1호의 것을 쏙 빼닮은 2호의 우렁찬 노랫소리와 함께 허망하게 물 건너가 버렸다.


남자였다니.... 부들부들



1호가 나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2호의 성별을 알았던 것인지 그 여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둘이 꼭 붙어 지내던 시기가 그들의 전체 동거 기간에 비해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뭐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둘 사이는 첫 만남 후 1달 정도 뒤부터 미묘하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1호에게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1호의 주변만을 맴돌고, 1호의 모든 것을 손민수하고 싶어 하는 2호의 애틋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1호는 그런 2호에게 흥미를 잃었는지 금세 시큰둥해졌다. 더 이상 2호가 자신의 몸에 몸을 바싹 붙이는 것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에는 항상 이만큼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부지런히 흘러 2호가 털갈이를 마친 성조가 되었을 땐, 2호는 덩치도 힘도 목소리도 1호보다 큰 완연한 '수컷'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2호는 1호를 힘으로 누르려면 얼마든지 누를 수 있었음에도 1호의 평상시 서열만큼은 존중하고 지켰다. 아마 우리 집에 처음 도착해서 1호를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 1호는 2호에게 '멋진 으른 수컷'으로 팍 각인이 되어버린 듯했다. 하긴, 인간으로 치면 20살이나 연상 아닌가. 2호는 1호가 앙칼지게 굴어 좀처럼 예전처럼 가까이 붙어 치대지 못하는 것에 침울해하면서도, 마치 위성처럼 1호의 곁을 빙빙 맴돌았다. 그 미친 노래를 부르면서..


문제는, 여전히 1호만 보면 그 미친 사랑의 노래를 불러댄다는 것이었고 그 간절한 마음에 1호가 보답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1호는 2호의 관심을 무시하고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았지만 2호는 1호를 '짝'으로 대했다. 먹을 것을 뱉어주고, 구애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호시탐탐 올라타려고(!) 했다. 본인이 수컷들 고유의 노래인 1호의 노래를 손민수했으니, 자연히 1호가 알을 낳을 수 없는 수컷인 것도 분명히 알 텐데 말이다. 2호가 옆에서 눈치를 보건 말건 난리부르스를 추건 말건 고고하게 마이웨이를 가는 1호의 모습을 시무룩하게 쳐다보며 2호는 점점 가슴속에 한(욕구불만..?)을 쌓아갔던 것 같다.





절정 : 농락과 흑화


근데 1호도 참 나쁜 남자(..)였던 게, 진짜 가끔가다 한 번씩은 사각지대에서 어장 관리하듯이 그를 챙겼다는 것이다. 1호는 2호에게 전혀 틈을 주지 않으면서 가끔씩 변덕스러운 다정으로 대했다.


예를 들어 새들은 서로 뺨을 긁어주는 행위를 애정의 척도로 여긴다. 애정 표현을 할 수 있는 부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모든 '느끼는' 부위가 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잉꼬들이 서로 부리를 써서 뺨을 긁어주는 것이다. 1호는 언제든지 2호에게 다가가 이 '볼 긁긁' 스킨십을 할 수 있었지만, 2호는 1호에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다가갈 때마다 1호가 앙칼지게 으르렁대며 접근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1호의 뺨을 긁어주고 만져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이 사는 인간, 나뿐이었다.


차라리 한결같이 냉랭했으면 좋았을 것을, 가끔씩 불쑥 내비치는 변덕과도 같은 친절은 2호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실제로 어느 날 2호가 신나게 날아다니다 옷장의 경첩에 발이 걸려 발톱이 빠졌을 때, 1호는 동물병원에 다니는 2호를 부쩍 걱정하여 잘 대해주기도 했었다.



이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연출이란 말인가



그리고 가끔 2호가 혼자 처박혀 있으면 찾아가서 같이 있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1호는 결정적으로 2호가 가장 바라는 소원을 이뤄주지 못했다. 그의 '짝'이 되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1호가 원하는 애정은 날지 못하는 찐따 새이자, 거대한 횃대이자, 놀이 상대이자, 볼 긁긁도 해주고 밥도 주는 - 즉, 인간 집사인 '나'를 통해 충분히 충족이 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1호의 꽁냥꽁냥 긁긁 현장....다 지켜보고 있다...



2호는 이 집의 인간이자 그의 새 주인인 내게 애정을 품기도 전에 1호에게 지독히 각인되었고 그런 2호에게 있어서 나는 그렇게 탐탁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집에 사는 사이지만 1호를 두고, 종족 간의 격차를 뛰어넘은 미묘한 애정의 경쟁을 하게 된다. 자연히 2호와 나는 서로 데면데면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2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 1호를 그에게 보여줬던 순간부터, 그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이 글을 쓰기 위해 2호의 독사진을 한참이나.. 거의 1시간, 2시간 동안 지난 10년 간의 사진첩을 뒤져 찾아내야만 했다. 내게 2호의 독사진이 별로 없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이가 살갑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2호는 1호가 있는 곳만 졸졸 쫓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1호가 내게 와서 한참 머무르면 그도 어쩔 수 없이 내게 와서 같이 머무르는 것뿐이다.


 

'1호가 왔기 때문에 나도 왔을 뿐'이라고... 온몸으로 어필 중인 2호


즉, 2호는 1호가 내 주변에 있을 때만 마지못해 내게 온다. 1호가 없을 때는 내 근처를 얼쩡거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의 독사진을 찍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이 집에서 2호는 조금 독특한 포지션을 차지하게 되었다. 첫눈에 반한 상대인 1호와는 그가 원하는 애정을 주고받지 못했으며, 공간의 지배자(..)인 인간과도 친해지지 못했다. 살갑게 굴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도망을 다니기까지 했다. 자연히 나도 2호에 대해서는 그냥 '같이 사는 새'나 '1호의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큰 애정을 쏟지는 않게 되었다. 왜냐면, 서로 뭘 주고받을(?) 만한 감정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2호에겐 긁긁도 해준 적이 없다. 내 손을 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집 안에서 그에겐 오직 1호뿐이었지만, 1호는 그런 그의 애정을 처절하게 무시하고 거부했다.


돌아보는 타이밍 안맞...마치 평행선 같은 그들의 마음.jpg



그런 상황이 1~2년 정도 되었을까.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이 집구석에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겉돌면서 애정 결핍이 MAX에 다른 그는 점점 흑화하기 시작했다. 체급 차의 유리함을 깨닫게 된 것인지, 내가 없거나 안 보이는 곳에서 1호를 한 대씩 쥐어박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는 나와 1호가 서로 붙어서 꽁냥 거리고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와 내 손가락을 부리로 콕콕 찍으며 괴롭혔다.


1호가 먹고 있는 것이 있으면 와서 뺏어 먹고, 1호가 욕조에서 씻고 있으면 쫓아내고 자기가 씻고, 1호가 맘에 드는 공간이 있어 자리 잡고 있으면 그 영역을 뺏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며 편치 않게 굴었다.



1호가 애지중지 꾸며둔 아지트 위에 올라가 협박하는 2호. 그간 본인이 퍼부은 사랑을 보답받지 못했다고 해서 이렇게 스토커처럼 굴다니!



물론 1호는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번 호락호락하게 지지 않고 호통쳐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타고난 힘으로 1호를 괴롭히고, 나를 미워하고, 1호의 휴식을 방해하는 2호가 달갑지 않아 졌다. 1호는 아기 때부터 유난히 작고 약한 개체였는데 반해 대만계 외국 혈통을 이어받은 2호는 뼈대도 굵고 힘도 남달랐다. 아마 둘이 몸무게 차이도 5g~7g 이상은 날 텐데 들이박고 괴롭히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애정결핍으로 인해 흑화한 2호는 이 집에서 빌런이 되었으며 그와 나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게 된 것이다.





결말 :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그렇게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지지고 볶는 사이 세월은 부지런히 흘렀다. 처음 만난 날 이후로 10년이 지났고, 1호의 노쇠해짐이 올해 들어 급격해짐에 따라 결국 둘 사이의 서열은 최근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원래 둘은 높이가 2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새장에서 각자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함께 살고 있었다.



1호가 비록 2호보다 나이도 한 살 더 많고 체구도 더 작고 약하지만, 그럼에도 지난 10년 중 대부분의 날들을 수컷 두 마리가 한 새장에서 동거하며 나름대로의 서열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1호의 성질머리가 더러웠기 때문이다. (1호는 한창 때는 제 몸집의 몇 배는 큰 앵무와도 두려움 없이 싸워서 이기곤 했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둘 사이의 서열은 그럭저럭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1호가 급격히 노쇠해지자 둘 사이에 자리 잡았던 미묘한 평화에 필연적인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1호는 다리 힘이 약해져 높은 횃대에서 떨어지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을 2호가 보고 노렸다가 1호가 따뜻하고 좋은 자리에서 쉬고 있으면 가서 쪼아서 떨어트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응집된 한이 매 순간 노쇠한 1호를 향해 분출되고 있었다. 2호는 이제 완전히 자신감까지 붙어 있었다. 그나마 내가 보고 있는 데서 그랬으면 차라리 수습이라도 빨리 할 수 있는데,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도 둘이 붙어서 아웅다웅할 생각을 하니 무척 불안해졌다.


결국 나는 1호, 2호가 어릴 때 지냈던 작은 새장을 다시 꺼냈고, 둘을 각각의 새장으로 분리시켰다.


어쩌다 보니 1호 2호 위치가 반대로 들어가 있는데 아마 2호가 질투가 나서 잠시 집을 뺏었을 때 찍은 것 같다.



그렇게 넓은 새장에서 서열 1위로 군림하던 1호는 둘이 젊은 날을 영위하던 거대한 새장의 서열 1위 자리를 2호에게 선위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은 집으로 돌아가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2호의 집착과 스토킹 행각이...아직 종결을 맞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맨날 이렇게 붙어서 1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 본다.. 시선 고정 너에게...!


새장을 분리해줘도 계속해서 1호의 주변을 맴돌고, 모든 것을 지켜보며, 어떻게든 접근하려고 기회를 노리며 하루를 보내는 2호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이 미친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2호는 본인도 사람으로 치면 100세 정도 되는 노인이면서도 아직도 건장한 모습으로 1호를 노린다. 지난 세월 보답받지 못한 사랑과, 이 세계관 속 창조주인 인간의 애정을 듬뿍 받는 1호에 대한 약간의 질투 어린 마음과, 비뚤어진 애정결핍 등이 폭발한 그는 이제는 1호가 가진 모든 것이 탐난다. 늙고 기력이 쇠하여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작은 집조차도.



가끔은 이렇게 얄밉게 1호의 둥지를 강탈하며 뒤바뀐 서열을 과시하기도..


그저 형을 너무 좋아해서, 형이 하는 건 다 좋아 보여서, 나도 가지고 싶어서, 그가 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는 한 마리의 작은 새는 그렇게 이 집구석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빌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빌런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을 요약하자면, 뭐, 그런 얘기.


요즘은 거울 앞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2호.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날.. 사랑하겠어....!






2호와 함께 살게 된 이래 내가 2호에 대해서 이렇게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그에 대해 회고해본 것은 아마도 거의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12월 29일에 쓰기 시작한 글이 하루를 넘겼으니까.


지인들은 이런 나를 보고 무슨 바람이 불었냐 난리겠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이런 날도 있는 법 아닌가. 적어도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래, 2호도 한번 챙겨줘야지' 하고 자각하게 되는 시기가. 다소 변덕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아예 이런 것조차 안 느끼면 그게 더 문제가 아닐까?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는 아니어도 그래도 우린 10년이나 같이 살았단 말이다.


날이 갈수록 야위어가고 기운이 빠져가는 1호와는 달리, 2호는 10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건장하다. 그런 만큼, 언젠가는 우리 둘만 남겨진 세상에서 1호의 부재를 함께 견뎌야 할 날도 올 것이다. 그때는 우리의 관계성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에게도 나름의 역사는 있었다고. 10주년을 맞이하여 괜히 한번 기록해보고 싶었던 그런 변덕.



가장 최근에 찍은 둘 사진. 우연찮게도 촬영한 날짜가 2021.12.26이다.



+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처음엔 눈에 띄게 1호를 예뻐하고 챙기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왜 2호는 예뻐하지 않냐'며 역성을 든다. 그러나 조금 시간을 보내고 갈 때는 모두 1호만 기억한다. 그만큼 1호가 매력 있고 하는 짓이 예쁘다. 나중에 내게 새들 안부를 물을 때도 1호의 안부만 물어본다. 그러니까, 내가 1호의 매력에 감겨서 2호를 조금 덜 예뻐하는 것은 어쩌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1호는 완전 사랑하고, 2호 또한 사.. 사.. 사...... 아니 그냥 그럭저럭 좋아는 하니까. 장난으로 빌런이라고 쓰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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