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줄 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Feb 20. 2022

[10줄 문학] 자기합리화의 신

2022년 2월 14일 ~ 2월 18일

1. OO탈트


요즘 듣는 컴퓨터 학원 수업들은 대부분 실습 위주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강의가 진행되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노래를 틀어준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짧게는 한시간, 길게는 두시간까지도 선생님들의 음악 취향을 알게 되는데....


이걸 두 달을 하다보니, 선생님과 음악 취향이 어느 정도 맞지 않으면 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사 간혹 취향이 맞는다 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한 가수의 음악만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 가수가 싫어질 수 있다는 것도.


하도 듣다 보니 이젠 방탄탈트, 아이유탈트가 올 지경이다.


그렇게 세뇌된 노래는 집에 가는 길, 심하면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재생되며 웬만하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고도의 영업..인걸까?


어떤 회사들은 노래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상당히 고역일 듯 하다.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2. 자기합리화의 신


얼마 전, 사주를 보러 갔다. 그런데 상담해주시던 분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덕질같은 거 하시면 안돼요. 남자 운이 다 빠져나가요!"


현재 내 팍팍한 삶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거라고는 덕질밖에 없는데 이 덕질을 포기하라니.


그나마 덕질을 할 때만이 유일하게 가슴이 뛰는 때란 말이다. 


그때, 내겐 종교활동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사주 풀이가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괜찮은 게 아닐까?  


나는 내 최애를 멋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서 덕질하는 게 아니고 마치 신처럼 숭배하니까. 


그러니까 나의 덕질은 거의 종교의 영역이라고 봐야 하니, 남자 운도 안전한 걸로!




3. 1mm


아키모토 야스시는 말했다.


"꿈은 힘껏 손을 뻗은 그 1mm 앞에 있다"고. 


악랄한 희망 고문의 대가 다운 말이지만, 그의 말에는 확실히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매일 15분씩 꼭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놀랍도록 뻣뻣해서 제대로 숙여지지도 않았던 몸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부드러워졌다. 


그 15분 외에는 딱히 운동이라 할 만한 것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도 그렇다. 


스트레칭을 할 때는 항상 그런 마음인 것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런 것 같다. 


지금 당장의 처지만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과 함께 한숨만 나오지만, 현재의 최대치에서 1mm만, 한 끝만 더 나아가 보자는 생각이 나를 조금씩 그 지점으로 데려간다.


이렇게 살아있으면서 계속 손을 뻗는 한, 언젠가는 다리를 일자로 곧게 찢어볼 날도, 내 목표에 손이 닿는 날도 오지 않을까. 




4. 영어 쓰는 일.


나는 한국어 포함 4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외국어를 하나하나 배우면서, 나는 어쩌면 이 외국어들이 나를 먹고 살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곧 지극히 평범한 사무직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토익 시험 점수를 제출하고 입사했지만, 정작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해도 일할 수 있는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내 외국어 실력이 죽어가는 게 무척 아까웠다. 


기껏 배운 영어를 드라마 영화 소설 보는 데만 쓰다니, 재능 낭비 아닌가.


영어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외국에 나가거나 외국계 회사에 가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고서야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기회는 퇴사하고 백수가 되니까 왔다.


NFT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맘먹고 보니까 영어를 쓰고 영어로 소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영어로 읽고, 쓰고, 나를 어필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 그래도 외국어 헛 배운 건 아니었네'라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소원은 이뤘으니, 영어가 나를 돈길로 안내해주길 바란다!



5. 오르페우스와 아이패드 미니


오늘은 지난달에 구매한 아이패드 미니 최신 모델이 배송되는 날이다.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오는 건데 이상하게 기쁘지가 않다.


최근에 웹소설 연재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내 관심을 끌만한 모든 것들이 다 부담스럽다.


영화도 안보고 소설도 안본다. 몇 편씩 하는 드라마는 도저히 시작을 못하겠다. 이렇게 모든 것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이패드 신 모델이라니.


물론 한 달 전의 나는 내가 이렇게 웹소설 연재를 시작할 줄 몰랐을테니 죄가 없지만....


결국 나는 아마도 오늘이 나와 함께 할 마지막 날이 될 내 아이패드 미니5를 들고 무작정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에우리디케의 애원을 거부하는 오르페우스의 마음으로.


이번 주말까지 올릴 회차를 완성하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10줄 문학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DM으로 편하게 소재나 사연 접수해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10줄 문학으로 써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줄 문학] Text and the Cit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