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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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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l 02. 2022

[10줄 문학] 하마의 마음

2022년 6월 27일 ~ 7월 1일

1. 참새와 레몬케이크


통창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참새가 날아들어왔다.

통창 때문인지 참새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퍽퍽 머리만 찧었다. 카페 점원도, 보는 사람들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가엾은 점원은 투명한 12oz플라스틱 컵에 어떻게든 참새를 넣어 보겠다고 사투를 벌였다. 

결국 작은 새와 12년 째 살고 있는 내가 나섰다.


나는 통창 구석으로 참새를 몰아 손으로 번개같이 낚아챘다. 잡힌 참새도, 지켜보던 사람들도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대로 유유히 카페 밖으로 나가 손 안의 참새를 날려보내 주었다.


점원이 고맙다며 건넨 레몬 케이크는 내가 쥐었던 참새보다 컸다.

참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2. 3억 1억


길을 걷는데 초등학생 3명에 하교하며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대화와 발화자 간의 위화감이 재미있었으므로 기록해 본다.


"야, 너네 집 이제 얼마 됐냐?"

"글쎄, 몰라? 한 3억 되지 않았을까?"

"헐, 3억?"

"야, 평생 1억도 모으기 힘든데 대박이다."


내가 저 나이 땐 4천만 원도 얼만지 감이 안 왔는데...

쟤들이 다 컸을 땐 그 때의 초등학생들이 30억, 10억을 얘기하고 있으려나.


어찌됐든, 일찍부터 집값을 논하는 난세의 초딩들이 무사히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기를.





3. 노 비자 걸


예전에 친구가 중국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의 일이다.  놀러 오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당시 별 생각 없이 비행기 표를 끊었다.


문제는 공항에 도착해서였다. 항공사 대기 줄에 서 있는데, 항공사 직원이 여권을 하나 하나 들춰보며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뭔가 불길한 예감 끝에 내 차례가 왔고, 그는 내 여권을 받고서는 한참이나 이리저리 들여다 봤다. 그러고는 비자가 어딨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니, 비자가 필요한 거였으면 비행기 티켓 사기 전에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결국 난 중국을 못 갔고 기다리던 친구에게는 쌍욕을 먹었다.


그녀의 현지 친구들에게 여전히 나는 '노 비자 걸'이라고 불린다.





4. 에폭시


주차장 에폭시 공사 때문에 난리다.


각 층 전체를 막고 공사를 하는 바람에 오갈 데 없어진 차들의 불법 주차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평소에는 우리 동네 주민들이 그럭저럭 매너가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원래 이렇게나 몰상식했었나? 싶을 정도의 주차를 한다...


주민들 단톡방은 매일 사진이 올라오며 비난하고 난리다. 이 때다 싶어서 주차장 지정 좌석제를 도입하자는 사람도 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만 참자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막상 공사가 끝나도 불법 주차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주차한다.


에폭시를 새로 깐 바닥은 폭신해졌을 지 모르나, 사람들의 마음은 코팅도 되지 못하고 바싹 갈라져 버렸다.

무엇을 위한 공사였던 걸까? 소란이 싫기도 하고, 기름값도 비싸서 차를 세워놓고 일주일 내내 빼지 않았던 나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만으로도 꽤 살 만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5. 하마의 마음


며칠 새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고 있다. 원래도 습도 높은 날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인 나는 김장철 배추처럼 늘어졌다.


바닥도 벽지도 뭐라 할 것 없이 다 축축하다. 하필 제습기도 없어서, 습도가 80%에 육박하는 이 밀림의 정글같은 습도를 견디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에 쌓이는 습도까지는 어떻게 깨끗하게 건조할 수가 없다. 습기가 점점 쌓이고 쌓여서 내 안의 양동이에 무겁게 고인다.


마치 내가 물 먹는 하마가 된 것 같다.


물 먹는 하마는 알았을까? 실링이 뜯기는 순간부터 제 소임을 다 하면 다 할 수록 여명이 줄어든다는 가혹한 사실을.


마음은 갖다 버리고 새로 끼울 수 없으니, 어서 화창한 날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수밖에.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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