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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01. 2018

나는 고발한다.

우리에게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허하라.

내 인생에서 도저히 잊지 못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였는지, 이혼 전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 선지 부모님은 원래 다른 도시에 있는 큰엄마 아빠에게 나를 자주 맡기곤 하셨으니까. 그 집에는 초등학교 6학년이자 우리 집안의 장손인 Y오빠와, Y오빠의 연년생 동생인 Y언니가 있었다.


우리 사촌지간에서는 아들이 귀했다. Y오빠는 우리 사촌들 사이에서 맏이이자, 집안의 장손이었다. 어릴 때부터 오빠는 우리들 사이에서 대장처럼 군림했다. 그래도 어렸던 나는 오빠한테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집에서 엄마는 아픈 동생만 끔찍이 챙겼고, 아빠는 항상 바빴다. 까다로운 엄마 때문에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 맘껏 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기에, 나는 늘 만성적인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사촌지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큰집의 Y남매는 내게 있어서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Y언니는 어린 내가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게 영 귀찮은 눈치였다. Y언니는 보다 자신과 나이 때가 비슷한 다른 사촌들과는 친하게 지내면서, 은근히 나를 따돌리고는 했다.


Y오빠는 달랐다. Y오빠는 유쾌하고 말재주가 좋아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 집 사촌지간 중 거의 유일한 아들이자 장손이라는 특성 덕분에 더욱 사랑을 받는 것 같기도 했지만) Y오빠는 그 말재주로 나도 종종 웃겨주고, 어른들이 시켜서지만 마지못한 티를 내지 않고 나와 종종 잘 놀아주기도 했다.  


큰엄마 아빠가 나를 유독 예뻐했던 탓인지, 아니면 엄마 아빠가 바빴던 탓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큰 집에 종종 혼자 초대되곤 했다. 종종 큰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면, 언니 방에서 언니가 꾸며놓은 다이어리를 보며 언니가 최근 관심 있는 연예인이나 만화책 얘기를 보거나 동화책을 읽곤 했다. 큰아빠가 돌아오는 퇴근시간에 맞춰 귀신 분장을 하고 장롱 속에 숨어있었던 적도 있다.



그날도, 그런 여느 평범한 날이었어야 했다.


정확한 날은 기억 안 난다. 그냥 밝은 대낮이었던 것과, 밖으로 외출하시며 Y오빠한테 나를 맡기는 큰엄마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XX랑 잘 놀아주고 있어야 해. 금방 나갔다 올게.”


당시 Y언니는  어디 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집에 없었다. 집에는 Y오빠와 나 단 둘이었고, 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Y오빠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나는 그 옆에서 동화책을 보고 있었다.

티브이를 보던 Y오빠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XX야, 너 오빠 꼬추 보고 싶다고 했지?”


시작은, 어른들이 어린애들에게 짓궂게 시키는 장난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목욕탕에 씻으러 들어가는 Y오빠에게 꼬추를 보여달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큰아빠가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XX야, 오빠 씻으러 간다. 꼬추 보여달라고 해봐!’ 그리고 내가 Y오빠에게 그렇게 말하면 Y오빠는 웃으며 ‘안돼’라고 대꾸하고, 가족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시키는 대로 얘기를 하면 큰엄마 아빠가 웃으며 좋아하기에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Y오빠의 고추를 그렇게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Y오빠가 저렇게 물어봤을 때,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젯밤 Y오빠가 샤워할 때처럼 ‘꼬추보여줘!’ ‘안돼!’로 이어지는 장난을 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내가 웃으며 ‘응!’이라고 말한 건. 그렇게 말하면 Y오빠가 ‘안돼!’라며 웃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Y오빠는 예상 밖의 말을 내놓았다.


“그럼 내가 꼬추 보여줄 테니까... 너도 니 잠지 보여줘.”


그때부터였다. 아무도 없고 단둘이 남겨진 집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답답해졌다. 여기 있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다’고 대답했지만, Y오빠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잠깐만 볼게. 내가 비디오로 본 게 있는데 한 번 해 보고 싶었단 말이야.”


나는 왜 내가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Y오빠의 꼬추를 보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Y오빠는 이게 Y오빠에게도 좋고 내게도 좋다는 듯이 나를 달랬다.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Y오빠는 자기 바지를 내리고, 나를 바닥에 눕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Y오빠가 나쁜 사람 일리 없다는 생각이 나를 속였다. 그는 내 스타킹을 벗기고, 팬티를 벗겼다. 그리고는 내 위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내 성기를 만지고, 벌렸다.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Y오빠는 내 성기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기의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비디오로 보니까 이걸 여기에 넣더라고. 한 번 해볼게.”


그러면서 Y오빠는 자신의 성기를 내 성기 안에 집어넣었다. 너무 어릴 때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 그의 성기는 발기 상태가 아니었다. 2차 성징도 시작되지 않은 털도 안 난 애기고추를 내 성기 안에 어떻게든 넣어보려고 했던 Y오빠의 집중한 얼굴을 올려다보던 게 기억이 난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싫었다. 왜 나를 붙잡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지가 보고 싶다면, Y언니한테 보여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는 거지? 맨바닥에 닿은 아랫도리가 추워서 빨리 다시 스타킹을 신고 싶었다.

Y오빠는 한참을 그렇게 뭔가를 해보려는 듯하더니, 결국 맘대로 안되자 자기 성기를 도로 뺐다. 그러고는 민망한 듯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디오에서 본 대로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


그러면서 그는 팬티를 벗은 그 상태로 다시 소파에 걸터앉았다. 나는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Y오빠는 그 자세 그대로 자신의 성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XX야, 여기에 뽀뽀해주면 안 돼?”

“거기에 뽀뽀를 왜 해?”

“비디오에서 보니까 여자가 이걸 빨더라고.”


방금 전 내 성기에 들어갔다 나온 저걸 쳐다보고 있는 것도 싫은데, 입을 대야 한다니 정말 끔찍이 싫었다. 나는 짜증을 내며 싫다고 했다. 거센 거부반응에 당황한 Y오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이상한 짓 안 할게. 눈만 좀 감아봐. 입은 벌리고.”


바보 같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도 Y오빠를 믿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조차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 나와 재미있게 놀아주던 Y오빠의 모습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나는 Y오빠가 앉아 있는 소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있는데, 본능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눈을 확 떴더니, 눈 바로 앞에 축 처진 Y오빠의 성기가 내 입 근처에 와 있었다.


Y오빠는 ‘아, 들켰네~ 한 번 해 보고 싶었는데.’ 하면서 또 민망하게 웃었다. 김이 샜는지 Y오빠는 다시 속옷을 입었고, 나 보고도 다시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다.


“너 이건 너네 엄마 아빠나, 우리 엄마 아빠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 어른들 아시면 우리는 쫓겨나.”


나는 겁이 났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굉장히 찝찝하고 나쁜 짓을 한 것 같았다. 어른들이 알면 안 되는 비밀을 만들었다는 게 싫고 무서웠다. 가족들한테 쫓겨나고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뭔가 이상하고 기분 나빴으면서도 정작 어른들에게는 이 일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Y오빠의 여동생이던 Y언니였다. 그 이후 Y언니와 한 번 통화를 하게 됐는데, 언니에게 ‘나 Y오빠 꼬추 봤어’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당시 Y언니는 우리 사촌지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언니로, Y오빠 다음가는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기에.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안 계시고, 고모네서 겨우 살아가는 내게 그나마 마음의 의지가 되는 것은 그 언니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Y언니는 잠시 놀란 듯했고, 내게 진짜냐고 여러 번 물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나는 억울해서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진짜라고. 나 Y오빠 꼬추 진짜 봤다고. Y언니는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맞은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Y언니와 Y오빠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유난히 차가웠다. Y언니는 어른들이 아이들끼리 놀라고 준 자유시간에, 모든 사촌들과 나를 사랑방으로 불러 모았다. Y언니의 냉랭한 태도에 이미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나는 덜덜 떨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날, 그 사랑방 안은 꼭 재판정 같았다. Y오빠는 제일 안 쪽에 이불을 깔고 왕처럼 옆으로 길게 누워 앉아있고, Y언니는 그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촌들은 양옆으로 앉아 있었다. Y언니는 나보고 가운데로 나와 무릎 꿇고 앉으라고 했다.


“너, 거짓말했지?”

“아니야”

“너 오빠 꼬추 봤다고 거짓말했잖아!”


나는 울먹이며 오빠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오빠가 그 날 있었던 일 다는 아니더라도, 자기가 내게 꼬추를 보여줬다는 사실만큼은 꼭 말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Y오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했다. Y언니의 엄격하면서도 화난 목소리가 나를 질타했다.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오빠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런 거짓말을 해?”


계속 Y오빠 쪽을 쳐다봤지만 Y오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러워서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울자 Y언니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다.


"너 같은 거짓말쟁이랑은 놀 수 없어. 너 오빠한테 거짓말한 거 당장 사과 안 하면 평생 따돌릴 거야."


협박이었다. 방 안에 있던 다른 사촌들 중 누구도 '대장'같았던 Y언니와 Y오빠에 대항하여 나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숙였다.


"내가 거짓말했어.. 미안해.. 잘못했어요..."


그러면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내 세상의 전부와 같았던 사촌형제자매들에게 따돌림당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Y언니와 Y오빠는 그 생 쇼를 벌이고서 나를 '용서'해 주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나는 죄인처럼 숨죽이고 눈치 보며 지내야 했지만.




그리고 24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사실 이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었던 계기는 얼마 전에 이 문제로 인해 고뇌하던 아빠가 내게 '이제 그만 Y오빠를 용서해 줄 수 없겠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말이라 생각했고,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쩐지 혼란스러워 아무대꾸 하지 못하고 돌아온 나는 일단 어린 시절 당시의 기억과 관련된 내 생각을 한 번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었다.


아빠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던 건 몇 년 전이었다. 더 이상 Y오빠의 협박처럼 집에서 ‘쫓겨날’ 걱정을 해도 되지 않는 나이. 내 나이가 서른에 임박하자 아빠는 당신 세대가 돌아가시고 나면, Y오빠가 장손이니 그 오빠를 잘 따라야 한다며 부쩍 Y오빠와 친하게 연락하며 지내길 당부하며 나를 압박해 왔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Y오빠를 평생 친오빠처럼 의지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아빠의 면전에서 문득 치솟아 오르는 격한 혐오감에 끝내 못 참고 토해내듯 털어놓고 말았다. 아빠의 충격은 컸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이혼으로 다른 집에 맡겨져서 크느라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 그런 것은 아니었을지 자책도 크셨다. 아빠도 엄마도 없이 어린 네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겠냐며. 나는 펑펑 울며 가끔씩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마다 Y오빠를 보는 것조차 너무 무섭고 힘들다고 했다. 다시는 보지 않고 지내고 싶다고. 그 날 이후로 나는 가족 행사에 웬만하면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빠는 예전부터 가족 사랑이 극진한 분이셨다. 당신이 성공해서, 모든 가족들을 잘 되게 하고 싶다는 희망 하나로 여태까지 살아오신 것과 다름없던 그에게, 갑자기 소홀해져 버린 가족 간의 유대는 불안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몇 번인가, 아빠는 내게 '용서'의 의향을 물어왔다. Y오빠가 분명히 잘못하긴 했지만, 어린 시절의 장난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고 네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지금쯤 본인도 후회하고 있을 테니 용서해주면 안 되겠냐고. 그것 때문에 자꾸 연연하고 힘들어하고 가족 사이가 틀어지면 너도 불편해지지 않겠냐고.


최근에는 큰엄마 아빠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우리 아빠를 통해 전달된 것 같다. 아빠도 혼자 이 사실을 안고 있기 버거웠을 것이다. 우리 집은 어머니도 안 계시니 이런 문제를 상담할 여자 어른도 없지 않은가. 큰엄마 아빠는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아 밤잠을 못 이루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당장이라도 내게 와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고 한다. 다 늙은 어르신들이 밤잠 못 자고 괴로워하는 게 너무 안타깝지 않냐며, 대인의 마음으로 Y오빠를 용서해 줄 순 없겠냐고. 아빠는 내게 물어왔다.


냉정하게, 나는 Y오빠를 용서할 생각도 없고, 그럴만한 마땅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용서한 자의 마음에 깃든다는 그 평안을 나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 인간만 안 보이고 안 들리면 나는 항상 평온한 상태다. 내 마음의 평온이 깨지는 것은 언제나 Y오빠의 존재를 재인식할 때였다.) 하물며 그 당사자인 Y오빠가 그 용서를 바라는 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내가 굳이 그를 용서해야 할 이유를 굳이 찾아야 할까?


따져 보자면 지난 24년 동안 그가 내게 용서를 구할 기회는 그 후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 후로도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사촌들의 결혼식장이나 할머니 생신연 등의 장소에서 서로 만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어린 나를 추행하고, 동년배 사촌들 앞에서 거짓말쟁이로 몰아 인민재판을 진행했던 Y오빠는 이후 그 날의 일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가끔씩 나를 빤히 바라보는 Y오빠의 눈 속에서 나는 "쟤 그때 일 까먹었겠지?" 하는 생각을 읽고 생리적 혐오감에 빠지곤 했다. 그가 용서를 구한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린 시절의 장난? 내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라고?

당시에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Y오빠가 내게 그런 짓을 할 당시의 나이가 13살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당시 그의 행동과 말만 봐도, 그것은 결코 어린 시절의 장난도, 우발적인 행동도 아니었다.


Y오빠는 부모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내 상황도 알고 있었으며, 본인이 봤던 비디오 속 행동을 '따라 하고 싶다'라고 내게 몇 번이나 말했었다. 그는 야한 동영상을 보고, 나를 타깃으로 삼아, 계획적으로 집이 비는 것을 기다렸고, 타이밍을 노린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어린 내게 또래 사촌들이 모인 장소에서 겁박하고 모욕을 주었다. 그래도 이게 단순히 '장난'이었을 수 있는 일인지 묻고 싶다.


큰엄마 아빠가 괴로워하신다는 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내가 그들을 용서해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나는 지난 24년 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는 Y오빠와의 일로 인해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괴로워지는데. 그쪽이 며칠 잠 못 자고 괴로워한다고 내가 굳이 그들을 동정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그를 용서하고 굳이 남은 평생을 교류해야 할 정도로 Y오빠가 내 인생에서 엄청나게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를 결코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가 더 이상 내 인생에 개입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당시의 어렸던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일이 있었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나는 성장 과정에서 많은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왔고, 그들 중 일부는 성적인 의미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을지라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내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자’라는 성별 이전에 ‘사람’으로서 그 사람의 캐릭터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8살 때부터 12년을 고모네 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지냈다. 그때, 그 집에는 이미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춘기의 사촌오빠 H가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H 오빠와 단 둘이만 있을 때도 많았지만 그는 나한테 성적인 의미로 불쾌하게 느껴지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진짜 친 여동생처럼 대했다. 고모의 둘째 딸인 언니가 결혼하면서 집에서 잠시 동거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함께 살았던 둘째 형부도 나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단 둘이 집에 남겨졌을 때도 우리에겐 어떤 성적 긴장감조차 없었다. (형부가 보던 야동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도 우리에게 그것은 그냥 놀림거리였을 뿐이었다). 사실 이게 정상 아닌가. 우리는 가족이었기에. 그리고 그게 상식이었다.


그러니까 나쁜 것은 Y오빠지, 모든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본질이 결코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나는 안다. 가끔씩 그때 일이 문득문득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자를 만날 때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거나 모든 남자를 혐오하게 되었다던가.. 하는 문제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나는 그 일에 관계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왔고 과거의 모든 경험을 거쳐 완성된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게 상처를 주고, 트라우마를 안기려 했지만 실패했던 일부 비열한 남자들의 행동을  기꺼이 고발하고자 함이다.


나는 고발한다.
8살의 어린 나에게 성기를 빨라고 시킨 13살의 Y오빠를.

나는 고발한다.
중학생인 나를 교무실로 불러, 자기 첫사랑을 닮았다며 불쾌한 눈빛을 보내던 학원 선생님을.

나는 고발한다.
중학생인 나를 집 앞 복도에서 밀쳐 넘어트리고, 옆구리에 칼을 들이댄 채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더듬어대던 미상의 남자를.

나는 고발한다.
약에 취한 눈으로 내 방 문을 열기 기다리며 등 뒤에 서 있던 숙박업소 남자 직원을.

나는 고발한다.
은근슬쩍 내 몸을 더듬으며 밖에서 만나자고 조르고, 결혼할 여자가 있으면서 ‘나 원래 결혼 안 하고 너랑 더 놀려고 했는데’ 라며 수작 부리던 동갑내기 K를.

나는 고발한다.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새벽 2시에 둘이 드라이브를 가자며 조르던 유부남 Y를.

나는 고발한다.
결혼 전에 너같이 예쁜 여자를 만나 데이트해보고 싶었다며 회식자리에서 내 허벅지와 몸을 더듬던 H자동차 회사의 L과장을.



삶의 어떤 순간들은,  어떤 종류의 기억들은 아무리 애써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기억에만 사로잡혀서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 지, 인정하고 묻어두며 동반자처럼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치유의 과정이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이 #metoo(미투)를 외치기 시작한 것 또한, 그동안 꽁꽁 싸매고 숨겨왔던 일들을 털어놓고, 마음속에서  비워내기 위함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마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전체 성폭력 상담 가운데 10%는 친족 성폭력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그들로 인해 상처받았을지언정, 결코 더럽혀지진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비록 나의 아빠처럼 그런 일을 알게 된 당신의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가족'을 빌미로 '용서'와 외면을 권하더라도, 다른 누구보다도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우리에겐 '용서'라는 이름의 면죄를 해 주지 않을 권리가 있다. 설사 이 일로 인해 우리가 가족의 불화의 씨앗이 되면 좀 어떤가. 나는 오직 나와, 당신의 마음의 평온만을 바란다.



용서는 상처를 잊어버리거나 타협하는 것과는 다르다. 상처를 준 사람들의 잘못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쌓인 원망과 분노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의 분노가 다시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을 없애는 것이다.

- 베르벨 바르데츠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중에서

Cover Image by kelsey via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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