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Jul 24. 2019

 ‘뷔페식’이면 어때서?

나는 이론적 완벽에 대한 강요가 지겹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개인의 신념이나 입장을 밝히면, ‘그럼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꼬리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꼭 있다.



 예를 들어, 개고기 섭취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넌 소, 닭, 돼지 먹는 건 찬성해?’ 하고 물어본다던지, 일본 불매운동을 하려 유니클로를 가지 않겠다, 일제 맥주를 마시지 않겠다 밝힌 사람에게 ‘네가 지금 핸드폰에 있는 부품 일본제인 건 알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 뒤로 꼭 따라오는 빈정거림이 있다. ‘뷔페식이네’라는.

 


뷔페식 페미니즘, 뷔페식 인권운동, 뷔페식 환경운동 등.. ‘내로남불’이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처럼, 신념이나 행동에 일관성이 없이 제멋대로 ‘취사선택’한다고 비꼬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는 누군가를 볼 때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되묻고 싶어 진다.



‘뷔페식’이면 뭐 어때서?’


 적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입만 털고 있는 당신보다는 이 세상에 나아지는데 조금은 더 기여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타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거나, 세상을 개혁하진 못할지라도 본인의 세계에서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며 무엇인가를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사람의 삶에 단지 ‘이론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빈정거림이 따라붙어야 하는 것인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거부감과 두려움을 갖는다. ’완벽하지도 않은 게 어디서 도덕적인 척하는거야?‘ 하는 마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간단한 행동을, ‘넌 그렇구나’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지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특정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운동가들보다 오점이 적어 보일지는 모른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생겨나지 않고, 허점도 없다. 그들은 그저 신념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한 방’ 먹이고 싶고, 당황시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지적논리적 우월함을 과시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초를 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애초에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나도 그렇다. 나는 내 수준을 알고, 내가 가장 소중하기에 나 자신이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나의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알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뷔페식’으로라도 행동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행동에 초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념, 사회운동의 뷔페식 취사선택의 기회가 좀 더 많아져야 다고 다. 이 지구에 인구가 얼마나 많은데, 다 똑같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 않나?



어떤 사람은 동물보호 문제로 채식을 시작했지만 패스트패션이나 환경 보호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이 취약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여혐 이슈로 특정 브랜드를 불매하지만, 탈코르셋이나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은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자신의 뜻이라 밝힐 수 있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낀 단 한 분야에라도!



막말로, 뷔페식이면 좀 어떤가?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보다는, 늘 현재보다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지하고 싶다. 다시금 말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모습이 내가 발견한 인간의 사랑스러운 측면이다.


타인에게 완벽을 강요하기 전에 본인을 먼저 돌아보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고발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