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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11. 2019

저 그냥 ‘젊은 꼰대’ 할게요

90년대생들을 향한 ‘펜스 룰’에 저항하며


바야흐로 90년대생 전성시대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과 저자 강연이 메가 히트를 치고, 심지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들어 '밀레니얼' '90년대생'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의 상사분들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대표님이 직접 임홍택 씨를 초청하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저자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80년대생인 나는, 윗분들의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다'며, '요즘 애들은 도무지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과 ‘요즘 것들’인 90년대생 사이에 끼어 있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최근의 '밀레니얼 마케팅'이나 '90년대생 배우기' 광풍 속에서는 살짝 비켜가 있으면서도,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닌 애매한 포지션인 것이다.



 나는 전반적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인식 그 자체에는 동의한다. 이러한 문제 인식과 적극적인 움직임이 그동안 '꼰대'로 치부되던 기성세대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이미 이 사회에서 안정적인 포지션과 기득권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의지를 존중하고, 그들의 특성을 파악하여 다양한 세대가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이러한 '90년대생 포커싱 현상'이 묘하게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주변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읽으며 행동해야 할 상황이 있는데, 그럴 때 90년대생인 후배가 기존의 사회생활의 통념에서 봤을 때 튀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조언을 해줘야 할 때, 아무도 차마 그들에게 나서서 조언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당시 내가 조언을 하고 싶었지만, 같은 자리에서 나보다 윗 직급의 상사도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나서서 발언하는 모습이 적절치 않아 보일 듯하여 입을 다물었던 적이 있다. 나름대로 상사의 '면'을 세워주려는 노력이었다.



 나중에 그 상황이 다 지나갔을 때, 상사에게 슬쩍 물었던 적이 있다. '저런 경우에는 조언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왜 가만히 있으셨냐고. 그랬더니 상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애들이 원래 그렇잖아.
뭐라 한 마디만 하면 금방 그만둬버린다니까.
'꼰대' 소리 듣기도 싫고."





 '꼰대'소리 듣기 싫다고, 'Latte is a horse'라는 조롱을 듣고 싶지 않다고, 90년대생의 회사생활에 있어서 '빌런'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냥 90년대생들의 잘못된 행동도 '요즘 애들이 원래 그렇지 뭐'하고 방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성세대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치 90년대생들에 대한 '펜스 룰'을 자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저들은 저렇게 90년생을 두려워하고 배우려고 하는데, 90년생들은 이러한 기성세대의 은밀한 노력과 보이지 않는 내적 갈등, 고뇌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애초에 90년대생을 배우고 알아야 하는 명분이 ‘나와 다른 그들과 함께 일하기’라는 기성세대의 필요성에서 출발된 것이라면, 90년대생 또한 기성세대에 대해서 유사한 필요성과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성세대가 ‘요즘 것들’에 대해 배우려 하는 것은 ‘쿨’ 한 거고, ‘요즘 것들’이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사회적 규칙에 대해 순응하는 것은 ‘쿨하지 못한’ 것인가? 오히려 그러한 사회적 규칙에 대해 ‘꼰대스럽다’ ‘아재 같다’며 조롱하는 것이 ‘쿨’ 한 것으로 비치는 것 같다.



 왜 90년생이나 밀레니얼에 대한 고민만이 논의되고 있는가? 그들이 젊어서? 후레쉬해서? 무조건 젊고 새롭고 후레쉬한 게 좋다고 생각되서?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에이지즘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에이지즘 : 노인들에 대한 연령 차별주의)



 우리는 성별에 따른 차별이나 지역, 학벌 등의 조건에 따른 차별에는 경기를 일으키면서 정작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어린 사람들에 대한 혐오나 무시에는 관대한 경향이 있다. 꼰대다, 답답하다고 쏟아내는 말들이나 사회적 규칙,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도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 그렇지 뭐’ 하고 화내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쿨’하게 받아들여진다.



 끼인 세대인 80년대생으로서, 요즘 회사에서 90년대생들을 일방적으로 과잉보호하는 흐름이 거슬린 끝에 결국 나는 그 날 상사에게 이렇게 선언하고 만 것이다.




"그럼 팀장님은 가만히 계세요. 팀장님이 못하시면 제가 말하죠 뭐.
앞으로 제가 그냥 ‘젊은 꼰대’ 할게요."




 나는 90년대생을 향한 '펜스 룰'에 저항하며 계속 해야 할 말들을 해 나갈 것이다. 회사가 학교도 아니고, 회사에서까지 남들 눈치 보며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인싸 되기'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회사 안에 있는 ‘요즘 것들’ 중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상관없다. 술자리에서 ‘그 년 완전 젊꼰이야’라고 나를 씹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를 싫어할 사람은 내가 그런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어찌 됐든 상관없이 나를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일하려고 가는 곳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모여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공동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얼핏 답답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져도 조직 내에서 정해진 원칙을 어느 정도 지키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90년대생들이 해당 원칙이 맘에 들지 않고 구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너무 꼰대 같은데요’하고 원칙을 무시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고려해 볼만한 대응책을 고민하고 제시하면 될 일이다.



 나는 언제나, 사회생활에서는 스스로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만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 배려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역 양치기 소년 전략인 것이다. (‘늘 FM대로 하던 사람인데.. 저 사람이 저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90년대생들이 선을 넘으려 할 때,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말하며 원칙을 들이대는 나를 보고 누가 젊은 꼰대라고 비웃고 뒷담화를 한다 해도 상관없다.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 나는 할 말은 해야겠다.




 

 물론, 그들에게 말하는 원칙은 나 자신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고생한 만큼 너도 고생해봐라’가 아니라, ‘이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면 이런 건 지켜줘야 해’에 가까운 조언이고, 이것조차 '꼰대의 잔소리’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일단 나는 해야 할 말을, 그들의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움 없이 하는 사람이고 싶다. 윗분들이 괜히 한마디 했다가 ‘꼰대’ 소리 듣고 상처 입을까 봐 두려워하고 끙끙거리며 못 하는 그 일을 나는 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그리고 여기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총대를 매고 '젊은 꼰대'가 되겠음을 선언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지인의 회사에서 일하는 90년생을 대상으로 신문고 같은 채널을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게 뭔지,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봐라’라고 했단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제가 잘 못하는 일은 안 시켜주셨으면 좋겠어요.’

지인은 저 문구를 보고 당황했단다. ‘대체 왜일까?’하고 한참을 생각했단다. 나 또한 생각을 해보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90년생이 온다>에서 말한 것처럼 일에서의 성취를 더욱 중요시하는 세대라서 그런 것일지 막연히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미 우리는 그들과 태생이 다르므로, 우리는 그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공감할 수도 없다. 우리와 다른 신인류니깐.

다만 90년생은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일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뿐이다.
그리고 ‘회사’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일할 때 필요한 사회적인 원칙에 대해서는 언제나 양보하지 않고 관철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 자신을 요즘 사람들이 기피하는 ‘젊은 꼰대’로 만드는 길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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