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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20. 2019

당신은 이게 '재미'있습니까?

소시오패스 마케팅을 멈춰주세요




'암 걸릴 것 같다'
'발암이다'
'안 본 눈 삽니다'
'난청 유도제'



 이와 같은 표현을 '마케팅' 차원에서 카피로 작성하고, 그에 대한 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일례로, 이번에 오렌지 라이프에서 암 관련 상품을 홍보하면서 내건 카피는 '청춘 발암 주의보'이고, CGV에서는 일전에 명절 연휴 쿠폰팩을 유머러스하게 구성하겠답시고 '난청 유도제'라는 명칭을 쿠폰에 넣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사례를 보니 공교롭게도 둘다 CJ다.



더 나아가서는 이와 같은 속칭 '드립'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개그우먼으로 이뤄진 걸그룹 셀럽 파이브의 신곡 제목은 '안 본 눈 삽니다'이며, 가사 내에서 이 '안 본 눈 삽니다'라는 표현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셀럽 파이브 - <안 본 눈 삽니다> 가사

안 본 눈 삽니다
제주 애월에서 백허그하는 모습
안 본 눈 삽니다
커플 잠옷 입고 케이크를 들고 있네
안 본 눈 삽니다
너무 슬프잖아 눈물이 날 것 같아
안 본 눈 삽니다
저장된 그녀의 이름 내 여봉봉

안 본 눈 안 본 눈 찾아요 내가 살게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널 대할 순 없어
안 본 눈 안 본 눈 찾아요 내가 살게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널 대할 순 없어

안 본 눈 안 본 눈 삽니다 Ha
안 본 눈 안 본 눈 삽니다 Ha
안 본 눈 안 본 눈 삽니다 Ha
안 본 눈 안 본 눈 삽니다 Ha



 일차적으로는 '보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식상하다 판단하여 인터넷에서 쓰는 드립을 차용한 것으로 예상되나, 셀럽 파이브가 개그우먼 걸그룹인만큼 발라드를 부르면서도 유머 코드를 심고 싶었던 그들의 (마치 UV처럼) 의도가 작용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결과적으로는 저 표현 때문에 그렇게 재밌지도 않은 어정쩡하고 불편한 노래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광고를 보다보면,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마케팅/광고 담당자의 사회적 감수성이 너무 빈약하다고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아직도 내 기억에 남는 광고 중에 제일 최악이었던 것은 성범죄 의혹을 받던 조민기와 성범죄 피해자가 주고받은 카톡 문구를 희화화한 배스킨라빈스의 광고였다.






나는 저 문구를 보고 저 문구를 작성한 당사자뿐 아니라 컨펌한 조직 자체의 EQ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피해자가 받고 있었을 압박과 절박한 상황에 공감했다면 꼭 굳이 그 문구를 패러디해서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유머가 될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소시오패스적인 마인드 아닌가.


나는 저 카피들을 기획하고 매체에 내보낸 사람들에게 암 환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범죄 피해자 앞에서 이런 '드립'을 유머러스하게 뱉을 수 있냐 고 물어보고 싶다.



 막상 눈 앞에 세워두면 '본의 아니게 심려를...'하고 웅앵웅 할 것 같은데. 난 더 이상 광고/마케팅 담당자들의 전형적인 해놓고 '몰랐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라는 본의 아닌 사과는 받고 싶지 않다.

 

 어느 정도 문화 콘텐츠를 다루고, 광고/미디어 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한 번씩 거쳐갔을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만 봐도, 중요한 건 발화자의 의도가 아니라 노이즈가 섞인 결과다. 마치 책 한 권을 써도, 칼럼 하나를 써도 저자가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그 책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간섭하고 통제할 수가 없는 것처럼.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게 더 문제라는 거다.

(또 그런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꼭 '특정 분들에게'라는 사족을 붙이더라. 마치 대다수는 괜찮다 하는데 소수의 불편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멱살 잡혀 사죄한다는 듯한 뉘앙스로, 그러한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네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미안한데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는 결코 사과문이 될 수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본의 아니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는 사람은 생각 없음과 무지도 죄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공부하고 사회적 감수성을 가지고 생각하라. 광고 메시지를 내보내기 전에 '꼭 이 표현을 써야만 하는지' '다른 대체 가능한 표현은 없을지'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이 표현이 누군가에게 조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내가 쓰고자 하는 이 드립이 특정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담은 사이트로부터 발화된 것은 아닌지' '이 단어의 정확한 기원과 뜻은 뭔지' 자기 검열을 하며, 필요하다면 블라인드 설문조사를 하며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라.


 이런 소시오패스 마케팅은 결코 유머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고, 호되게 질책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사회적 감수성이 결여된 광고는 향후 우리나라의 어떤 채널에서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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