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Nov 17. 2019

윤희에게 (2019) : 마음에 자꾸만 발자국이 남아서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일생의 사랑이 된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뭔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미친 듯이 뭔가를 써서 남겨놓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글은, 오랜만에 그런 충동에 사로잡혀 쓰기 시작한 글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은 어느덧 어둑해져 있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며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는 방금 아름다운 것을 보았구나’ 하고..





조리사 일을 하며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윤희.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 전 피우는 담배 한 개비와 가끔씩 들여다보는 옛 앨범만이 그녀의 삶의 위안인 듯하다.


 영화는 윤희에게 편지를 부치는 한 나이 든 여인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편지는 그녀의 조카, 쥰의 것이다. 여인은 편지를 부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우체통에 넣는다. 그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


 한국에 무사히 당도한 편지는 윤희에게 도착한다. 윤희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윤희의 딸 새봄은 그 편지를 읽고 엄마의 과거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윤희는 고등학생 딸이 있는 싱글맘으로, 남편과 이혼 후 딸과 둘이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 남편은 아직 그녀에게 미련이 있는 듯 가끔 찾아와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그녀의 표정은 늘 예민하고, 긴장되어 있고, 불편해 보인다. 그저 삶에 한없이 지쳐 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면, 언젠가 소설 <스토너>에서 읽은 적 있었던 이 한 문장이 생각나 버리고 만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쥰. 겨울이면 눈이 소복이 쌓이는 삿포로의 오타루에서 수의사 일을 하며 늙은 고모와 고양이 쿠지라와 함께 살고 있다.


 쥰은 사람들의 관심을 참을 수 없었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의 삶과, 일본에서의 아버지와의 삶 중 그녀는 아버지를 선택한다.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엄마가 부담스러워서. 반대로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버지를 따라가기로 결심했고, 그녀의 예상대로 그는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고모에게 맡겨져 키워진다.


 윤희와 쥰은 한때 사랑하던 연인 사이였지만,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순 없었다. 쥰이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떠나던 때, 윤희는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다니다 오빠가 소개해준 남자와 바로 결혼해 버린다. 그리고 그 결혼 생활은, 중간에 새봄에게 말하는 전 남편의 말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네 엄마는 사람을 참... 외롭게 하는 사람이었어.”



 윤희는 애초에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윤희가 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백한 것처럼-"남은 삶은 형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녀에게 쥰과의 이별 후의 삶이란 그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자신의 형기를 마칠 때까지 하염없이 세월을 보내는 죄수의 시간과 같은 것이었다. 무엇을 바란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그 긴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는 그녀의 곁에서 그 남편 또한 행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쥰 또한 일본에서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감정과 회한을 억누르고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묘에 안치한 당일, 돌아오는 길에 쥰은 ‘왜 결혼하지 않냐”, “연애는 왜 안 하냐”, “남자 소개해줄까?”라는 타인의 무례한 참견에 버럭 화를 낸다.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담한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나 들어야 한다니. 그녀는 돌아가는 길에 동물병원에 들른다. 동물병원의 손님은 평소에 그녀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다른 여성이다. 그들 사이에 은밀하고 미묘한 기류가 감돌지만, 쥰 쪽에서는 상당히 방어적이고 조심스럽다.


 그리고 돌아온 쥰은 윤희에게 편지를 쓴다. 그동안 쭉 편지를 써 왔지만 부치지 못했다는 것도, 그래서 매번 이렇게 처음인 것처럼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는 것도. 가끔씩 너의 꿈을 꾼다는 것도. 쥰은 부칠 수 없는 편지라는 것을, 자신이라면 부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다만 그 그리움을 어디에든 쏟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잊을 수 없는 마음을 어떤 형태로라도 쏟아내어, 그저 후련해지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설마 그 편지가 한국의 윤희에게 도착하여 이후의 만남까지 이어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사실, 윤희의 딸 새봄이 없었다면, 그 편지는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저 의미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봄은 편지를 보고, 일본으로 엄마를 데려갈 계획을 세운다. 새봄은 딸로서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안쓰러워한다. 이렇게 예쁜데.. 엄마는 연애하지 않는 거냐고. 예전에 연애했던 적은 없냐고. 만기가 없는 형벌 같은 삶을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인 엄마에게, 새봄은 뭔가 작은 기쁨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에 엄마의 옛 친구가 있다는 일본으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여행을 위해 윤희는 오랜 시간 일해 온 회사에서 ‘쓰지 못한 휴가’를 쓰고자 했지만, 새파랗게 어린 영양사로부터 온갖 핀잔과 ‘휴가는 쓰게 해 주지만 언니 자리를 맡아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순간 윤희는 속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직장을 박차고 나온 그녀는 딸과 함께 삿포로로 떠난다.


 그리고 하얗게 눈이 가득 쌓인 오타루에서, 그녀는 힘든 세월을 견디면서도 잊을 수 없었던 일생의 연인과 조우하게 된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Moonlit Winter’다. 눈에 비친 달그림자가 떠오르는 제목이다.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찾으러 뒤져봤을 때 ‘만월’이라고 써진 이미지 한 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 단계에선 영화의 원래 제목이 ‘만월’이었던 것 같다.)


 영화 내에서도 ‘만월인가?’ 라던가, ‘달이 참 예쁘네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등 전반적으로 '달'과 ‘눈’에 대한 언급이 많다. '달이 참 예쁘네요'는 나츠메 소세키가 영어 교사 시절, 학생이 "I love you"라는 문장을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라고 번역한 것에 “일본인들은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냥 ‘달이 예쁘네요’ 로 번역하자”라고 한 이래로 쭉 일본에서 통용되고 있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한다. (이는 그가 죽기 전에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의 영어 제목이 Moonlit Winter라 함은, 하얗게 쌓인 홋카이도의 눈밭 위에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낸 아름다운 제목인 것 같다. 달빛이 드는 밤에는 윤희의 꿈을 꾸는 쥰. ‘이 곳은 눈이 너무 안 와. 눈이 오는 곳으로 가자’며 윤희를 이끄는 윤희의 딸 새봄과, ‘눈은 언제쯤 그치는 걸까雪はいつ止むのかしら 하며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쥰과 고모. 영화 내내 달과 눈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표상이자 매개체이다.


 ‘달’은 또한 시간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월歳月’이라는 말, 일본어로는 月日라고 하는데, 어찌 됐든 두 단어에도 각각 ‘달’이 들어간다. 저 단어를 들으면 해가 뜨고 달이 지듯, 혹은 달이 뜨고 해가 지듯. 매일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속절없이 나이 먹어 가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추억追憶이라 부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뒤쫓게 되는 무척 소중한 것. 이 영화는 그런 세월 속에서도 놓칠 수 없었던 어떤 소중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면 부쩍 눈물이 는다고 했던가. 내 경우에 늘어나는 것은 눈물보다는 회한이다. 앞으로 남아있는 나날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몸이 쇠하기 때문일까, 주변의 어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시기 때문일까. 부쩍 세월, 나이듦, 사라지거나 변해 가는 것들에 대하여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길게 보면 인생의 초중반쯤에 도달했을 타이밍이라, 잠시 멈추고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숨을 고르는 타이밍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성공도, 실패도 조금씩 경험해 오며 살아왔지만 이 쯤되면 아쉬운 부분도 여러모로 있기 마련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문득문득 다가오는 여백의 순간들에,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놓쳤던 것들, 미련을 가지고 아직 돌아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문을 닫기 전 카페에서 쥰과 고모가 대화를 나누던 내용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쥰은 고모에게 연애해 본 적이 있냐고 묻고(새봄이 윤희에게 물었듯이), 고모는 과거에 사귀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先が長くないから),
아마 지금 떠올리는 사람이 일생의 사랑이 되는 거겠지.”



 인생 남아있는 나날지 않으니, 종국에는 가슴에 품고 가끔씩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일생의 사랑이 되어버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말인가.  결국 사람이란, 사람의 일생이란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가끔씩 재생되는 것으로 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영화 코코(Coco, 2017)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회상되는 대상이 되는 존재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소멸은 없을지도 모른다.


 쥰은 다시 묻는다. '왜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어?’라고. 고모는 ‘그 사람은 영화를 좋아했는데,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가게 문을 닫을 때쯤, 조카를 기다리며 조금씩 읽는 SF소설이 놓여있다. 영화보다 SF소설을 더 좋아한 그녀는, 영화관의 방향제 냄새가 몸에 밸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던 그 사람과는 결국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이 맥락에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소재가 있다. 이 영화에서, 윤희, 새봄, 쥰은 모두 담배를 피운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혼자 몰래 담배를 피워보려는 새봄의 남자 친구의 말은 이 추측에 다시 한번 쐐기를 박는다.


“너 피울 때 같이 피우면 좋잖아.”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은 담배를 통해 표현된다. 윤희와 쥰은 결국 서로 함께 할 순 없었지만, 달을 통해, 담배를 통해, 끊임없이 가장 소중한 추억 속에 맞닿아 있었다.






 이 영화의 템포는 결코 빠르지 않다. 가득 쌓인 눈을 밟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만큼이나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뭔가가 그 뒤에 남는다. 천천히 나아가는 그 걸음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 윤희와 쥰이 20년 만에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조차 무척 조심스럽다. 각자의 세월을 견뎌온, 한때는 윤희의 딸 새봄만큼이나 어렸을 두 사람은 눈 내리는 날 서로를 다시 만난다. 이때의 눈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두 사람을 가려주면서도, 짐짓 포근하게 덮어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고대하게 되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이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어떤 극적인 감정표현도 없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각자의 방향으로 이어져 있던 눈 위의 발자국이 서로 마주 보던 순간의 감동은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로 충분히 강렬하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단 하룻밤의 조우로. 꿈속에서나 보던 옛 연인 - 아마도 일생의 사랑 - 의 안녕을 확인한 이후로. 마치 멈춰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스스로 짐 지웠던 형벌로부터 마침내 구원된 것처럼. 윤희는 자신의 삶을 찾아 더듬거리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지난 삶에서 윤희가 스스로에게 다정하지 못했기에, 어쩔수없이 정체성을 숨긴 채 결혼 생활을 한 그녀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존재(남편)로부터도,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그녀를 꾸준히 억압했던 존재(오빠)로부터 벗어나, 서울에 올라온 윤희에겐 이제 '꿈'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그 꿈을 향해 다시 조심스러운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윤희의 삶은 회복되었고, 앞으로 그녀는 새로운 마음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에선 쥰의 후일담은 비록 자세히 보여주지 않지만, 쥰 또한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매해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은 언제쯤 그치는 것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을 되풀이하며.


 이번의 인생에서, 그녀들의 발자국이 또 한 번 얽힐 날이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영화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윤희의 목소리로 전하는 다정한 편지의 '추신'이 무척 따뜻하게, 보는 이의 마음에 발자국으로 남는다.



"추신 : 나도 네 꿈을 꿔."



나도 그들의 꿈을 꾼다.

부디 두 사람의 남아 있는 삶이 서로에게 형벌이 아닌, 일생의 사랑으로만 오롯이 남을 수 있도록.


꿈속에 윤희가 나온다는 쥰의 말에 고모는 ‘꿈에서 뭐하는데?’라고 묻는다. 쥰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같이 있어, 꿈속에서...(ただ一緒にいるの。夢の中で…)”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마음이 아프면서도, 찡했던 순간이었다.





TMI지만, 이 글의 대부분도 Caffe moon에서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쉘부르의 우산(1964) : 결국엔 다 지나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