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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Feb 22. 2016

너의 우주는 아직 멀다

서른, 새로운 도전을 앞둔 친구에게

 

"나, 회사 그만뒀어."


꽤 큰 건설회사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던 친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이와 같은 카톡이 도착했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오랜 시간 취업이 되지 않아 방황하다 어렵게 들어 간 회사였다. 국내 대기업의 해외 지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신의 경력과 뛰어난 영어 실력을 둘 다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이 한 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너무도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며, 사직서도 제출한 상태라고 했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마치 이 회사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



사실, 그런 생각은 언제나 그녀의 안에 있었다. 단지 때마침 그녀의 등을 떠민 보다 직접적인 계기가 생겼을 뿐. 2016년, 그녀가 다니던 건설회사는 신규 수주에 실패했고, 그 여파가 말단사원인 그녀가 있던 팀에까지 미친 모양이었다. 그녀의 상사는 그녀에게 그녀의 성향과 맞지 않는 다른 일을 권유했고, 가뜩이나 염증을 느끼고 있던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대답과 함께 비로소 그 회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무엇보다도 두렵게 했던 건, 바로 자신의 상급자들이라고 했다. 회사의 경영상 위기에 부딪히고 보니, 자신보다 오히려 그들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대기업이라는 커다란 회사에 소속되어, 회사 내에서 주어진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며 살아왔던 그들의 삶이, 그 회사의 위기와 함께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단다.


막말로 자신은 지금 당장 회사를 나와도 아직 젊고 사회 경험이 별로 없기에 얼마든지 다른 도전을 해볼 수 있지만, 이미 10년, 20년 회사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그들이 이제 와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과장, 부장이라는 직함은  달았을지언정 그 직함을 제외한 상태의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그런 삶이 두려웠다고 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회사에 헌신하고, 동료들을 짓밟고 살아남아봤자 회사의 위기 앞에서 하염없이 흔들리고,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현실적인 모습에, 그럼에도 쉽게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굴레가 자신의 미래처럼 보여서 한없이 두려웠다고 했다.


그녀는 또 그 업종 자체에서도 흥미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건설이란, 2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 같다고. 자신이 이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서 어떠한 성취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름 건설 쪽에서는 최고의 대우라고 자부하는 회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루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마치 부품처럼 앉아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을 직접 받지도 못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소모되는 안정적인 나날들이 너무도 지겹다고 했다. 건설업은, 그녀의 입장에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산업도 아니었다. 그 한계를 보이지 않는 그 한결같음에 그녀는 그저 숨이 막혔다. 그래서 그녀는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회사를 나온 뒤, 그녀는 발리로 짧고도 긴 휴가를 떠났다. 그녀가 쉼을 위해 선택한 곳은 발리의 프리랜서들과 혁신가들, 스타트업 벤처 창업자 등 이 세상의 괴짜 노마드들이 모이는 협업센터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그녀에게,  그곳은 신세계였다고 했다. 매일 신기술, 창업, 투자, 철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세미나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전 세계에서 온 해커들과 프리랜서 엔지니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돈이나 나이, 성별, 국적 등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의 자유로운 삶은 그녀를 흥분시켰다. 그녀는 이렇게 느꼈다고 했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세계 여행하며 살 수 있는 직업은 '개발자'밖에 없는 것 같아."



그래서 그녀는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구체적으로는, 발리에서 만난 개발자들의 모험적인 삶이 그녀의 피를 끓게 했기 때문이리라. 발리에서 그녀가 만난 개발자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몇 년간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한 뒤 퇴사하고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돈에 구애받지 않게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 국제적으로 팀을 구성하여 프로젝트(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하고, 실리콘밸리에서의 경력을 살려 외주 업무를 하며 돈도 벌고, 자신의 삶을 즐기며, 공부도 하는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처럼 실리콘밸리에서의 경력을 쌓고 싶다고 했다. 자신 또한 경력을 쌓아서 일을 하고,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살고 싶다고. 그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도전해 보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으로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이다.


처음의 내게는 불안해 보였다. 그녀의 결심이. 건축학과 출신에, 코딩이나 개발, 컴퓨터 공학 쪽에는 전혀 문외한인 그녀가 서른인 지금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의문이라기보다는, 친구에 대한 걱정에 가까웠다.


신기한 것은, 추후에 한국에 들어온 친구를 직접 만나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내  마음속에도 알 수 없는 묘한 호기심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발리,  그곳이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친구의 입을 통해, 열의로 빛나는 눈동자를 통해 전해지는 그 강한 동경이 내 마음도 싱숭생숭 울렁이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페이스북을 통해 한 토크 콘서트의 개최 소식을 알게 되었다. 흥국생명에서 주최한다는 그 토크 콘서트의 주제를 보자마자 나는 즉시 내 친구를 떠올렸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4인과 함께 하는 강연회'. 신기할 정도로 운명적인 타이밍이었다. 주저 없이 강연 참석 신청을 한 뒤, 친구에게 말했다. 너와 함께 듣고 싶은 강연이 있다고.


그리고 2월 21일 일요일, 우리는 그 강연을 통해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4명의 젊은 한국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TAOS, University of Phoenix에서 근무하는 4명의 한국인들은 각각 자신만의 개성으로 미국 유학생활과 실리콘밸리 입성기를 생생하게 말해 주었다. 예상했던 바대로, 토종 한국인이었던 그들로서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았다. 대체적으로 20대 중반의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염두에 둔 부담스럽지 않은 강의 내용이었으나, 그랬기에 그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모든 이력의 이면에 있었을 엄청난 노력의 깊이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강연이었다.


비록 이미 국내에서 직장을 구해 일을 하고 있는 내게는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강연 중간중간에 직장인으로서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직장은 재미와 의미를 같이 찾는 곳이어야 한다.
- 윤종영 (TAOS)
인생에서 쉼의 시간은, 원치 않는 때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그러한 쉼의 시간이 아닐까.
바쁜 일상 속에도 틈틈이 스스로를 쉬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김숙연 (University of Phoenix)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소를 잃어버렸다면, 외양간은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 김창옥 (Twitter)


그중, 내가 가장 공감하며 들었던 것은 Facebook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천인우 님이 강조한 '깡'이었다.

당신에게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 Gavin Llewellyn (via flickr)


그의 삶의 드라마틱한 순간은 매번 '깡'을 내어 '저지른' 순간마다 왔다. 미국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는 싶었으나, 집안에 학비 부담을 주기 싫었던 그는 솔직하게 그 이야기를 에세이에 적었다. 입학사정관은 그의 솔직함과 '깡'에 감격하여 입학을 허락했다. Facebook에 입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긴장하여 면접을 잘 보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너무 긴장하여 면접을 잘 보지 못했기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수 있겠냐고 솔직하게 '깡'을 내어 말했고, 그 솔직함이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입사해서도 그는 말단사원 주제에 '깡'을 내어, 매니저가 반대하는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성공적으로 런칭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깡'이 결국은 자신의 삶에 성취를  가져다주었다고 자평했다.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경우의 수부터 따져보고, 이것 저것 계산하게 되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그러나 일단 '깡'을 가지고 질러놓고 나면, 그것에 맞게 Over-achievement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먼저 스스로에게 도전과제를 던져주고, 그것을 성취해 나가며 발전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옆자리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의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나이 서른에, 나름 안정적이고 네임 밸류가 있는 버젓한 직장을 팽개치고,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을 새로 도전하려는 그녀의 '깡다구'에 대해 생각했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녀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나는 오늘 강연을 했던 4명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삶이 부러웠지만 그것이 왠지 나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자율성을 주는 대신 직원들이 끊임없이 성장하길 원하는 그들의 세계에서,  매일같이 일상적으로 주어지는 압박을 견디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자신은 없다고. 다만 그들이 삶에서 중요시하는 가치가 '스스로의 성장'인 점에 자극을 받았으며, 나 또한 현재 있는 분야에서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좋은 자극이 되었다고. 또한 오늘의 강연을 통해 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들 4명이 말한 모든 키워드가 현재 너의 삶에서 느껴진다고. 너는 네가 성장하며 일할 수 있는, 재미와 의미를 한꺼번에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깡'을 낸 것일 테니. 지금 네게 찾아온 것은, 말 그대로 조금은 원치 않은 타이밍에  찾아온 '쉼'의 시간일 수 있지만, 그 시간 동안 너는 너 자신을 돌아보며 너에게 더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얼마든지 도전하렴. 너의 '깡'은 내가 받아줄게."

 


천인우 님은 강연 마무리에, '깡'을 부리는 사람 옆에는, 그 '깡'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지금 옆자리에 앉은 내 친구가 낯선 도전에 앞서  힘들어할 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강연을 통해, 그리고 대화를 통해, 이런 마음을 친구에게 전할 수 있어서, 친구의 도전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깡을 가진 그녀를 부러워할지언정,
걱정하지는 않는 내가 되기로 했다.

친구야, 걱정하지 말고 얼마든지 달려가렴.
너의 우주는 아직 머니까.

Cover Image by Christian Rond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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