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군데의 대형병원 의사들을 만나기로 했다. 첫 병원은 서울삼성병원, 국내 최고 명의 중 한 명이라는 외과의와 면담이 잡혔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암병동에 들어섰다. '암센터'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 낯설기만 했다. 내가 암병동에 가게 될 줄이야, 회환에 잠길 새도 없이 마치 명동 한복판처럼 병원을 꽉 채운 사람들에 놀랬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고, 저마다의 절박함을 가지고 병을 이겨내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음을, 나도 이 물결에 몸을 던져야 함을, 이제는 받아들여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의사는 내시경 촬영영상 등의 자료를 보고 촉진을 한 후 대장암의 기수별 완치율표를 보여주었다. 1기는 90%, 2기는 70%, 3기는 50%, 4기는 1~2%, 기수 별로 읊어주는 생존율이 마치 대학입시 커트라인 점수 같았다. 나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고, 외과의는 같은 설명을 수십 번 수백 번 되풀이해 온 듯 담담했다.
“정확한 건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만 대장암 중에 직장암이고, 기수는 3기로 예상 되네요.“
암이 항문 가까이에 있어서 절제하고 나면 항문을 살리지 못하고, 인공장루를 평생 달고 살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인공장루를 단 할아버지의 삶을 본 기억이 났다. 내가 그렇게 살게 될 수 있다니 충격이었다. 의사는 앞으로의 치료과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면담을 마무리 지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대형병원의 3분 진료란 거구나. 내가 살 확률이 50%라는 얘기를 듣는데 3분도 채 걸리지 않는구나. 쫓기듯 면담실을 나오니 간호사가 다음 일정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3기라니…”
복도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생존율에 대해 생각했다. 살지 못할 가능성이 50%라... 그러나 숫자만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돌 뿐, 그게 나의 죽고 살 가능성의 수치라는 게 실감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멀쩡해 보였지만 이곳에 있는 걸 보면 암환자임이 분명했다.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응달에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처절하게 불행에 떨고 있는 자'들이라 했다. 물끄러미 그들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수치에는 연연하지 말자.
말기나 4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엄마에게 전화해 직장암 3기임을 알렸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렇구나”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헤지는 거 같아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이제 모든 게 시작인데, 벌써 에너지가 소진되는 거 같았다.
두 번째로 간 서울대병원 의사는 삼성병원 의사와는 반대로,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는 분이었다. 촉진을 마친 그는 혀를 크게 찼다.
“왜 이제야 왔어.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인공항문을 단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암 환자들의 첫 시작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수술과 치료를 거듭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살기만 하면 되지, 그깟 장루 달고 사는 게 그리 문제인가라고... 어쨌든 당시에는 난 인공장루를 절대 달고 싶지 않은 생각에, 간절한 눈으로 의사에게 항문을 살릴 수 있냐고 물었고, 의사는 화면을 한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믿고 따라와"
날 믿으라는 말이 그렇게 마음에 평안을 줄 수가 없었다. 그제야 공포와 불안을 잠재우고 숨을 쉴 수 있을 거 같았다. 바로 서울대로 결정하고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왔는데, 그 의사를 알아본 동생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요즘은 선방사선으로 암덩어리의 크기를 최대한 줄인 후에 수술을 하는 추세인데, 그 의사는 방사선을 하는 동안 암이 번질 수 있다는 이유로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했다. 개복 수술부터 해서 암을 제거하는데, 그래서 조직의 많은 부분을 잘라내야 하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동생의 말에 요즘 암치료법에 대해 알아보고, 암카페에 가입하여 질문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병으로 수술을 받은 환우 가족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조합하니 동생의 의견이 맞는 듯했다. 내 마음은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는 서울대 의사로 향했지만 느낌만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이성적인 판단도 함께 중요한 때였다.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생존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산병원의 외과의를 만나고 결정하기로 했다. 희끗한 머리에 인자한 표정의 의사를 보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져 고민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을 모두 가보았는데 제안한 치료법이 완전히 상반돼서 결정하기가 힘드네요."
아산병원에 오기 전에 두 병원의 의사들을 만난 것에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말문을 열었다. 서울대병원 선생님은 삼성병원의 진료결과서류를 보면서, 거기서 치료받지 뭐 하러 나한테 왔어?라고도 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을 정하기까지 병원순례를 다니는 게 맞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인가 보다.
"수술 전에 몇 달에 걸쳐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암이 퍼질 수도 있기는 하죠. 그런데 그 확률은 아주 낮아요. 그래서 요즘은 선방사선으로 최대한 암크기를 줄이고 수술을 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요."
정중하고도 친절한 분이었다. 이로써 서울대병원은 고민의 범위에서 제외되었고, 동일한 치료법이라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분에게 치료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하필 안식월을 앞두고 있어 몇 달 기다려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의사 선생님도 본인을 기다리지 말고 삼성에서 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남편은 병원과 집과의 거리, 여러 가지 상황 등을 들어 삼성병원으로 결정하자고 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몇 달이나 치료를 미루는 것은 아닌 거 같아 나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고 겪어보니 삼성병원의 선생님은 너무나 바빴고, 까칠했다.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이해하려고 해도 의사의 무심함에 종종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산병원의 선생님이 떠오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