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흔다섯 생일이 이렇게 간다

by 뮤뮤

삼성병원의 치료계획이 세워졌다. 암덩어리를 최대한 작게 줄이기 위한 방사선 치료를 31번 받은 후 2달의 휴지기를 갖고 절제수술을 하기로 했다. 이 일정에 맞게 나를 케어하기 위한 가족들의 역할 분담이 시작됐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친정집에서 엄마의 케어를 받으며 지내고, 아이들은 지방에 계시는 어머님이 올라오셔서 봐주기로 했다.


서른한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면 두 달 반은 걸릴 예정,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게 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집을 오래 비우려니 이것저것 정리하고 갈 일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출발 전까지 삼일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학교, 학원 선생님들께 나의 부재 일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부터 친한 엄마에게 혹시 모를 긴급상황 때 연락을 부탁하는 거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려고 노력했다.


출발 당일, 오전부터 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어머니를 보니 더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 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작은 거라도 정리해놓고 가고 싶었다. 어머니가 아셔야 할 인수인계 리스트 작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첫째의 학교 하교시간과 학원시간, 둘째의 하원시간과 요일별 준비물 등등을 메모한 내용이 종이 한 바닥을 가득 채웠다.


내가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어머니는 자주 소파에 몸을 누이셨다. 예전보다 체력이 더 떨어지신 듯했다. 저렇게 약해지셔서 어떻게 이 큰 살림을 하실 수 있을까. 단출하게 혼자 지내시다가 하루아침에 아이 둘을 건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진다는 말, 그대로였다. 차라리 내가 힘들면 힘들었지, 누군가에게 내 일을 맡기는 게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 빨리 나아서 모든 걸 정상으로 돌려놓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최선이었다.


빠진 것이 없는지 체크를 거듭하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했다.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친정으로 가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현관문을 나서자 어머니와 아이들이 마중을 나왔다. 문득 결혼 전 회사 다닐 때 팀장님의 얘기가 생각이 났다. 뇌에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러 집을 나서던 날,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기에 아이들을 아예 보지 않았다고,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랬다는 마음이, 지금에서야 헤아려졌다.




아이들… 병을 알게 된 이후로 나의 격변하는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내내 잘 지냈다. 병원을 결정하기 위해 남편과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친정집에 가있고, 며칠 자고 오는 날도 있었다. 갑자기 달라진 집안 분위기와 생활패턴이 아이들한테 영향을 줄까 걱정이 되었는데 예상외로 아이들은 평온했다. 잘 놀고, 잘 먹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이 고개를 들고는 했다.


"엄마가 조금 아파서 병원 다니는 동안 외할머니집에 가있을 거야"라고 알려줄 때도 크게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문을 나설 때 아직 5살밖에 안 된 둘째가 울며 매달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나의 마흔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매년 생일이면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아이들의 생일축하 노래도 받고 고사리 손으로 만든 선물에 기뻐하고는 했다. 그러나 올해 생일은 미역국은커녕 집을 떠나야 한다.


남편과 차에 올랐다. 이미 어둠이 도시에 깔리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라디오방송 디제이의 조곤조곤한 말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거리의 불빛이 빗물에 투영되어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뽀얗게 보였다. 세상은 여전히 있는 그대로 거기 있었다. 병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내 삶은 너무나 달라졌는데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고, 일어나고, 책을 읽거나 레고를 하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일상이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갑자기 뚝 끊어졌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또 다를 터였다.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어두운 빗길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친정집에 도착했다. "밥 잘 먹고, 치료 잘 받고..." 남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나도 순간 목이 메었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고 고되어서 울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들 보려면 어머님 힘드실 거야. 많이 도와드려."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남편을 보냈다.


집에 들어가 부모님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결혼 전 쓰던 내 방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려니 문득 옛 시절이 생각났다. 14살부터 지냈던 방이라 여러 추억이 많이 깃든 곳이었다. 어린 시절, 이 침대에 누워 어른이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생각하다가 잠들곤 했다.


찬란한 미래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어도 병든 몸으로 돌아오게 되는 건, 경우의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도 마흔다섯의 생일날... 하지만 회환의 감정을 하나하나 음미하기에 너무 지쳐 있었다. 병을 알게 된 날 이후로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쳐와서인지 이제 감정은 소진되고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었다. 내 감정뿐 아니라, 우리 가족과 친정, 시댁의 입장, 어떤 결정을 하는 단계에서 누군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내내 주변을 살펴야 했다. 이제야 한 단계를 통과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까.


적막 속에 멍하니 있으려니 남편도 아이들도 저 멀리 느껴졌다. 내가 정말 결혼해서 가족이 있었나 싶게 모든 게 아득해졌다. 마흔다섯의 중년이 된 것도, 암에 걸려 가족들을 두고 돌아오게 된 것도, 마치 꿈을 꾼 듯 희미했다.


이 모든 게 정말 꿈이고 싶다.


왜 이렇게 된 거 같아?

열네 살의 내가 물었다.


글쎄...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외면해서였을까.

마흔다섯의 내가 대답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주로 외면했어.

갈등이 싫어서, 힘들어지기 싫어서 많은 걸 외면했지.

그게 날 보호하는 방법인 줄 알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네.


많은 외면 끝에 결국 나는 나 자신마저 외면하게 되었다.


눈물로 베갯잇이 젖어갔다.


그렇게 마흔다섯 생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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