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치료 시작 일주일 전, 어떤 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검색했다가 눈이 커졌다.
‘아… 정말?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아…’
방사선 조사는 당연히 암이 생긴 부위에 하는데, 치료를 받을 때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나는 직장암이니까, 항문 주변에 방사선을 조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또 엉덩이 내놔야 하는 거야?‘ 병원을 다니며 이 의사 저 의사 앞에서 엉덩이 까기를 수 차례 한 기억이 났다. CT촬영처럼 기계 안에 들어가면 그나마 나을 텐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환하디 환한 치료실 베드에 엎드리고 있으면, 기계가 회전하며 엉덩이 치료 부위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본격적인 방사선 치료를 받기 일주일 전에 방사선 모의 치료를 한다. 이미 촬영해 놓은 영상을 참고해서 방사선 조사를 받을 부위를 피부에 표시해 놓는 것이다. 샤워해도 없어지지 않게 피부 위에 특수 잉크로 선을 긋거나 점으로 표시해 놓는데 여자 간호사가 진행했다.
조사받을 부분이 정확하게 표시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엉덩이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마취된 상태는 아니다 보니 간호사가 엉덩이에 마킹을 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엉덩이에 힘 빼세요!” 직원의 엄한 목소리에 힘 빼는데 힘을 쓰느라 애를 먹었다. 그 와중에 여자분이어서 다행이다 했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도 여자분이 배정될지,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가족들에게 말하니 그냥 치료일 뿐인데 그런 생각을 왜 하냐며 의료진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렇기는 한데, 아무리 치료라고 해도 외간남자 앞에서 엉덩이 까기가 너무 싫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엎친데 덮친 격, 방사선 치료받기 전날 생리가 시작됐다. 이걸 어째, 생리 중이라는 고백까지 하게 생겼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방사선 치료날이 되었고, 미간에 팔자 눈썹을 하고 방사선 치료실에 들어섰다. 치료실 한가운데 커다란 방사선 기계가 놓여 있고 그 앞에 베드가 있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남자 직원 두 분이 나를 맞았다. 한 명은 30대 후반, 다른 한 명은 20대로 가늠됐다. 굳이 남자여야 한다면 차라리 나이 많으신 분이 나을 텐데, 젊은 남자들이라니, 긴장감에 몸이 절로 굳는다.
어리둥절하게 서있는 나를 직원은 탈의실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나오라고 안내했다. 슬리퍼 갈아 신는데 왜 굳이 탈의실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시키는 대로 했다. 슬리퍼를 신고 베드로 오니 벨트를 풀고 엎드리라고 한다.
“아, 그런데 제가 지금 생리 중인데요. 괜찮을까요?”
듣는 사람도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종종 있는 일인 듯 직원은 표정의 변화 없이 괜찮다고 한다. 문득 방사선 조사를 받다가 변을 보는 사람도 있고, 구토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암환우 카페에서 본 기억이 났다. 방사선을 여러 차례 받다 보면 조직이 화상을 입어 예민해지기 때문에 그런 참사가 일어난다는 것. 그런 때를 대비한 듯 베드 위에 흰 천이 깔려 있었다.
베드에 엎드리니, 두 직원이 양쪽에서 바지 허리춤을 잡는다. ”셋에 허리를 드세요. 하나둘.” 셋에 얼른 허리를 들었다. 그 사이 직원들이 바지를 확 아래로 당겨 내렸다. 결국 이렇게 바지가 벗겨지고 마는구나. 베드에 엎드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띡띡, 기계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베드가 위로 올라갔다. 베드 작동이 멈추자 직원들이 허리와 엉덩이, 다리 등을 건드리며 자세를 맞춰줬다. 엉덩이에 마킹된 점과 조사될 부위를 일치시키기 위한 작업인 듯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나 두 직원은 나가고 혼자 치료실에 남겨졌다. 잠시 후 우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엎드린 채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생리혈이 걱정 됐다.
제발 조금만 참아다오. 몇 분만 버텨 다오.
5분 정도 지났을까. 기계가 멈추고 다시 직원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려는 나의 움직임을 눈치채고는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친다. “베드가 내려와야 해요! “조금 있으려니 올라갔던 베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그 사이 직원들은 내 양옆에 서서 작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실제로는 몇십 초 걸렸을 터인데 영겁의 시간 같았다. 어쩐지 그 시간 동안 직원들이 내 엉덩이를 보고만 있을 거 같은 망상에 또다시 괴로웠다.
“이번에도 하나 둘 할 테니 셋에 허리를 드세요.” 구호에 맞춰 허리를 드니 끙차 하며 다시 바지가 입혀졌다. 아, 내가 입어도 되는 데는 굳이 입혀주기까지. 식은땀이 났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것으로 끝난 거 같았다. 나의 썩은 표정을 읽었는지 한 직원이 “괜찮으세요?”하며 베드에서 일어나는 나를 부드럽게 부축해 주었다.
모든 게 너무 부끄러운 마흔다섯 아줌마는 “괜찮다”며 탈의실로 뛰쳐 들어갔다. 들어오고 보니 슬리퍼도 신지 않은 맨발 바람이었다. 바지를 대충 추스르고 탈의실에서 나오니 직원 한분이 내가 남기고 온 슬리퍼를 손수 가지고 오신다. “수고하셨습니다.” 던지듯 인사하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반 뛰는 걸음으로 치료실 밖을 나왔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은 서른 번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 걸 서른 번이나 해야 하다니, 그냥 치료일 뿐인데, 왜 이렇게 부끄럽고 싫을까, 의사들이 하는 촉진도 사실 굴욕이라면 굴욕적인 자세인데 그 과정은 아주 민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건 삼십 대에 버스에서 굴러 떨어진 후 최대 굴욕일 듯싶었다. 그때, 난 긴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리던 중 치마가 계단에 끌렸고 뒤이어 오던 남자가 실수로 내 치마를 밟는 바람에 난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넘어진 것만으로도 창피한 일인데, 하필 밴딩 스커트라 치마가 엉덩이 중간까지 벗겨졌고 뒤에 오던 남자의 “괜찮으세요?”를 뒤로 하고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친 게 인생 최대의 굴욕사건이었다. 그러나 마흔다섯에 엉덩이를 완전히 내놓는 것으로 굴욕사건이 갱신되었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을 식히면서 문득 다른 환자들을 생각했다. 모두들 자신의 환부를 내놓고 치료를 받을 것이다. 가족들 말대로 그저 치료일 뿐이라고 자신을 달랬다. 신체 부위 중 그래도 엉덩이가 가장 쎈 듯하지만, 부끄러움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번 받을 때마다 암이 확확 쪼그라들게 해달라고, 쪼그라들다 못해 아예 없어지라고, 그 기도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하지만 다음날, 난 또 어색한 얼굴로 치료실에 들어가고, 방사선 치료 후에는 쫓기듯 탈의실로 뛰어 들어간 후, “수고하셨습니다” 재빨리 인사하고 치료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왜 저럴까 싶은 직원을 뒤로하고.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던 방사선 치료, 그렇게 서른 번을 반복해야 했다. 이겨내야 할 것은 병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