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가 물었다, 너는 왜 웃지를 않냐고.

by 뮤뮤

부모님과의 새삼스러운 동거가 시작됐다. 결혼하고 8년 만이다. 방사선 치료 시작하기 삼일 전에 친정으로 거처를 옮긴 후,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일상이 시작됐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은 청소가 5할이었다. 매일매일, 하루종일, 끊이지 않고, 집안은 어질러져 있었다. 땀을 흘리며 온종일 정리하고 쓸고 닦아도, 한두 시간 후면 '복붙'하듯 백만 가지 장난감으로 어지러워져 있고는 했다. '엄마'가 되려면 모정만큼 중요한 게 청소할 체력이었다. 난장판 한가운데서, 내 몸뚱이 하나만 잘 챙기면 되던 결혼 전 시절을 생각하고는 했다. 그때가 좋았지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꿈(?)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아이들 생각이 아주 많이 나지는 않았다. 어머님과 남편이 잘해줄 거라 믿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애들이 눈에 어른거려 아무 일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순간순간 생각이 났다. 지금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인데. 저녁 먹고 숙제할 시간인데.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인데. 8년 동안 정해진 시간대마다 했던 일을 몸이 기억했는지 아이들이 움직여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나도 일어나서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았다. 이제는 아이들 소리로 가득 찬 어지럽혀진 거실 대신 조용하고 잘 정리된 친정집 거실이 나의 공간이 되었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다가 TV를 켰다. 그동안 앉아서 TV 볼 새도 없이 지냈다. TV에 나오는 얼굴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멈췄다. TV속 연예인들이 농담을 하며 세상 즐겁게 웃고 있었다. 한 3분 정도 봤을까, 주방에서 나물을 손질하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을까. 내 마음은 썪어들어가는데. “


난 조금 놀랐다. 엄마 마음이 그렇구나 알게 되서 놀란 게 아니라, 그런 속내를 저렇게 나한테 솔직히 표현하는 데 놀랐다. 나 같으면 내 속이 무너져도, 듣는 이를 생각해서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TV를 끄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 엄마가 저랬었지.'


누군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으면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답할 거 같다. 성정이 급하기도 했고,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가 제일 컸다. 그 화를 마음에 담아두기보다 우리한테 쏟아내는 식으로 풀었다. 그중에 아들인 막내 동생은 제외였다. 딸인 나와 여동생에게 그야말로 있는 대로 푸셨다. 엄마 스스로도 말씀하셨다. “나는 입으로 풀어서 스트레스 때문에 걸리는 병은 없는 것 같다"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우울의 터널을 겪고 있었던 거 같다.


내가 엄마와 성격이 비슷했다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나는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행동보다 생각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답답해했다. 엄마한테 잘해드리고 싶었지만 엄마와 가까워지려는 시도는 항상 결과가 좋지 않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존법을 터득했다. 평행선을 유지하며 되도록 접점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엄마와 다시 살게 되었다. 그것도 암이라는 중병을 얻어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예전처럼 적당한 평행선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엄마와 갈등까지 생긴다면 정말이지 너무 힘에 겨울 거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넌 왜 웃지를 않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엄마를 쳐다보았다. "웃어야 복이 오지, 깔깔 웃고 떠들어야 암도 나간다더라." 한숨이 나왔다. 병에 걸린 딸이 축 쳐져 있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씀인 줄은 알겠는데,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명랑한 얼굴로 웃기까지 하라니. 나의 비통하고 무너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아픈 이의 고통과 외로움은 배 아파 낳은 엄마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오로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나도 울고 불고 원망을 늘어놓고 분노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면 가뜩이나 힘든 가족들의 마음이 더 무너질 걸 알기에 참았다. 이불속에 숨죽여 울지라도, 가족들을 만날 때는 전과 다름없이 보이려고 애썼다. 나의 최선은 여기까지이다. 웃기까지는 못하겠다.


아니다. 웃기도 했다. 가족들과 모여 있을 때, 특히 동생들 앞에서 웃음을 띠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우울해하거나 굳어 있으면 가족들이 불편해하거나 걱정할까 봐서였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간에 긍정적이고 씩씩한 모습으로 이 난관을 용감하게 헤쳐나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식을 들은 가까운 지인들은 잘 될 거라고 말하고 나 또한 그 말에 부응해 낙천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애써 그런 모습을 보이다 보면 마음도 함께 에너지가 발산되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사실은 두려움, 절망, 상실로 힘들었다.


멀쩡한 사람도 계속 밝은 모습을 유지하기 힘든 법이다. 부모님 앞에서는 그 노력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감정을 쏟아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애써 웃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엄마는 "앞으로는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살라" 했지만, 나의 무표정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






엄마와 살갑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화가 많은 만큼 웃음도 많고, 강한 듯 보이지만 소녀 같은 면도 있는 엄마가 노년에는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칠순을 앞둔 엄마의 고생길을 의도치 않게 활짝 열어주고 말았다. 암이라는 병은 혼자만의 불행이 아니었다. 무탈하게 살던 가족들은 난데없이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가족을 둔, 드라마 속 인물이 되었다.


민폐 끼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내 성격과는 상관없이, 칠순을 훌쩍 넘긴 어머님께 살림을 맡겨야 하고, 다 늙으신 부모님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과 부담을 떠안겨야 했다. 병도 병이지만, 온 가족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부담감이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 병이 바로 암. 병 그 자체와 상황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 아이러니함. 견뎌야 할 것은 병만이 아니었다. 속에서 자꾸 올라오는 부담감을 외면하고 가족들과 순탄하게 이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환자로서 또 다른 숙제였다.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아픈 사람에게 긍정적인 겉모습을 강요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친구, 동료, 의료진, 그 밖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사회가 아픈 사람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고, 아픈 사람은 이런 겉모습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