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누나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나를 그렇게 모르니

by 뮤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다섯 살이었다. 동생은 귀염성 있는 얼굴에 볼은 통통하고 보드라웠다. 내가 볼에 하도 뽀뽀를 해대서 남동생의 볼은 갈색의 뽀뽀자국이 가실 날이 없었다. 동생을 무척이나 이뻐한 사람은 비단 나만이 아니다. 딸 둘을 연이어 낳고, 마지막이다 하면서 낳은 아이가 드디어 아들, 엄마는 막내를 총애했다.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집안의 서열 1순위였고, 모든 대소사가 막내 위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대접에도 동생은 다행히 왕자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엄마는 막내가 집안을 빛낼 인물로 자라길 바랐다. 동생이 공부에 전념하도록 거실 티브이도 없애고 발걸음마저 조심하며 살았는데 그건 동생을 위해서라기보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서였다. 여동생과 나는 엄마가 절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막내가 잘 되길 바랐다.


다행히 동생은 인지도 높은 대학에 합격해 대학원까지 장학금을 받고, 학교의 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국내 대기업에 입사했다. 동생이 들어간 부서는 미국 명문대 출신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가족모임에서 친척어른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던 부모님의 빛나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동생은 전형적인 엘리트의 길을 부지런히 가느라, 나는 그 어렵다는 ‘평범한 삶’을 평범하게 사느라, 우리는 살면서 마주할 시간이 적었다. 가족이니까 동생을 잘 안다고 막연히 생각했지, 사실은 동생이 무엇을 진심으로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가치관은 어떤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잘 몰랐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래서 총 31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두 달 반 넘게 동생과 병원에 가기로 했을 때, 새삼 깨달았다. 여동생과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지만, 막내와 둘만 있는 시간이 처음이라는 것을.




병원까지는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로, 운전하는 동생이 지루하지 않도록 조수석에 앉은 이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의무보다는 침묵이 어색서였다. 일단 가벼운 주제인 드라마 얘기로 말문을 텄다. 내 인생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에 대해, 그 드라마의 매력이 무엇인지, 극 중 주인공의 큰형에게 내가 왜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등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아저씨'이야기를 한 지 며칠 후, 병원에 같이 가는데 동생이 그 드라마를 찾아봤다고 했다. 재밌어서 며칠 만에 정주행 했다며 말하길, “그런데 삼 형제가 얘기할 때 누가 재수 없는 얘기를 하니까 '퉤퉤퉤'하고 침 뱉는 장면이 나오더라." 그리고는 나를 힐끗 보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그거 보고 아 그래서 누나가 그랬구나 이해되더라고."

"내가 뭘 했는데?"

"누나가 말하다가 갑자기 차에서 침 뱉었잖아."

내가 침을 뱉었다고? 그럴 리가. 기억을 더듬다가 바로 생각이 났다.

"내가 무슨 침을 뱉었냐. 그냥 흉내 낸 거지!"

억울해하며 난 말했다.

"난 그런 게 있는지 몰랐어. 그래서 누나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잖아."


어이가 없었다. 며칠 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동생의 한 얘기가 어쩐지 좀 불길하다 싶어서, 재수 없는 이야기라며 침을 “퉤퉤퉤” 뱉는 시늉을 한 적이 있었다. 미래를 초치는 말에 '퉤퉤퉤'를 세 번 해야 그 불길함을 내쫓을 수 있다는, 샤머니즘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동생은 살면서 본 적이 없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행동을 했을 때 동생 입장에서는 내 행동이 괴상해 보였고 누나가 좀 이상한 사람이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드라마를 보다가 비슷한 장면을 보고서야 오해가 풀렸다고 했다.


동생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 간에 너무 정중했다. 우리 삼남매는 머리가 좀 큰 후에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현실성이 떨어지는) 우애를 가진 삼남매였다. 서로의 삶을 존중한다는 생각에 일정한 선을 지키며 산 것이 어쩌면 관계의 구멍을 만든 원인이 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작은 행동 하나에 누나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랬다. 이상한 사람이 절대 아닌 나는, 단 며칠이라도 동생이 나를 오해한 사실이 매우 억울했다.




초가을에 시작된 방사선 치료는 겨울 초입에 들어서야 끝이 났다. 우리는 조금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을까. 선명한 건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는 기억이다.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는 가을날의 드라이브가 좋기도 했고, 새삼스러웠지만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의 스케줄이라고는 걷기 운동과 방사선 치료, 이 두 가지밖에 없던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저 멀리 한강에서 유유히 떠가는 유람선을 보거나, V자 모양으로 대열을 맞추어 이동하는 철새를 보노라면 숨을 옥죄이던 현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으로 갈수록 극도의 피곤함과 후유증에 몸은 힘들었지만 두려움은 점차 옅어져 갔다. 원래의 내 낙천적인 성격이 살아나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의지하는 생활도 처음과 달리 점차 익숙해져 갔다.


하나를 잃어도 무언가 하나는 얻게 되는 것, 그것을 잘 찾아내는 것이 내 앞에 놓인 긴 여정에 지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거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