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첫 수술로 일정이 잡혔다. 첫 수술이니 의사 선생님이 피곤하지는 않겠지. 혹시 잠이 안 깨서 몽롱하시면 어쩌지. 나 보다 의사선생님의 컨디션이 염려됐다. 그의 상태만큼 수술결과도 비례할 거 같기에.
팬티까지 탈의하고 수술복으로 입혀졌다. 몸이 헐렁해진 느낌으로 휠체어에 앉았다. 여러 복도를 지나 수술실 앞에서 남편과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가족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를 안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괜찮은데 엄마를 보면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서이다.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지 않고 커다란 방에 남겨졌다. 거대한 냉장고처럼 한기가 가득 찬 방이었다. 발가락이 시려서 따스한 담요 좀 덮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연이어 휠체어에 탄 환자들이 들어와 나처럼 오도카니 남겨졌다. 하루의 첫 수술은 같은 시간에 동시에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열 명쯤 되었다. 내 앞에 앉은 젊은 여성이 숨죽여 울고 있었다. 손을 잡아 주고 싶었지만 잠자코 모른 척했다.
언제쯤 시작할까. 둘러보니 구석에 앉아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너덧 살 밖에 안 된 애였다. 머리카락이 없는 걸 보니 소아암인 듯 했다. 아빠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표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로 아이 뒤에 서 있다. 아이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제발 이것이 마지막이 되렴. 앞으로 뛰어놀 일만 남기를 바라.
드디어 수술실로 입장. 베드에 누우니 손발이 묶이고 주렁주렁 몸에 무언가가 달린다. 스텝들이 분주히 오가는데 외과의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전공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가까이 붙어 내 어깨 어딘가를 한참을 응시했다. 당차고 야무져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잘 부탁드린다고 속으로 인사를 했다. 마취약 들어갑니다. 짧은 설명이 붙었다. 아 이렇게 마취가 되는 건가? 로봇담당의사는? 로봇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는데 로봇수술전문의도 보이지 않았다. 1,200만 원이 넘는 로봇수술인데 정말 로봇이 활용되긴 하는 건가. 로봇이라는게 어디 있는 거지?
그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마취약이 몸에 퍼지는 묘한 느낌도 없이 순간적 단절. 꿈도 꾸지 않은 것 같다. 눈을 떠보니 또 다른 대기실. 두리번거리니 스텝들이 병실로 이동시킬 준비를 한다. 수술이 끝난 거였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엄마와 동생, 남편이 따라 탔다. 힘이 없어 눈을 가늘게 뜨고 가족들을 보았다. 엄마가 울먹이며 내 이름을 작게 불렀다. 어쩐지 모두가 침통한 표정이다. 수술이 잘 안 됐나.
수술하고 하루가 지나서야 남편이 내 상태를 알려줬다. 암이 예상보다 더 많이 퍼져 있었다고 했다. 림프절을 잘라내느라 수술이 7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외과의가 수술하다 나와서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림프절을 너무 많이 잘라내서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잘 걷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검색해 보니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다. 아니면 회복 되더라도 오랜 시간 통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경우에 없는 수였다. 걷지 못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암에 걸린 일 부터 시작해서 나와는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계속 내 일이 되고 있다. 어떻게 나는 예외라고 생각했을까. 생에 대해서 그 무엇도 자신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몰라서 오만할 수 있었고, 무지해서 자신만만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나는 이제 그 무엇도 자신할 수 없을 것 같다.
수술 후 이틀이 지나 걸어보라고 할 때 다리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 걸어야 한다기에 보조기를 밀고 남편의 부축을 받아 겨우 한걸음 씩 떼어 병실 복도로 나왔다. 병실 복도는 수술에서 회복 중인 수많은 환자들이 걷기 연습을 하는 장소였다. 몸에 기계나 약병을 단 사람들이 말없이 한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서 다친 병사들의 행렬 같았다. 나도 그 행렬에 합류했다. 벽에 붙어 천천히 나아가는데 복도 끝에서 보호자로 보이는 어떤 중년의 여성분이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녀 옆을 지나가는 순간 큰 소리로 나에게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흔들어 보였다. 흠칫 놀랬지만 희미한 미소로 답했다. 이 수많은 병사들 중 왜 나한테 응원의 인사를 주셨는지 모르겠다. 젊은 사람이 안 됐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방사선 치료 효과가 아주 좋아서 관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까 기대했었다. 아주 드문 경우이지만 방사선만으로도 암이 사멸해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상 아무래도 그것은 헛꿈이 된 듯하다. 더 나쁜 소리를 안 듣기만을 빌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새해 인사 따위는 들리지 않았고 다른 날과 똑같은 시간에 소등되었다. 침대에 앉아 어두운 병실과는 달리 반짝이는 도시를 내다보았다. 저 새해에도 걸을 수 있는 거죠? 하나님께 물어보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병원에서 지나가고 있다.
해피뉴이어,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