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를 벗어났던 삶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서른한 번의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아이들, 남편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삼 개월 만이다. 하지만 두 달 뒤에는 암을 절제하는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다섯 시간이 넘을 큰 수술이 될 것이다. 회복하기까지 친정에 가 있을 예정이라 다시 얼마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주어진 두 달이라는 황금기를 마음껏 누리는 것에 집중하자.
환우들끼리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수술받기 전까지의 시간을 황금기라고도 한다. 방사선으로 암덩어리가 쪼그라들면서 암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되니 체력이 좋아진다. 다른 어떤 치료나 약으로 힘들지도 않기에 음식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시기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먹어서는 안 되겠지만.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고열과 혈변, 빈혈 등으로 힘들었는데 방사선 치료의 효과로 이 증상들이 거의 사라졌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인 극도의 피로감과 항문 따끔거림, 잦은 설사, 울렁거림 등의 증세도 치료를 마치니 빠른 시간 안에 사라졌다.
그야말로 몇 년 만에 통증에서 벗어난 삶이었다. 이렇게 아프거나 괴롭지 않을 수가 있구나. 몸이 좋아지니 마음까지 창창해진 느낌이다.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춤을 추기도 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마음껏 걷고, 운동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 안을 쓸고 닦았다. 아프지 않은 몸을 있는 힘껏 쓰고 싶었다. 앞으로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한동안 천국에 있는 듯 행복에 도취된 나날을 지내다가 다른 이의 불행에 불현듯 내 처지를 깨닫게 되었다. 라디오에서 한 사연을 들은 날부터였다. 암말기로 더 이상의 치료가 소용없어진 상황이라, 주변 정리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삶을 돌아보니 감사한 사람이 참으로 많은데, 매일 좋은 음악으로 행복한 오후를 선사해 준 디제이님께도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몰랐던 팝송도 많이 알게 되고, 더듬더듬 따라 부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감사하다며, 짧은 사연은 그렇게 끝났다. 디제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힘내셔서 좋아졌다는 사연을 다시 보내달라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의 말이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감사하고, 편안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결국 디제이의 목이 메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힘내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은 디제이의 마음을 생각했다. “수고했다”는 말은 들은 그 환우의 마음을 생각했다. 나라면 격려의 말을 듣고 싶을 것 같다. 나 스스로 "이제 정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어도, 상대방으로부터는 "포기하지 말자"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 같다. 수고했다는 말은 이제 그만 가셔도 된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방사선 치료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걷기와 생각하기 뿐이었다. 걷고 또 걸으면서 내 불행에 대해 디테일하게 생각했다. 원래의 나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일을 꺼려했다. 후회나 반성의 시간은 의미가 있지만 더 길어지면 독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되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벼운 병이라면 건강관리를 돌아보는 정도로 그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은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릴 시절부터 시작해 청소년기, 대학시절을 거쳐 직장을 다니던 시절, 결혼하고 지금까지를 훑어보니 각 시절마다 지금의 결과를 불러올 만한 요소들이 보였다.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던지, 잘 못 먹고 지냈던지 하는 것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도 많고, 저렇게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몸에 안 좋은 음식과 술담배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음이 보였다. 아니면 그저 운이 나빴던 걸까. 그 숱한 연구에도 암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이런 생각들을 거듭하자니 나는 완전히 불행한 존재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운동과 채식,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누군가에게는 암덩어리가 생겨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고, 술과 담배, 심지어 마약 같은 것에 빠진 누군가에게는 아무 병이 생기지 않기도 한다.
울다 지치는 것처럼, 생각하다 지치는 순간이 왔다. 나의 슬픔과 고통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지나친 집중은 자아과잉상태나 불안을 불러온다. 돌아보기를 그만했다. 그러나 문득문득 그 라디오 사연이 떠올랐다. 지금쯤 어떻게 지내실까. 내가 그 상황이 되면 주변에 감사인사를 남길 정도로 담담해질 수 있을까. 영영 없을 이야기가 아닌 내 미래가 될 수도 있기에, 그 사연이 이렇게 복기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듣지는 않겠다. 긴 세월이 지나 마지막이 오면 수고했다는 말 대신, 나로 인해 즐겁고 행복했다는 인사를 듣겠다. 불행이 불행으로 끝나지 않게 힘쓸 것이다. 무탈이 감사임을 알아보며 살것이다.
그리고, 그분에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