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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Nov 15. 2023

영재원에 가고 싶다는 딸애의 말에 화가 났다 - 2

엄마표 교육에 올인한 어느 엄마의 최후

<전편에 이어>


오감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의 E.Q, I.Q가 골고루 높아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결심한 즈음에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큰애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둘째도 온종일 집에 있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음악을 틀어주었다. 클래식부터 시작해서, 가요, 국악, 재즈, 제3세계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하루종일 끊이지 않게 했다. 아이들이 각자 활동에 집중하다 지루해하는 틈이 오면 넓은 전지를 바닥에 깔아주었다. 거기서 물감, 색연필, 파스텔 등 다양한 그림도구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그리게 했고, 도우놀이, 뜨개질, 맥포머스, 레고, 체스, 장기 등등 손을 많이 움직이거나 집중력이 필요한 놀잇감들을 계속 대주었다.  


특히 영어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나는 대학입시 때 수능 영어를 만점 받아서 영어 특기자로 가점을 얻었지만 그야말로 성적일 뿐, 외국인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교육의 실패작이었다. 영어 때문에 취업도, 직장생활에서도 고생이 많았던 터라, 아이들 인생에서만큼은 영어가 발목을 잡지 않기를 바랐다. 영어를 공부로 배우지 않고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습득되도록 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틈나는 대로 영어 동화 CD나 영어 노래를 틀어놓았고, 만화나 영화도 자막 없이 원어로 보게 했다. 저녁에는 영어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읽은 책으로 미술놀이나 연극 등 독후활동을 해서 머릿속에 다시 한번 남도록 하고아이들이 빠져 읽을 만한 영어책을 고르기 위해 영어 교육책을 읽어보고 맘카페를 드나들거나 교육전문가의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내가 준비하고 공들인 만큼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줬다. 애들이 싫어하는 기색이면 주춤했을 텐데 즐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니 동력을 얻어 더욱 열심히 엄마표 영어와 수학, 미술, 음악, 체육 그 모든 것을 일궈나갔다. 그러나 숨 가쁠 정도로 타이트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깊은 공허함이 마음을 눌렀다. 가슴속 깊은 곳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찬 바람이 불었다. 당시 남편은 지방근무를 했던 때로, 주말부부로 지내다 보니 아이 둘 케어가 주 5일 온전히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저녁 시간대 정도만 신경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엄마역할에 선생님 역할까지 더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다고, 이런 생활이 일 년이 넘어가자 조금씩 지쳐 갔다.




집에 남편이 먹지 않는 양주가 한병 있었다. 이름하여 시바스리갈. 애들이 잠들고 나면, 나는 시바스리갈을 한잔 마시고 장난감으로 빼곡하게 어지럽혀진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외롭고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을 음미하면서 시바스 리갈을 세게 발음하기도 했다. 거참, 인생 씨바스 리갈이네.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게. 조금만 무리해도 몸살이 나고 열이 올랐다. 며칠을 끙끙 앓다가 간신히 좋아지면 다시 얼마 뒤에 앓게 되는 날이 반복되었다.


암의 전조증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몸이 안 좋아지니 마음이 더욱 바닥으로 내려갔다. 심상치 않은 병이 왔다는 예감이 들었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나 외면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나는 이미 우울의 심연에 빠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정상이었다면 당장 병원에 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울과 병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꽉 짜인 엄마표 환경을 계속 이어가는 거였다. 낮에는 힘을 쥐어짜내어 아픈 몸을 더 혹사시켰고, 저녁에는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 한잔을 마셔야 잠을 청했으니, 나마저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을 일 년을 더 보낸 셈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병원을 찾았고, 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을 알아보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 엄마가 어느 날 찾아와 말했다. “이제 아이들, 손에서 놓아야 돼.” 예전처럼 아이들을 돌 볼 수 없을 거라고. 이제는 네 건강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제 5살, 9살 된 아이들인데 벌써 손을 떼야하다니. 내가 그렇게 애들한테 집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가족들이 보기에는 아니었던 것이다. 암치료는 장기전이고 내가 나를 돌보려면 아이들한테서 한 발짝 물러나야 한다는 걸, 가족들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애들 똑똑하니까 잘 클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지만 어떤 반론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애들 교육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엄마가 있어야 애들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엄마표 교육은 2년 만에 어느 날 갑자기 강제종료되었다.




치료와 수술로 아이들과 몇 달씩 떨어지기를 반복하니 얼추 반년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기본치료가 마무리되어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애들 습관이 많이 변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티브이와 게임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고 영어원서 따위는 한 번도 읽지 않아 2년의 시간이 무색해진 상황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가 너무 아까왔다. 목이 터져라 읽어주었던 2년의 시간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아직 회복하지 않은 몸을 추슬러 아이를 옆에 앉히고 영어책을 읽어주었다. 그러나 그날 바로 깨닫게 되었다. 예전처럼 할 수 없다는 걸. 내 체력과 열정이 완전히 꺾였다는 것을.


이제 내가 학습적으로 애들한테 신경 쓰는 거라고는 학교와 영어학원 숙제를 체크해 주는 정도이다. 수학 문제집을 하루 2장만 풀자고 했지만 이마저 잘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세 시간씩 앉아 학습지를 풀고는 했지만 지금은 문제집 반페이지 푸는 것도 싫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마냥 노는 맛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책 읽기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읽는 양에 비해 아웃풋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학교 글쓰기 과제한 걸 보면 초2 일기장 수준이다.  오히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아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는 요즘이다. 남편이 혹시 애가 머리가 심각하게 안 좋은 게 아니냐고 조용히 물어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속에서 불이 올라올 때가 있지만, 아직은 이렇게 지내도 되는 때이다 생각하고 별 얘기를 하지 않는다.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한다. 뭔가에 홀려서 산 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사랑과 칭찬의 언어가 인색한 집에서 자랐다. 잘하는 게 많지는 않지만, 그렇게 단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엄마의 교육방식은 단점을 골라 지적해서 내가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내가 한 일에 혼나고, 남이 한 일도 내 잘못이 있을지 몰라 혼나고, 앞으로 잘못할 까봐 미리 혼나고, 늘 혼나며 자랐다.


그러다 결혼해 큰 애를 낳고 애가 좀 영특하자 주변 엄마들, 선생님들한테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애가 받는 칭찬인데, 마치 내가 잘해서 받는 칭찬인 양 들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들으며 살게 된것이다.  그 칭찬이 끊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영재원을 가고 종국에는 서울대를 가서, 평범한 나의 삶과는 다른,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삶이 되기를, 그래서 그 옆에 서있는 나도 함께 박수받기를 꿈꿨다. 하지만 인생의 변곡점을 겪으면서 그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생각한다. 그것은 어딘가 잘못된 꿈이었다고. 꿈은 다른 사람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꾸어야 한다.  아이는 아이의 꿈을 꾸고 실패하고 배우며 홀로 나아가봐야 한다. 나는 나대로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종일 바쁘게 지내는 것은 그때와 같지만 이제는 저녁에 헛헛한 마음을 달랠 무엇을 찾지 않는다.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써볼지, 생각했던 글감을 어떻게 발전시켜 볼지 궁리하느라 머릿속이 바쁘다. 대단할 것 없는 글이지만 막혔던 부분을 넘기고 술술 풀어갈 때의 충만감은 애가 잘한다고 칭찬 듣던 기쁨보다 더 깊게 꽉 찬다. 나를 버릴 정도로 몰입했던 2년은 우리가 딱 붙어 사랑한 시간이었던 걸로, 허무하게 사라진 게 아니라 아이와 나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으로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끔은 욱할 것이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뭉그적 거릴 때, 몇 번이나 한 얘기를 또 해야 할 때, 헙 소리가 나는 점수를 받아올 때, 나도 모르게 떠올릴 것이다. 네가 얼마나 영특했는데! 그럴 때는 호흡을 한 번 고른다. 그리고, 읽던 책을 꺼내든다. 요즘은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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