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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Jul 12. 2024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에 대한 고찰 <New Happy>

'내가 암환우 카페에 가입하게 될 줄이야.'

2021년 8월, 침통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24만 명의 회원을 가진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암환우 카페에 가입하기 위한 정보를 기입하던 중이었다. 닉네임 칸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지만, 암환자의 세계에 들어가는 첫걸음인 거 같아 아무렇게나 짓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이 병을 이겨내는데 가지고 갈 신념 같은 것이 투영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잠잠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생각해 낸 닉이 '새롭게 살다'였다. '이겨내자', '희망' 등 지금 고난을 벗어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부터 나는 과거와 단절하고, 아예 새로운 사람으로 새롭게 살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만든 나의 신념이자, 새로운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암환자가 된 나의 지금이 삶의 바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 직전의 시간이 내 삶에서 바닥이라면 바닥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기력하고, 수시로 우울해졌으며 항상 지쳐 있었다. 그즈음 체력도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책장 정리를 한다고 아이들 책을 좀 나르면 바로 다음날 열이 오르고 삼사일을 열병 앓듯이 끙끙 앓고는 했다. 다른 때 보다 조금만 더 걸어도 또 며칠을 앓았다. 매일같이 혈변을 보고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중증의 빈혈이 오기도 했다. 심상치 않은 병이 왔다고 직감했고, 그 병을 이겨내야 할 시간이 두려웠으며, 그냥 잠들듯이 조용히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고 암인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살고자 하는 소망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죽음을 꿈꾸었지만 그것은 거짓꿈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깊은 우울증으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 것 같았다. 진정 죽음의 기운이 어른거리자 거기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내 마음의 소리에 스스로 놀랐었다. '너 사실은 살고 싶었구나.'


새롭게 살자, 그저 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직장암 4기B 환자로서, 말기가 코앞인 상태였다. 수술과 항암 모두 체력으로 버텨야 하는 것이라서, 걸어 다닐 힘만 생기면 죽기 살기로 산에 가서 걸었다. 야채가 주가 되는 식단으로 바꾸고,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던 것들을 멀리했다. 마음에 부담을 주는 만남들도 더 이상 갖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매일 설교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종교, 글쓰기, 운동, 이 중에 한 가지만 해도 삶에 큰 변화가 오는데 나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삶은 암에 걸리기 전과 후로, 선을 긋듯이 분명하게 나뉘게 되었다.






긍정심리학 전문가 스테퍼니 해리슨의  <New Happy>에서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주입시킨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나서야 얻는 행복은 '낡은 행복'이라고 정의하고, 우리는 행복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투병생활을 통해 '행복'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장착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전에도 나는 그렇게 튀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인들은 내가 병에 걸린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에 직면하게 되니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를 또렷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병에 걸린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하루하루 건강해지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다. 아프기 전의 나는 아이들 교육, 동네 엄마들과의 사교, 쇼핑, 돈에 집중해 있었다면, 요즘의 나는 숲 속에서의 걷기와 운동, 독서와 글쓰기, 식물돌보기 등으로 채우고 있다. 그 시간에는 내 안에 흐르는 생각과 마음들이 있고 몰입을 통해 나는 매일 깊어지고 회복된다. 조금씩 나를 빛이 가득한 어디론가로 데려간다.


하지만 감사와 평안의 일상에서도 이것이 전부일까 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더 멀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고, 나에 대한 몰입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행복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일상에 자리 잡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바쁘게 흐르고, 어쩌면 지금 이 정도만으로도 암환자인 나로서는 최선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더 무엇을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한 욕심일지 모르는 바로 그것이 진정한 행복, new happy를 얻는 삶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나를 내어놓는 것이다.  나의 특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사는 삶이다.


책에서 저자는 “내 재능을 발휘해 당신을 도울 때 내가 행복해지고, 당신의 재능을 발휘해 나를 도울 때 당신이 행복해진다”라고 했다. 항암 후유증으로 한창 힘들었을 때 나는 거의 온종일 화장실에서 보내야 했는데, 그때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이 건강을 회복하여 '쓰임' 받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를 세상에 내어주기', 그 쓰임 받는 삶과 바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저마다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 방법과 예들을 제시해 주는데, 그 리스트들을 읽으면서 여러 아이디어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중에 하나는 이것이다.  책에서 '나는 겪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고통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처음 암진단을 받고, 치료받을 병원을 선택하고 수술과 방사선, 항암을 위해 문턱이 닿도록 병원을 드나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과정을 환자와 가족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벅찬 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나는 비교적 젊어서 병원을 알아보는 일, 내 몸을 건사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최근 폐암 진단을 받은 팔순의 아버지 같은 경우는 노쇠하신 데다가 병이 너무 진행되어 호흡마저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치료에 관해 아버지 당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의료파업 속에 온 가족이 이리저리 뛴 끝에 겨우 병원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나 때도 그랬지만 아버지의 경우를 보면서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본인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의 환자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의문이 들었다.


 특히 병원을 선택할 때와 한창 치료받느라 심신이 약해졌을 때, 손발이 되어 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 병원과 병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그룹이나 단체가 대신 움직여준다면 나름의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것을 구체화해서 실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무상 봉사의 개념으로 간다면 진정한 선의 실행이 될 것이다.


꼭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이웃에게 건네는 친절한 인사, 따뜻한 배려, 작은 손길도 선의 실행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선의 영역이라는 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선의 실행이 규모의 크고 작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더 들어가서는 이렇게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 느꼈던 것들을 기반으로, 즉 책에서 말하는 '나만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이전까지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회사생활하기도 벅찼고, 결혼 후에는 아이들 건사하는 것 그 이상의 다른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평생 나의 안정과 행복이 전부였고, 그것을 이루어나가고 지키는 것만으로도 온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사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선이란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정도가 최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행복했는가 자문해 보면 바로 고개를 젓게 된다.


여전히 불안했고, 외로운 데 안 그런 척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밑 빠진 독에 물 붓 듯이 모든 것을 다 하는데도 무언가가 자꾸 내 삶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모든 과정을 겪고, 한창나이에 죽음에 직면하고,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회복하게 된 나의 삶. 쉰을 얼마 앞둔 이제야 내가 해보지 않았던 길에 해답이 있음을 깨닫는다.





투병하면서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은 바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책에서는 이 평범한 일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하루 일과의 상당수는 세상에 자기 자신을 내어주고 그 대가로 남들도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에코시스템에 동참하는 과정인 셈이다" 투병하면서 바라던 나만의 평범한 하루,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 무사히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차 한잔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집안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는 일상은 오직 나를 위해, 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인 여러 사람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서로를 내어줘서 가능한 것이었다.


책 속에 소개된 해바라기 교훈이 인상적이다. 해바라기가 혼자 자랄 때는 가장 양분이 풍부한 구획을 찾아 뿌리를 최대한 깊이 내리지만 근처에 다른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으면 그 어떤 해바라기도 그렇게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아 덕분에 모든 해바라기가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해바라기는 자신이 생태계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 땅의 자원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공유하고 있는 내 구획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다 함께 잘 될 수 있다, 고 책은 거듭 강조한다.


행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정작 행복과는 한참 먼 지점에서 우울한 얼굴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행복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다면 <뉴해피>가 상세하게 그 길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시점에 다음 가야 할 길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안개 낀 듯 모호한 마음으로 한참을 갔을 것 같다.


화장실 바닥에서 그저 평범한 일상을 울면서 바랬던 내가 더 좋은 세상과 위대한 목적을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이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며,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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