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힘들어. 아잇, 안된다니까 그러네.”
뒷짐을 진 할아버지가 자세를 바꿔 팔짱을 낀다. 그것으로 부족할 거 같은지 고개를 들어 먼산도 바라본다. 하지만 상대방의 각오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할아버지의 시선을 끈질기게 쫓는다. 힘껏 뻗고 있는 뒷다리에 흔들림이 없다. 나는 이 흥미로운 대치를 십분 넘게 관람 중이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 산책하던 중이었다. 한 할아버지 옆으로 몇몇 사람들이 둘러 서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았더니, 할아버지와 몰티즈가 대치 중이었던 것이다. 강아지는 말이 없으나, 할아버지의 혼잣말만으로도 무슨 상황인지 금방 파악이 됐다. 걷기 싫어진 강아지가 주인인 할아버지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중이고, 할아버지는 완강하게 거절 중인 것.
재미있는 건, 몰티즈의 자세였다. 그 짧은 앞다리를 할아버지 무릎에 지탱한 채 꼿꼿하게 서있는데, 제법 긴 시간 동안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주변을 한 번쯤 둘러볼 법도 한데,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시선 한번 떼지 않는다. 안아달라고 낑낑거릴 법도 한데, 작은 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옛 영화 '은행나무침대'의 침대의 황 장군 못지않다(요즘 친구들은 모르려나).
할아버지에게는 강아지의 이런 태도가 일상인 듯, 안돼 안돼하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요지부동 몰티즈에 결국 두 손 든 할아버지, 한숨을 쉬며 강아지를 안아주었다. 대치 시간 동안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던 몰티즈는 할아버지 품속에 안기고 나서야 만족한 듯 분홍색 작은 혀를 내밀었다.
멈췄던 나의 산책도 계속되었다. 생각할수록 감탄이 나왔다. 먹을 걸 달라는 동물의 본능적인 요구와 차원이 달라서였다. 네 발 달린 짐승이 본인의 안락을 위해, 남의 몸을 영리하게 쓸 줄 알다니. 굽히지 않는 고집이라는 작전을 세울 줄 알다니. 그리고, 끝내 자기의 요구가 관철되리라는 걸 알다니.
강아지를 길러본 적이 있다. 한 달 여 간 자원봉사를 다녀오니, 집에 없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데려왔다는 녀석은 콜리 종이어서 새끼임에도 몸집이 제법 컸다. 순하고 착한 녀석이라 금방 정이 붙었지만 마음만큼 시간을 함께 해주기 힘들었다. 당시 나는 첫 직장 고군분투기가 시작되었고, 둘째 동생은 사업한다며 새벽에야 겨우 들어오고, 막내는 군대에 가 있었다. 아빠도 시간이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아빠는 결국 너른 마당이 있는 지인의 집으로 녀석을 보내고 말았다. 그렇게 몇 년 간 길러보기는 했지만 깊은 교감도 못 나누고, 반려견을 기르는 것은 사람 하나를 키워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과 슬픔만 남은 사건이 됐다.
그랬던 내가, 그날 산책 이후로 반려견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SNS로 영상을 몇 번 봤더니, 전 세계 멍멍이들의 영상이 보였다. 이 세상에 얼마나 똑똑한 견공들이 많던지. 한 영상 속 개의 활약은 이렇다.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대일곱살 정도 보이는 아이 둘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만 공이 마당 한편에 있는 연못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이 하나는 어른을 부르러 집으로 들어가고, 남은 아이 하나는 연못 가까이에 붙어 공을 꺼내보려고 하는데 금방이라도 물에 빠질 듯 위험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마당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개가 뛰어와서 위태해 보이는 아이를 끌어내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고, 마당 구석에 놓여있던 잠자리 채를 물고 와 연못에 떠다니는 공을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결국 건져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게 똑똑할 수가 있지.
혈액암을 앓았던 작가 허지웅은 새끼 고양이 영상들을 보며 힘든 차료 중에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고 했다. 3년 전 그 인터뷰를 들었을 때는 그다지 동감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 영상이 뭐 그리 힐링이 될까. 그런데 요즘의 내가 그렇다. 보송보송한 털로 뒤덮인 채, 작고 짧은 다리로 걷는 새끼 강아지 영상을 보는 동안은 잠시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반려견이 주는 마음의 안식이다. 어떤 이해 계산도 없는, 그 순수하고 충직한 사랑을 받은 느낌은 어떤 걸까. 얼마 전, 한 방송에 나와 많은 애견인들의 마음을 울렸던 모델 배정남 씨와 반려견 벨 이야기가 그렇다. 벨은 어느 날 갑자기 디스크가 터지는 바람에 사지가 마비되어 버렸고, 배정남 씨는 벨의 재활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모습이 그러졌다. 벨을 위해 일상이 정지된 힘든 상황임에도, 배정남 씨는 벨 덕분에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안정되고 풍요로워졌는지, 벨이 자신에게 준 것들을 내내 열거하던 인터뷰가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이웃집 할머니는 늙은 시츄 한 마리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 많이 아끼시나 보다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반려견 시츄가 자신의 유방암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자꾸 가슴팍 부근에서 냄새를 맡으며 짙길래, 느낌이 이상해 검사를 받으니 유방암이었다고 하셨다. “이 녀석 아니었으면 한참 뒤에나 암이 생긴 걸 알 뻔했지. 내 생명의 은인이야”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개가 암냄새를 맡는다던데 정말 그렇구나 정도의 감흥이었다. 내가 암환자가 되어서겠지. 종종 그 할머니와 노견 시츄가 생각난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가 생명의 은인이기까지 하다니, 할머니는 축복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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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꿈꾼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꿈이자, 계획이다. 5년 완치 판정을 받는 날, 반려견을 들일 것이다. 곱슬곱슬 갈색 털을 가진 까만 눈의 푸들이 될 거 같다. 아니, 쫙쫙 뻗은 털이 보드라울 거 같은 포메라니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절미라는 애칭을 가진 믿음직한 골든리트버드도 매력적이다.
어쩌면, 종이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건, 내가 필요한 건, 녀석이 주는 위안이다. 괜찮은 척 보여야 할 필요도 없고, 물음표가 따르는 충고나 조언을 들을 필요도 없는 관계.
가만히 안고만 있어도 더없이 충분한, 말없는 위로가 가능한 관계.
5년 완치 판정을 받은 날, 녀석과 함께 또 한 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 작년 크리스마스는 병원에서 보내야 했는데, 올해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이들과 피자를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여러분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