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여기에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일요일 오후 1시, 우리는 일산에 있는 막국수집에 가는 길이다. "날도 더운데 점심 차릴 것 없이 막국수나 먹고 오자"는 남편의 제안이 있었다. 남편은 운전하면서 뒷자리에 앉은 일곱 살 난 아들과 시답지 않은 말장난을 하고, 열한 살 딸애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선미의 '열이 올라요'를 조그맣게 따라 부른다. 이 노래를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태권도장에서 체조할 때 틀어준단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정지우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문득,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을 꼭 끌어안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두 팔로 꼭 안고 영원히 놓지 않고 싶다. 불안도 걱정도 없는 이 시간. 흘려보내고 싶지 않지만, 물론 그럴 수 없다.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럴 때 기도뿐이다. '하나님, 행복한 시간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일상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대장암에서 폐전이로 인해 항암을 열두 차례 받았던 지난 반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느리게 가는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지겹디 지겨웠던 시간이 반년 밖에 안 되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건 항암이 끝난 후 벌써 40여 일이 지났다는 것이다. 주말이다 싶으면 월요일이고, 한주가 시작하네 싶으면 금요일이니, 똑같은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지,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실감하는 요즘이다.
대장암으로 작년에 받았던 여덟 번의 항암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힘들었던 이번 항암. 2회 차에 머리가 몽땅 빠지고, 3회 차에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4회 차부터 비명을 지르게 되고, 7회 차에는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8회 차부터는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12회 끝까지 마쳤던 항암이 드디어 끝나고 난 후, 첫날의 기분이 아직 생생하다.
마치 기나긴 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감정이었다. 전날까지도 먹고 자던 똑같은 집이건만, 공기마저 달라진 듯했다. 하루 세끼 분주하게 차려내던 주방도, 아이들과 뒹굴며 함께 잠드는 안방도, 책과 장난감으로 어수선한 거실도, 뭔가 새로운 필터가 덧입혀져 가슴에 다가왔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 감정.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교도소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출소한 할아버지의 그것처럼 나를 둘러싼 현실이 낯설어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동시에 일렁거리는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 지기도 했다. 그토록 바라던 일상으로 드디어 돌아왔구나 싶어서였다. 항암 기간 중, 주사약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나면 일주일은 괜찮은 컨디션으로 지낼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다음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한편에 자리한 일상은 횟집 앞 수족관에 있는 생선과 비슷했다. 지금은 살아있지만 조만간 주방 도마 위에 올라야 하는 수족관 속 물고기 신세 말이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어느 날 방을 치우는데 침대 위 큰애의 베개가 눈에 들어왔다. 베갯보가 벗겨져 있었다. 베갯보를 바꾼다며 벗기고서는 다시 끼워주지 못한 건데 그게 아주 한참 전이었다. 치료받느라 병원과 친정을 오가는 터에 베갯보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던 탓이지만 마음이 아려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고 있는 아이가 짠해 가슴이 미여졌다. 어디 베갯보뿐이겠는가. 컨디션이 괜찮을 때 아무리 부지런히 챙긴다 했어도, 엄마손이 못 간 데가 여러 곳일 터였다.
친정 식구들은 ‘지금은 너만 생각할 때니 집중해서 빨리 나으라‘고 했고, 정말이지 내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가족들이 잘해주리라 믿으며 아이들의 안녕은 좀 접어두었다. 사실 아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 애써 생각지 않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베갯보도 없이 침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베개를 보니 우리 아이 신세 같았고, 그동안의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이의 베개를 안고 한참을 울었던 그때, 그렇게 쓰라린 감정이 무겁게 내려올 때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웠다.
이제 그렇게 절절한 마음으로 울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 응급실에 누워서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기어코 이겨내서 아이들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비장하게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좋다. 절절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 그저 소소하고 잔잔한 다반사로 채워진 일상, 그 일상으로 드디어 돌아와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허탈감과 불만 대신 오늘의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묵묵히 나아갈 수 있는 자체에 만족한다. 이따금씩 어쩔 수 없는 불안과 우울감,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지만 집중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감정에 깊이 들어가 봤자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감정의 무게를 잘 조절하는 것이 나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어 더욱 털어내려고 한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죽음의 불안은 여전히 삶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살기로 했다. 더 이상 우울과 암 때문에 삶이 망가지지 않게, 아예 새롭게 살기로 했다.
지난 2년 간 다시 반짝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말간 얼굴로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섞이며 다시 한번 빛나보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반짝였던 적이 없었다. 주어진 삶이니 사는 것이고, 성실히 사는 정도로 자족했다. 이제 마흔 일곱에 내 인생 처음으로 반짝여 보려 한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나와 마주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