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걸었다. 병원에 갈 때는 없던 흰색 서류 봉투가 내 품 안에 들려 있었다. 직장암이 명시된 조직검사결과지이다. 내던지고 싶은데, 갈기갈기 찢고 싶은데, 마치 자석처럼 내 가슴에 붙어버린 듯, 난 봉투를 껴안고 정처 없이 걸었다. 누가 보면 소중한 자료라도 안고 가는 모양새였다.
마치 초대방을 받은 것 같았다.
“어서 와. 암의 세계로”라고 적힌 초대장 말이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공터의 막다른 길이었다. 주저앉듯 벤치에 털썩 앉았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조용한 울음이 아니었다. 저절로 목놓아 울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눈물이 날 때도 되도록 아무도 없는데서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대낮에 길바닥에서 윽윽 소리를 내며 목놓아 울게 되었다.
머릿 속은 온통 아이들 생각뿐이었다. 부모보다 앞서 가는 것만한 불효도 없겠지만, 애들을 두고 가는 것은 죄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이 겪을 몸과 마음의 고생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애들의 성장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엄마라는 역할이 나한테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 지경이 되니 나는 완전히 모성애로 똘똘 뭉친 사람임을 발견했다.
한참을 울다가 문득 앞을 보니 공사 중인 인공폭포의 검은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절벽이 마치 죽음의 모양 같았다. 검고, 차갑고, 위협적으로 높은 그 형태는 죽음의 모습을 하고 곧 내 위로 덮칠 것 같았다. 살면서 누구나 죽음에 대해 몇 번쯤은 생각할 테지만, 그것이 정말 내 일이 되었을 때 그 공포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저 막연한 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동안 죽고 싶었던 숱한 날들이 무색하게, 나는 살고 싶은 갈망으로 몸을 떨었다.
살면서 가장 강렬했던 경험을 묻는다면, 나는 공터에서 홀로 몸을 떨며 울었던 그 순간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죽었기 때문이다.
성정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엄마 밑에서 눈치 보며 커왔던 나는,
쉽게 기분이 상하고 말이 없는 남편 옆에서 또 눈치 보며 살았던 나는,
낯선 지역에서 아이 둘을 홀로 키우며 외로움과 우울함을 친구로 하며 살았던 나는,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는 마음으로 살고, 매일밤 다시는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잠들었던 나는,
그날 거기서 울면서 죽었다.
황량한 공터에서 거대하고 깊은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하다 죽었다.
그리고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아이들을 끝까지 키워내겠다는 일념과 살고 싶다는 갈망으로 가득 찬, 다른 이의 생각과 기분을 살피느라 나를 놓치지 않고, 나만의 고유한 생각과 온전한 행복을 찾아내고 그에 속해 살겠다고 결심한,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살아난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 주인공 쿠퍼가 시공간이 뒤섞인 책장 뒤에서 과거의 자신에게 “가지 마”라고 절실하게 외친다. 그 5차원 속에 내가 있었다면 과거의 나에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넌 전혀 죽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 병원에 가! “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