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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Oct 30. 2018

버려진 것들의 가치

연이 마지막으로 엄마를 본 날, 나도 연의 엄마를 보았다.


내 병아리를 훔쳐간 여자애,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내 인형의 머리를 눈앞에서 뽑아버린 애,

짓궂은 남자애들과 자주 싸우던 애, 단 한 번도 진 적 없어서 남자애들도 무서워했던 여자애.

친구가 아무도 없었던 애, 엄마도 아빠도 없었던 애,

머리가 긴 것이 귀찮다며 부엌 가위로 자기 머리카락을 마구 자르던 애. 연.     


연과 나는 교회에서 만났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기억이 없을 때부터, 그러니까 내가 두 살 정도 됐을 때부터 엄마를 따라 다니던 교회에 연이 있었다.  


연은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아닌가, 아무도 연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도 곁을 내어주지 않은 건가.     

매주 일요일, 깨끗한 옷을 입고 교회에 온 어린이들 틈에 연은 늘 같은 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혹은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를 하고 맨 앞에 앉았다.

연은 목사님이 말씀하실 때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코 고는 소리를 내거나

혀로 입천장을 똑, 똑하고 쳤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그런 연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언젠가 한 번, 주의를 흩트리는 연을 혼낸 적이 있는데, 연이 예배당이 떠나가라 울어버렸다.

당황한 선생님이 연을 어르고 달래봤으나 연은 목사님 말씀이 끝날 때까지 발버둥을 치며 울음을 그치는 것도, 예배당을 떠나는 것도 거부했다.

나는 아직도 어린이 예배를 떠올리면 맨 앞에 앉아 혀로 똑, 똑 소리를 내던 연의 뒷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어린 시절 나는 연과 놀지 않았다.

연은 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계단 위에서 밀치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 아이였으므로

그 애와 친해질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가 열 살 무렵, 연과 친해졌다. 언제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애들이 손톱으로 서로의 얼굴을 할퀴며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금방 잊고 친해지는 것처럼,

지금 이 나이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친해졌겠거니 할 뿐이다.     


열 살의 연은 여전히 괄괄한 여자애였지만 이제는 부엌 가위로 머리를 자르지도 않았고,

친구들을 아프게 하지도 않았고, 교회 앞자리에서 혀로 똑, 똑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교회 어른들은 연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이제 시집갈 때가 다 되었다며 연의 철듦을 매주 진심으로 기뻐했다.     

연과 나는 방과 후에 교문 앞에서 만나 우리 집으로 갔다.

엄마가 출근 전 만들어 둔 요리로 끼니를 함께 때우고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놀이터에 나가 철봉이나 그네 밑에 떨어진 동전을 찾기 위해 땅을 헤집으며 놀았다.

그 날도 연과 쪼그려 앉아 모래를 팠다. 축축하고 까만 모래를 아무리 판들 동전이 나올 기미가 안 보여서 우리는 모래 공을 만들기로 했다.

축축한 모래를 동그랗게 빚는 것을 연은 아주 잘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놀이터에서 놀면서 연마한 실력이랬다.

내 모래공은 자꾸만 부서져서 짜증이 나려고 할 때쯤, 갑자기 연이 자신의 부모에 대해 말을 꺼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없어.

알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연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져서 손에 힘을 주어 모래 공을 다듬는 데 집중했다. 아, 연은 지금 비밀 얘기를 하려고 하는구나.

왠지 잔뜩 긴장이 되었다.     


할머니가 우리 엄마는 다리를 저는 병신이라고 그랬어.

어릴 때는 절뚝거리는 여자들을 보면 혹시 엄마일까 해서 앞질러 뛰어가서 얼굴을 확인했어.

근데 지금까지 다리를 저는 여자는 딱 두 번 정도밖에 못 봤다?

너는 엄마 얼굴 몰라?

이제는 알아. 한 번 봤어. 예전에 우리 교회에 왔었거든.     


우리가 더 어릴 적에 연의 엄마가 교회에 왔었다.

연의 엄마는 원래 우리 교회 집사님이었는데, 가난한 생활이 힘들어 집과 남편과 시어머니와 어린 연을 버리고 도망을 쳤다고 했다. 연이 마지막으로 엄마를 본 날, 나도 연의 엄마를 보았다.

연처럼 흰 피부, 연처럼 찢어진 눈매, 연처럼 아무렇게나 자른 머리.

연의 모든 것은 오로지 연의 엄마에게서만 나온 것 같았다.

가난을 버리고 도망친 연의 엄마는 여전히 가난해 보였다.     


연은 모래 묻은 손을 툭툭 털더니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자기가 빚어놓은 동그란 모래공들을 무심하게 툭툭 밟아 부수는 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집에 가기 전, 연은 내일은 돈을 벌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인 줄도 모르면서 그래 그러자고 대답했다.

     

다음 날, 교문 앞에서 연을 만났다. 연과 나는 실내화 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한 공사장으로 향했다.

공사장 앞에서 연의 삼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은 손가락 두 개가 없어서 여름에도 장갑을 낀 댔다. 연은 오늘 고물을 주워 팔 거라고 했다.

우리는 공사장에서 찾은 못이나, 쓰레기 더미에 있는 박스, 유리병 따위를 주워 삼촌이 끄는 수레에 담았다.

처음엔 쓰레기와 고물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뭔가 득템을 할 때마다 삼촌한테 수레에 담아도 되는지 물어봐야 했다.

삼촌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없었기 때문에, 중지 손가락을 펴서 담아도 되는 물건과 담아봤자 별 소득 없는 것들을 열심히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삼촌이 가리키는 것들보다 힘없이 팔랑거리는 장갑의 첫 번째, 두 번째 손가락 부분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 날 해가 질 때까지 못이며, 박스며, 유리병들을 주웠다.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삼촌 곁에서 걷고 싶었는데, 삼촌은 우리더러 멀찌감치 떨어져 걸으라고 했다. 어린애들을 데리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욕할 거랬다.

나는 우리가 줍는 것은 쓰레기가 아니고 돈인데 줍지 않는 어른들이 더 이상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연과 삼촌은 그렇네 맞네, 이것들이 쓰레기가 아니라 다 돈이여 돈! 하며 크게 웃었다.     


수레에 잔뜩 쌓인 것들을 고물상에 팔 때는 굉장히 설렜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팔았는데 큰돈을 벌고야 말겠구나 싶었다.

삼촌은 엄청나게 높아진 수레의 짐들과 만몇 백 원을 맞바꾸었다. 나는 그 금액이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삼촌이 왠지 웃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따라 웃었다.

오늘은 돈을 많이 벌었다며 기뻐하는 삼촌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연은 그 돈으로 라면이랑 요구르트 등을 살 거라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땅에 떨어진 못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못을 보이는 대로 주워서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다음 날 연에게 잊지 않고 주고 싶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나에게 엄마가 뭐 하느라 해놓은 밥을 먹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 집에서 놀고 만화영화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고 거짓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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