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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Oct 16. 2018

My father is so hot

초콜릿에서 누룽지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별생각 없는 헤헤 실실 대학생으로 살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4학년이 코 앞이었다. 

남 얘기인 줄 알았던 이력서, 자소서, 면접이 이제 내 얘기라니.

하지만 취업현장에 준비되지 않은 빈 몸을 던지는 것은 무서웠고, 그렇다고 졸업한 백수가 되는 것은 더 무서워서 도피하듯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왕이면 한국인이 없는 곳에서 1년을 지내고 싶어 영국의 아주 아주 아주 작은, 

텔레토비 동산만 한 마을을 골랐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곳엔 진짜로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Hello'랑 'How are you'같은 초급영어를 제외하고는 한마디도 못 할 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혼자서 그 빽빽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타국의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모르겠다. 


영어회화가 불가능했던 나는 당연히 제일 낮은 레벨의 클래스에 배정되었다. 

등교 첫날, 교실문을 열었더니 반갑게 맞아주던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기억난다. 

내 반의 수업은 유치원과 실버스쿨 그 어디쯤의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거의 모든 문법을 노래로 배웠고 콩이나 쌀을 페트병에 넣어 만든 악기도 매주 가져가야 했다.

으레의 한국인들처럼 영어로 말만 못 할 뿐, 읽고 이해할 줄은 알았던 나는 

우리 반의 수업이 자주 시시하고 지루했지만 다정한 클래스메이트들이 좋아서 부러 반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 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꽤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는 어눌한 영어 대신 유창한 공감능력으로 특별한 말없이도 서로의 빈틈을 보듬어 주는 사이었다.  


본인의 가족을 소개하는 수업이 있었던 날. 

즉석에서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내 영어실력이 한참 부족했으므로 

나의 엄마와 나의 아빠를 어떻게 소개할지 조금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아빠가 보고 싶어 졌다.

수업 시작 10분 전, 한국에 있는 나의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반가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딸~"

새삼 내가 살고 있는 요즘이 얼마나 대단한 시대인지 실감이 났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있어도 생생한 내 부모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세상이라니.


나는 아빠가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먹었는지를 물었다. 

아빠의 늘 똑같은 평일 중 그나마 새롭게 바뀌는 것은 식사메뉴뿐이니까. 

아빠는 그날 점심으로 냉콩국수를 먹었다고 했다.


아빠는 나에게 별 일은 없는지, 내가 있는 곳의 날씨는 어떤지를 물었다. 

나는 영국은 생각보다 비도 많이 안 내리고 듣던 것처럼 우울한 날씨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내 말이 끝나자 "다행이네 딸. 한국은 너무 더워"하고 말했다.

아빠의 덥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하고 터졌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몹시 당황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아빠의 전화를 끊었다. 

아빠의 한숨소리와 덥다는 담담한 어조가 귓속에서, 아니 이마 속에서, 아니 얼굴 전체에서 메아리쳤다.


세상에, 우리 아빠는 지금 덥다.


아주 어릴 때 한 번 본 적 있는 아빠의 일 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새우깡을 먹는 나에게 다가오던 아빠. 겨드랑이부터 등까지 축축하게 젖은 두꺼운 회색 작업복, 

안전모를 벗자마자 쏟아지듯 튀어 오르던 땀방울들. 높은 온도에 쪄진 듯 빨간 얼굴과 너무 뜨거워 녹기라도 한 듯 잔뜩 처진 눈가.


아빠는 한 겨울에도 등줄기에 땀이 흐를 만큼 아주 두꺼운 작업복과 작업화를 착용해야 한다. 

용접 불 꽃이 튈 수도 있고, 살을 녹일 정도로 위험하고 강한 화학 약품이 몸에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인 아빠는 기계 속에서 갇혀 일한다. 웬만한 구멍가게 크기의 기계에서 나오는 열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뜨겁다. 아빠는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한 때는 소금주머니를 차고 일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땀을 한바탕 쏟고 있을 때 소금을 한 두 꼬집 먹으면 짜기는커녕 달게 느껴진다고 했다.

오늘도 아빠는 냉 콩국수 한 사발을 먹는 20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더웠을 거였다.

증기를 내뿜는 기계 속에서 안전모와 작업복과 작업화를 착용한 아빠가 고온에 녹아내리는 모습이 눈에 선해 가슴이 미어졌다. 


살인적인 더위에 아빠를 녹여 만든 돈으로 이 곳에서 날씨 좋은 매일을 만끽하고 있는 나 자신이 참을 수 없게 싫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가진 돈을 다 털어서 우리 아빠를 이 곳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사실 그럴 돈이 없었고 앞으로 한참 동안 없을 거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현재와 미래가 아득해서 엉엉 울었다.

어쩌면 우리 아빠는 내 돈으로 호강 한 번 못해보고 늙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는 땅을 치고 울고 싶어 졌다. 

그래도 이제는 그만 울어야 했다. 아빠가 어떻게 번 돈으로 듣는 수업인데 늦을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한 다음 끅끅 올라오는 눈물을 온 힘을 다해 단전으로 눌러 내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정하게 웃으며 "how are you?" 하고 물었다. 

나는 평소보다 더욱 밝게 웃으며 "I am fine thank you, and you?"하고 대답했다. 

곧이어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그 날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명씩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자식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좋고 웃긴 사람인지를 느릿느릿 설명했다.

곧이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My father.."하고 말 문을 텄고, 말문과 함께 눈물도 같이 터졌다.

선생님과 클래스메이트들이 나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누가 등을 세차게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꺽꺽대며 울었다. 

아까 단전에 모아둔 눈물이 너무 많았나 보다 이건 필히 눈물 둑이 터진 거다.


한참을 울면서 기어이 눈물을 다 쏟아내고나니 약간 진정이 되었다.

선생님이 무슨 일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를 설명하려고 "my father.." 하고 말을 꺼냈는데, 

그러자마자 또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어째서 아빠라는 단어는 영어로 말해도 이렇게 슬픈 걸까.


나는 고르지 않은 숨들 사이로 간신히 한 문장을 뱉었다. 

"My father is.. so.. hot"

내 설명을 들은 선생님이 조금  많이 놀라며 "What?"하고 되물었다. 

'우리 아빠는 섹시해요'라는 말을 울면서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무슨 말을 잘 못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My father is very very hot"이라고 거듭 말했다.

가만히 듣던 백발의 할머니가 "Summer? Korea?"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여름이 무지 덥다고. 그래서 우리 아빠도 덥다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선생님이 얼른 놀란 눈치를 거두었다.

향수병을 걱정한 선생님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아빠를 이 곳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한참을 울다가 민망해져서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는데 

짝꿍이었던 Sue 할머니가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다. 우느라 열이 잔뜩 오른 등을 할머니의 서늘한 손이 식혀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다는 뜻으로 웃어 보였다. 

Sue 할머니가 맨날 입고 다니는 하늘하늘한 여름 가디건 주머니에서 m&m초콜릿을 꺼내 주었다.

나는 작게 "Thank you"하고 입속에 초콜릿을 넣었다.

초콜릿에서 누룽지 맛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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