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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Dec 01. 2018

그는 900원짜리 황도 캔을 결국 따지 못했다.

아빠의 울음소리에 다른 이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묻혔다.

술에 취한 아빠는 열흘 밤이 넘도록 우리 집의 가장 춥고 작은 옷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울었다. 

아침이 되면 아빠는 옷 방에서 나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직 잠에 매어있는 부스스한 딸과 아내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었고, 평소처럼 거실의 한 구석에서 딸들의 교복을 다렸다. 

아빠는 엄마와 나와 동생 앞에서 괜찮은 척을 했고, 우리는 아빠의 괜찮은 척을 믿는 척했다. 

그러나 실은, 열흘이 넘는 밤 동안 아빠가 숨어있는 옷방에서 아빠의 울음소리가 비어져 나올까 봐 나는 두려웠다. 그때는 아빠를 유약하게 하는 슬픔을 위로할 방법을 몰랐다.      


큰아버지는 아빠가 아빠의 아빠보다 사랑한 가족이었으며 존경하는 롤모델이었고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안식처였다.

배우처럼 준수한 외모에 고상한 성품까지 갖춘 큰아버지를 아빠는 늘 닮고 싶어 했다. 

아빠는 살면서 큰아버지가 화내거나 울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말로 그는 조카들의 버릇없는 장난에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그저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잔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부자지간처럼 꼭 닮은 아빠와 큰아버지는 둘도 없는 술친구이기도 했는데, 그날도 그들은 매주 가던 단골 술집에서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늘 먹던 안주를 주문했다. 

술과 안주가 나왔을 때 큰 아버지는 평소처럼 허허 웃으며 췌장암에 걸렸다고 말했다. 

불과 얼마 전, 위암 완치 판정 소식을 허허 웃으며 전하던 사람이었다.

큰아버지는 웃고 있었는데, 맞은편의 아빠는 웃질 못했다. 

둘은 그래도 평소처럼 500cc 맥주잔을 부딪쳐 건배를 했다.     


큰아버지의 상태는 췌장암 소식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나빠졌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그에게서 빠르게 빠져나가는 생명의 질량을 실감했다. 

이제는 내가 알던 큰 아버지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췌장암 소식을 들은 지 겨우 한 달 만이었다. 


큰 아버지는 아빠를 볼 때마다 고목의 잔가지처럼 마르고 검은손으로 아빠의 손을 붙잡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꼭 살아서 아들 딸 시집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게 욕심이라면 딱 2년만 더 살아서 자식들 대학 졸업하는 것까지만 두 눈으로 보고 미련 없이 눈을 감겠다고 했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큰 아버지의 건조한 손 위에 자신의 두툼하고 따뜻한 손을 포개고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말했다.     


이렇다 할 차도 없이 힘들기만 한 병원 치료를 견디다 못 한 큰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 요양을 하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다 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담당의사는 그의 몸에 붙은 온갖 장치들을 정리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간 큰 아버지의 상태가 거짓말처럼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를 아는 모두가 감히 기적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삶에 대한 열망이 병마의 기세를 꺾은 것이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죽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넘기던 큰아버지는 당신 집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큰어머니가 고아주신 사골 국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말아먹을 정도가 되었고 그는 제2의 인생을 얻은 기분이라며 병원에 있을 때보다 밝아진 얼굴로 허허 웃었다.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것이 그의 눈에서만큼은 또렷한 실체로서 일렁이고 있었다. 

얼마 뒤, 큰아버지는 미처 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한 사골국을 온몸에 묻히고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큰아버지의 소화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진단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사골국을 뚝딱 비웠던 그는 이제는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큰아버지 병상에 절대 금식 팻말이 걸렸다. 

그의 눈에서 희망이 사라졌고 그 깊고 허한 빈자리는 절망과 열망이 복잡하게 섞인 어떤 것이 차지했다. 

병원에 다시 실려 온 큰아버지는 깨어 있는 시간보다 죽음과 닮은 잠에 빠져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깊은 잠에서 깨어 눈을 뜰 때마다 살겠노라고, 꼭 살아나겠노라고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아빠가 그를 간호하던 날 밤, 잠에서 깬 큰아버지는 병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빠는 한때는 자신보다 무거웠던, 이제는 50킬로도 나가지 않는 작은 형을 휠체어에 태우고 1층의 병원 로비로 갔다.

병원 로비를 아주 천천한 걸음으로 몇 바퀴쯤 돌았을 때, 큰아버지는 병원 매점에 데려가달라고 말했다. 

아빠가 곤란한 듯 웃자, 그는 구경만 하겠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빠는 속상하리만치 가벼운 휠체어를 힘주어 천천히 밀어 매점으로 갔다.

작은 매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가려고 할 때 큰 아버지가 말했다.     


태진아. 나 저거 하나만 사줘라.     


큰 아버지가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황도였다.

아빠는 울컥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나가자고 말했다.

큰아버지는 다급하게 말했다.     


제발. 나 저거 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국물만 마실게, 저거 한 모금이면 정말 살 수 있을 것 같다니까?     


아빠는 떨리는 목소리를 들킬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큰 아버지의 휠체어를 뒤로 돌렸다. 

큰 아버지는 휠체어에 실려 가며 그 힘없는 몸으로 화내고 울고 절망하며 황도 한 캔만 제발 사달라고 외쳤다. 

아빠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형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그토록 지독한 현실이 억울하고 참담해서 당장에 주저앉아 작은 형을 끌어안고 함께 엉엉 울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 900원짜리 황도 한 캔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그토록 강직했던 형이 그깟 황도 한 캔에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태진아 제발 황도 한 캔만 좀 사줘라     


텅 빈 새벽의 병원 로비에서 메아리치는 큰아버지의 갈라진 목소리가 아빠의 귀와 가슴을 아프게 헤집었다.     


같은 날 새벽,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큰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크고 서럽게 우는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형, 미안해.. 미안해..     


아빠의 울음소리에 다른 이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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