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연애는 다 틀린 시험지였어서 모든 순간들을 오답노트 쓰듯 복기했다.
비몽사몽 중에 그 애에게 문자가 와있는지 확인하려고 핸드폰으로 손을 뻗다가 깨달았다.
아. 맞다 헤어졌지 참.
그 날 아침, 눈 뜨기 다섯 시간 전에 그 애랑 헤어졌다.
분명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간 거였는데, 사실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 애가 용기 없고 비겁한 나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봐준다면 나는 사실은 남아있던 용기들을 빠짐없이 끌어 모아 다시 잘해보자고 악수를 건넬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러지 않았고 나는 끝내 비겁했기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가 며칠이나 사귀었나. 디데이 어플을 확인해보니 겨우 75일이었다.
성냥처럼 사랑했구나.
막 불이 붙어 타오르는 성냥을 누가 유리컵으로 덮어버린 느낌이었다.
불은 급하고 허무하게 꺼졌고 연기와 향은 진하게 남았다.
그 애랑 헤어진 게 한참 전 일 같은데 나는 아직도 지난 일이 생생하게 속상하다.
걔와의 연애는 다 틀린 시험지였으므로 나는 모든 순간들을 오답노트 쓰듯 복기하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아, 더 잘해줄걸, 그러지 말걸, 내가 부족했구나.
헤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담배를 같이 태웠다.
보통 때는 담배를 같이 피운 뒤에 손을 탁탁 털고 걔 손을 잡았는데,
이제는 시린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야 했다.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걔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어 졌다.
하든, 하지 않든 분명히 후회할 질문이었다. 나는 나를 정말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그 애는 대답 대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래서 더 속상해졌다. 너는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았구나.
손에 들린 담배는 꽁초가 된 지 오래였는데 버리기가 아쉬워 괜히 팔을 몇 번 더 휘적대었다.
내가 마침내 담배를 버렸을 때 걔가 이만 가자고 했다.
날이 추웠다. 걔는 히트택을 잘 입고 다니라는 말을 해주었다.
왠지 대답하고 싶지 않아 앞서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걔가 잘 가 하며 손을 들었다.
막 내 어깨를 툭툭 칠 참이었다.
나는 그건 좀 속상해서 걔 손이 내 어깨에 닿기 전에 발걸음을 떼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잘 가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었다.
자주 걸었던 길인데도 아직도 집이 아니야? 아직도? 하는 생각을 계속하며 겨우 집에 도착했다.
실제로 집이 평소보다 조금 멀어졌거나, 아니면 내 뒤에 붙은 미련이 무거웠거나.
울리지 않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그 애가 힘들거나 우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밥은 잘 챙겨 먹을까. 멋진 음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을 새로 쓰기 시작했는데 잘 쓸까. 그 애가 키우는 강아지가 보고 싶어 지면 어쩌지..
그러다가 문득 또 허무해졌다.
아마 걔는 75일 동안 내 염려를 이 잠깐만큼도 안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귀는 동안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서 헤어짐을 자주 생각했었는데
헤어지자마자 걔가 어떤 식으로 나를 외롭게 했는지, 쓸쓸하게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걔가 나에게 만들어준 따뜻한 음식과, 그 애가 키우는 강아지들의 부드러운 혓바닥 감촉과,
그 애가 지방에서 사다 준 빵과, 갑작스레 선물해 준 꽃다발 같은 것들만 기억이 났다.
생각보다 내 뇌는 자정작용이 좋구나.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짧았지만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사는 게 걔에게나 나에게나 훨씬 이로울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