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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Dec 27. 2018

사랑하는 내 작은 강아지

기쁨이의 꼬리가 두어 번 움직이더니 푹 고꾸라졌다.

통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모르는 여자가 전화기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여자의 젖은 눈과 마주쳤을 때 순간 가슴팍을 돌로 맞은 기분이었다.

시체라도 본 사람처럼 재빨리 고개를 돌려 잰걸음으로 앞 서 걸었다.

울지 않고 많이 많이 걷고 싶었는데 결국 얼마 못 가서 멈추어 엉엉 울고 말았다.

같이 산책을 하던 친구가 당황하며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방금 전 애써 외면한 여자는 아직도 24시간 동물병원에서 나보다 더 많이 울고 있을 거였다.     

그 여자한테서 2년 전의 나를, 엄마를, 동생을, 아빠를 겹쳐보았다.

그 겨울 내 사랑하는 강아지 기쁨이가 죽던 날, 우리 가족의 모습이 방금 전 그 통유리 너머에 분명히 있었다.


    

시골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개라면 무조건 질색하던 엄마 말을 무시하고 이모 공장 근처에 버려져있던 새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왔다. 갈색 점박이 수컷과 검은 점박이 암컷이었다.

똥물에 젖은 채 겁에 질려 바들거리던 조그만 것들을 바라보던 엄마는 앞으로 기쁜 소망만 안고 살라며 둘을 기쁨이와 소망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주 어릴 적 큰 개에게 얼굴을 물린 기억이 있는 엄마는 그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를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시골 동네 정육점에서 잡뼈를 얻어다 애들 먹이는 게 엄마의 새로운 낙이 되었고,

원체 개를 좋아했던 아빠는 아이들이 안아달라 보채며 양복 바짓가랑이에 묻히는 흙조차도 예쁘다 했다.

똥냄새나던 일 점 몇 킬로그램짜리 꼬물이들은 우리 가족에게 한껏 사랑받으며 건강하고 통통한 믹스견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기쁨이와 소망이를 처음 데려온 날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던 개집은 어느덧 4킬로가 훌쩍 넘어버린 애들에게 너무 비좁아졌다.

손재주 좋은 아빠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기쁨, 소망 집 공모전을 열었다.

나와 엄마와 동생은 뜨끈한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A4용지에 각자가 생각하는 꿈의 개집을 그렸다.

아빠의 심사숙고 끝에 엄마가 그린 개집이 최종 선택 되었다.

다음 날 우리가족은 마당에 모여 페인트칠을 하고, 뼈다귀 모양 목재 장식고리를 사포에 갈고, 못질을 해서 뚝딱 기쁨이와 소망이 집을 완성했다.

노란 집채에 주황 지붕을 얹은 나무집이었다.

엄마는 강아지가 드나드는 문 옆에 기쁨♡소망이라고 적었다.

다행히 기쁨이와 소망이도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잘 밤이 되면 둘이서 집으로 들어가 몸을 포개고 아침까지 나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둘은 무엇을 하든 함께였다.

산책할 때, 밥 먹을 때는 물론이고, 똥을 눌 때도 그 넓은 마당 중에 꼭 같은 곳에만 눴다.

아빠가 늦는 밤이면 데크 뒷문에서 몸을 맞대고 아빠를 기다리거나, 하나를 혼내면 다른 하나가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들은 꼭 기특한 쌍둥이 막내를 키우는 듯 한 기분을 들게 했다.     


눈이 많이 내렸던 날, 동생과 함께 TV를 보고 있는데  소망이가 앞발로 샷시 문을 긁어대었다.

배가 고픈가 하여 저키간식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항상 소망이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던 기쁨이가 보이지 않았다. 기쁨아 하고 이름을 크게 불렀더니 대문 밖에서 비명 섞인 깨갱 소리가 났다.

아찔한 기분으로 그쪽 방향을 쳐다보니 새하얀 눈밭에 커다란 진돗개 세 마리가 있었고, 작은 기쁨이가 그들 사이에 누워있었다.

냅다 소리를 지르며 신발도 신지 못하고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다.

마당의 자갈들과 대문 밖의 잡초 가지들이 발에 밟혔으나 아픈 줄도 몰랐다.

내가 뛰어오는 모습을 본 진돗개 세 마리가 아랫동네로 줄행랑을 쳤다.

눈밭에 힘없이 누워있는 기쁨이의 눈이 돌아가고 있었고, 기쁨이 몸에서 뿜어지는 피들이 새하얀 눈밭을 적시고 있었다.

서둘러 기쁨이를 안아 들었다. 갈비뼈가 모두 으스러진 걸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이 멀리에서 피투성이 기쁨이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으스러진 기쁨이를 담요에 싸매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던 택시 안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기도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나님.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겁고 척척한 기쁨이의 몸이 미약하게 아래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이 소식을 들은 엄마가 병원에 먼저 와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쁨이의 갈비뼈가 다 부서졌고, 그 통에 장기들도 모조리 찢어져 가망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기쁨이를 바라보았다.

늘 반짝이던 커다란 눈은 초점을 잃어갔고 사랑스러운 까맣고 작은 입 밖으로 마른 혓바닥이 약간 나와 있었다.

기쁨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기쁨이와 눈을 맞췄다. 죽지 마. 아가 죽지 마. 하고 기쁨이를 쓰다듬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던 기쁨이가 꼬리를 살랑였다. 마음이 무너졌다.  


기쁨이의 가느다란 몸에 수액 바늘을 꽂자 기쁨이가 순간 빳빳하게 굳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급하게 CPR을 했다. 이미 부서져버린 갈비뼈가 걸그적거리고 있었다.

얼굴을 감싸쥐고 울던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그만하세요, 선생님 그만하세요.

기쁨아. 아가 엄마야. 너희도 빨리 기쁨이 불러봐. 아직은 들을 수 있을 거야.     

엄마가 우리를 다그쳤다.

기쁨이에게 사랑한다고, 보고 싶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울음소리가 먼저 밀려나와 하고 싶은 말들을 덮었다.

엄마가 기쁨이 귀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기쁨아.

기쁨이의 꼬리가 두어 번 움직이더니 푹 고꾸라졌다.  

작고 어린 기쁨이가 죽기에 수술대는 너무 차갑고 딱딱해 보였다.


죽은 기쁨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퇴근한 아빠가 딱딱하게 굳은 기쁨이를 안아 들고는 한참을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빠의 굵은 눈물방울이 기쁨이 얼굴에 뚝 뚝 떨어졌다.     

며칠 전 우리 가족이 만들어 준 강아지 집에 기쁨이를 눕혔다.

소망이가 따라 들어가 기쁨이 위에 턱을 괴고 누웠다. 기쁨이의 얼굴을 핥아주는 소망이를 쓰다듬으며 오늘 밤이 기쁨이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고 지켜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고 말해 주었다.     


아빠와 대문 밖을 비추는 CCTV를 돌려보았다.

화면 속에서 건강한 기쁨이와 소망이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진돗개들을 향해 짖고 있었다.

한참을 짖어도 진돗개들이 떠나지 않자 소망이가 닫힌 대문 아래의 틈으로 몸을 숙여 나갔다.

진돗개 한 마리가 순식간에 소망이를 물어 대문 맞은편의 밭에 패대기를 쳤다.

그러자 기쁨이가 쏜살같이 대문 틈으로 빠져나가 소망이에게 달려갔고, 진돗개들은 튀어오는 기쁨이를 소망이 대신 물어뜯었다.  

그 틈에 소망이가 대문 안으로 들어와 베란다 샷시를 앞발로 긁어대었다. 기쁨이를 살려달라고.     


다음날. 기쁨이가 좋아하던 장난감과 간식들을 기쁨이와 함께 마당 소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첫눈을 보고 팔짝거리기쁨이의 발자국들이 소나무 주변에 여전히 있었다.


                                                                                                                                                                                             

사랑하는 내 영원한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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