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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Feb 17. 2019

엄마와 딸

아무래도 나는 우리 엄마 인생이 너무 속상해서 화를 내는 것 같다.

이번엔 엄마랑 싸우지 말아야지. 

예쁘게 말해야지. 

화가 나도 따지지 말자.     


고향집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수십 번 눈을 감고 다짐한다.     


엄마와 둘이 남게 되는 시간이 무섭다. 

내가 엄마에게 남기고 말 확실하고 날카로운 상처들이 빤해서 가능하면 그 시간을 피하고 싶다.

다른 애들은 엄마랑 둘이서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별의별 얘기들을 스스럼없이 한다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 아니, 나는 왜 그러지를 못할까.      


익산으로 내려오는 내내 되뇌었던 다짐들이 무색하게 이번 설에도 결국 엄마와 싸우고 말았다.

내가 깜빡하고 전기장판 코드를 빼놓지 않았는데 엄마가 벌컥 화를 내며 돈 무서운 줄 모르는 애라고 나무랐다. 나는 겨우 그런 거 가지고 오랜만에 본 딸한테 화를 내냐며 지지 않고 따졌다.     


전기코드로 불거진 아주 사소한 일로 필요 이상의 날 선 말들을 주고받으며 다툰 우리는 열몇 시간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같은 공간에 있었다.  

결국 더 이상 엄마랑 같은 집에 있기 괴로워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짐을 챙겨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이제 추석이 가까워서야 고향집에 갈 것이다. 


가볍게 덜컥거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엄마를 미워하다가 안쓰러워하다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왜 이렇게 미운 딸인지, 밖에 나가선 서글서글하고 성격 좋은 나인데, 

왜 엄마 앞에만 가면 이렇게 독한 년이 되는 건지.      


불쌍한 우리 엄마.

아무래도 나는 우리 엄마 인생이 너무 속상해서 화를 내는 것 같다.

가난한 세월이 몸에 배어서 20년도 더 된 옷을 버리지 못하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에도 보일러 켜는 것을 망설이는, 

화장실 불 안 껐다고 버럭 화내는 엄마가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그런 엄마가 더 이상 적은 돈에 목메지 않게 할 능력이 없는 내가 한심스러워서 엄마한테 화를 낸다.     


평생을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엄마는 아직도 돈 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두렵댔다.

 돈 주는 사람이 제일 좋고, 돈 달라고 하는 사람이 제일 미워.

엄마의 입버릇대로라면 나는 엄마한테 제일 미운 사람이고, 제일 좋은 사람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           


펑펑 낭비하는 나를 키워내려고 엄마가 포기했던, 가질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확실히 나만 없었다면 우리 엄마는 훨씬 더 고급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고급의 인생을 포기하고 엄마 살과 뼈를 먹여 키워낸 것이 고작 나라니.

예쁘고 달콤한 말은 고사하고, 고마울 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독한 나라니.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엄마의 인생을 내가 주최하였다는 사실이 복잡하게 와 닿는다.     


우리 엄마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댔다.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대학도 가고 싶었댔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에 있는 이것저것들의 냄새를 맡아보고 직접 만져보고 싶댔다.     


나는 엄마가 아낀 돈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엄마 돈으로 해외에서 영어를 배우며 

엄마 적금으로 대학을 나와 엄마의 것보다 훨씬 더 빛나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쌓았다.

그러면서 나는 열심히 엄마의 세상과 멀어졌다.     

엄마는 무엇을 바라고 나를 가르쳤을까. 

엄마가 백 원 이백 원을 아껴가며 저축한 적금들을 오직 나를 위해서 깨뜨릴 때 기대했던 미래는 뭐였을까. 

분명 이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 전 내 다리가 부러졌을 때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뭐가 미안하냐고 물으니 자기가 요즘 새벽기도를 빠졌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픈 거랬다.

황당하여서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따졌더니 엄마는 자기가 고생하지 않고 편하면 꼭 나나, 동생이 아프게 된다며 속상해했다.

엄마는 그다음 날부터 새벽 4시 반에 추위를 뚫고 시골길을 걸어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나갔다.


아침에 떠지지 않는 눈을 찬물로 헹구며, 얼굴을 할퀴는 찬바람을 뚫으며 당신은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편하면 딸들이 아프다. 내가 덜 편해야지 애들이 무탈하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휴지를 찾으려고 가방을 열었더니 배랑 사과랑 찐 고구마가 있었다. 

내가 넣은 적은 없는데. 

엄마가 딸들 온다고 평소에 비싸서 먹지도 않는 과일들을 몇 박스나 사놓았다고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던 게 기억이 났다.


엄마는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서는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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