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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Feb 26. 2019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차고 넘치는 이 가난을 싼값에라도 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천만 원 올리는 것쯤이야 하는 가벼운 집주인의 말투가 귀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낡고 이렇게 병든 집에서 살 자격을 얻으려면 천만 원이 더 필요했다. 

우리에겐 없는 돈이었다. 집주인에게 따지고 싶었다. 

아저씨는 부자잖아요, 건물도 많다면서요. 천만 원 없어도 살 수 있잖아요. 우리는 그 돈이 없어서 죽겠는데요.

박과 나는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천만 원이 없는 건 우리의 사정이었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집주인은 갑이고 우리 같은 애들은 힘도 돈도 없다. 이제 이 집을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안녕 망원동 옥탑방. 괘씸하고 가난한 나의 월세방.     


나와 박이 가진 재산을 더해보았다. 

우리가 가진 돈을 담보로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으면 1억 4천만 원짜리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집 앞의 부동산에 찾아갔다. 어디에 살고 있냐는 부동산 아저씨의 물음에 우리가 사는 곳을 말하니 아저씨가 고개를 저으며 하루빨리 그 집에서 나오라고 말하였다.

무슨 그런 집에 그런 돈을 주느냐는 그의 말에 우리는 분노와 신뢰를 가득 담아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가 가진 돈을 말하니 순식간에 곤란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가 모니터 뒤로 표정을 숨기며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박과 나는 아저씨를 애원하는 눈빛으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보자.. 보자.. 있기는 있는데...

다음 말을 기다리는 우리를 안경 너머로 들여다보던 아저씨가 말했다.

젊은 아가씨들이 살기에는 좀..

우리는 흐려지는 아저씨의 말끝을 붙잡고 다급히 외치듯 말했다.

괜찮아요 아저씨. 싼 집이요. 싼데,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겨울에 수도 안 얼고 누수 없는 집이요.

아저씨가 확신 없는 표정으로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 아반떼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차로 5분 정도를 달려 오래되고 허름한 빌라 앞에 도착했다.

건물을 올려다본 박이 말했다.

또 빨간 벽돌이네.     


35년 된 건물이라는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빈 집에 들어가니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35년의 세월이 가히 부담스러웠다. 

바닥은 기울었고 빈 집에선 독한 하수구 냄새가 났다. 

여기저기 헤진 벽지들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집을 둘러보았다.

인터넷에서 미리 보아 둔 새집 체크리스트대로 곰팡이가 없는지 장판이 들뜨진 않았는지, 수압은 괜찮은지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약간 끈적이는 손잡이를 돌려 옥색으로 칠해진 방문을 열었다. 

곰팡이는 굳이 꼼꼼히 확인해보지 않아도 천장이며 벽지에 가득했고, 장판은 밟을 때마다 푸석거렸다. 

그래도 수압은 좋네. 수도꼭지에서 약간씩 쿨럭이며 쏟아지는 물을 보고 말했다. 

아저씨가 괜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상황에서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가씨들이 가진 돈에 맞추려면...

우리는 맞아요 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아저씨도 알고 나도 알 듯 우리는 이런 집에 살 돈 밖에 없으니, 그게 맞으니 민망해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대답이었다.     


아저씨가 다음 집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아까와는 다르게 아반떼의 뒷좌석이 묘하게 불편하였다. 

다음 집은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아저씨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자 박이 소곤거리며 말했다.     

조금 무섭다.     


낮에도 캄캄한 이 골목길을 야근을 끝내고 혼자서 걸어올 생각을 하니 조금 아득해졌다.

한참을 바닥만 보며 오르막을 걷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멋지게 올라선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우리는 저런 집에 살아 볼 수나 있을까? 

언젠간 살아 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늘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아저씨 뒤를 쫓았다. 

아저씨의 잰걸음을 바쁘게 따라잡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런 집에 살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언덕길을 오르던 아저씨가 헉헉거리며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하였다.

아저씨가 같은 말을 세 번쯤 했을 때 우리는 좀 전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집 앞에 도착했다. 

낡고 허름한 계단을 밟아 3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아저씨는 집에 대한 설명을 바쁘게 덧붙였다. 

집주인이 좋은 분이고 오르막길이긴 하지만 역과도 많-이 멀지 않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넓은 집이랬다.     


문을 열었을 때 상상 이상으로 넓은 집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족히 28평은 넘어 보였다. 방도 네 개나 있었다. 

이 집에서 가위눌리지 않고 잘 자신이 없다는 것만 빼면 괜찮은 집이었다. 

팔꿈치에 힘을 실어 밀면 부서질 것 같은 고동색 샷시와, 누수 때문인지 뭔지 끈적거리는 바닥, 

종로의 노포에서나 봤던 옥색의 환풍기, 욕실의 조그마한 타일 사이사이에 꼼꼼하게 껴있는 물 때.     


그래서 여긴 얼마예요?     

내 물음에 아저씨가 1억 7천이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바닥까지 긁어 구한 돈은 1억 4천이라서 어차피 감히 살아보려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집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집님, 안녕히 계세요. 여유도 없는 쇤네가 감히 발을 들였네요. 하는 의미로.     


박과 몇 주 동안 다양한 동네의 부동산을 돌았다. 

돌고 돌아 우리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전셋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보증금 천만 원을 올리고 살 수 있겠느냐고.

집주인은 집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돼도 문의가 없어서 걱정됐는데 잘 됐다며 반색하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다시 살게 되었다니,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걸.     


지긋지긋한 누수와 동파가 있는 옥탑방이지만 그래도 백만 원 가까이하는 이사비용은 아끼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집주인과 만나 1년 연장 재계약을 하였다. 

당장 천만 원이 없었기 때문에 대출받는 두 달을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두 달 동안 월세 10만 원씩을 더 내면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10만 원은 별 거 아니니 우리를 믿고 계약서에 적지 않겠다고 말하는 집주인에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빠져나갈 20만 원 때문에 속이 쓰렸다. 

계약서를 접으며 집주인이 박과 나에게 고향이 서울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전라도에서 상경하였다고 대답했다. 그가 웃으며 젊은이들이 서울살이에 고생이 많다고 격려하였다.      

카페를 나와서 과연 내년에는 이사를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올해 열심히 일하고 덜 쓰면 내년에는 옥탑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 내년에는 또 집값이 오르려나. 우리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똑같은 내년을 맞이하려나.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담배를 한 대 태우는 동안 가난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차고 넘치게 품은 이 가난을 싼값에라도 팔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골목길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합정역 뒤편에 있는 메세나 폴리스도 보였다. 

필터만 남은 담배를 세게 털고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나의 가난은>을 크게 부르며 내가 사는 옥탑방을 향해 괜히 더 씩씩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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