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이슬 Mar 06. 2019

안 느끼한 수상소감

사실 2019년에 뭔가 대박적인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2019년에 뭔가 대박적인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발목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 전엔 좋아하던 남자애랑 속상하게 틀어졌고, 

발목이 부러진 후엔 한파에 수도가 또 얼어서 옥탑부터 1층 상가 화장실까지 

절뚝거리며 오줌을 싸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연말 액땜이라면 2019년도엔 분명히 보통 이상의 대박이 터져야만 했다.

그래서 사실 올해부터는 매주 로또나 사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이것이 세상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브런치 북 대상 명단에서 내 프로필을 보게 된 순간.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저를 낳아주신... 어쩌고 저쩌고는 차치하고.

가장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헐’     


덜덜 거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같이 사는 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만약 브런치 북 대상을 받게 된다면 정말 만약에 그런 미친 행운이 생긴다면 

박에게 값비싼 무인양품 잠옷을 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전화를 했다. 

전화 신호음에다가 대고 고백 직전 마냥 중얼중얼 연습을 했다. 

박, 잠옷 사줄게. 잠옷 사러 가자. 자, 네가 꿈꾸던 잠옷을 골라봐.

이윽고 박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왜.....?

대박..........

뭐.....?

박...... 잠옷 사러 가자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내 목소리가 너무 심각하여서 집에 대단한 사달이 났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어쨌든 박은 전화를 끊고 일을 하면서 내가 기특해서 조금 울었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3월 4일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낳아줘서 고맙고 고생했고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브런치 북 대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엄마는 부런치가 뭔디? 하고 되물었다.

아차 싶어서 내가 글을 올리는 페이지이고 에세이 작가가 되었다고 

그러니까 방송작가랑 다르게 책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엄마는 시상에... 하고 잠시 놀라워하더니 엄마가 나를 뱃속에 품었을 때 얼마나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태교를 했으며 그리하여 나를 낳은 후에도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주었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엄마의 말을 끝까지 다 들었다.

엄마 생일 축하해!라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하려고 했을 때 엄마가 물었다.

근디 에세이가 뭐냐?     


도저히 날아갈 것 같은 이 기분으로는 일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6층 흡연 라운지에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담배를 피우다 마주친 국장님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상암동을 가득 채운 미세먼지는 어쩜 이렇게 뿌옇고 예쁜 건지, 

신발 바닥에 붙은 껌은 어쩜 이리 쫀쫀하고 차진 건지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잠시 후에 출판 계약 관련 전화가 왔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가며 무사히 전화를 끝마쳤다.

전화를 끊자마자 시발.. 미친.. 와.. 하고 내 기준 최고의 탄성을 내뱉었다.     


이틀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이제는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겨서 책 이름도 고민할 정도가 되었다.

책 이름은 뭘로 할까,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하여 캐릭터 이름을 넣어야 할까. 

그렇다면 <힘들 땐 짱구처럼 울라 춤을 춰>는 어떨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낄낄 웃기도 한다.     


이틀 동안 브런치 구독자 수가 100명이 넘게 늘었고, 

어쩐지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60명 가까이 늘었다. 

갑작스러운 관심들에 많이 감사하고 기분 좋은 책임감을 느낀다.

눈만 마주치면 나를 치켜세우고 축하해주는 룸메이트 박 때문에 안 그래도 넓은 어깨가 이젠 높아지기까지 할 지경이다.

과분한 행운 덕에 박과 함께 더 힘차게 가난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제 글을 뽑아 주신 김은경 에디터님께 이루 말할 수 없는 딥하고 딥한 감사를 느낍니다.

과분한 심사평을 읽고서 얼마나 많은 감동과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글에 공감해주시고 소중한 댓글을 남겨주신 구독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가난을 팔아 돈을 벌고 싶었던 저의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아 많이 두근거립니다. 

더 열심히 안 느끼한 글들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느끼하지만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