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와와의 이름은 호랑. 성은 박이다.
우리 집 치와와는 5.2킬로다.
프라이드치킨보다 윤기 나는 황금빛 컬러에 통통한 뱃살과 참깨만한 꼬추,
꼬순내가 무한대로 뿜어져 나오는 까맣고 조그마한 네 개의 발바닥을 가진 이 치와와의 이름은 호랑.
성은 박이다.
매일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혼자서는 산책도 못 나가고 제가 싼 똥도 못 치우는 이 치와와가 작년 겨울에 무려 스와로브스키 광고에 ‘우리 집 개스키’로 출연하여 스스로 사료 값을 벌어왔다.
얘 몫의 출연료를 내 통장으로 받았는데 어찌나 기특하던지.
부모들이 왜 돈 벌어오는 자식에게 평소보다 더 거대한 사랑을 느끼는지가 온몸으로 이해가 가더라.
호랑이는 2017년 5월에 데려왔는데 얘를 데리고 오던 날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난다.
전 날 새벽 녹화를 마치고 주말 낮까지 늘어지게 자고 있던 내 옆에 박이 휴대폰을 들고 와 눕더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얘좀 봐봐.
졸려서 떠지지 않는 눈으로 박의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여러 장의 치와와 사진이 있었고 사진 아래에는
‘시험 준비 때문에 키우지 못하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입양 보냅니다. 책임비는 15만 원입니다. 사랑으로 키워주실 분 연락 주세요 ‘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박이 말했다.
곧 한 살 이래. 근데 좀 못생겼지?
사진 속의 치와와는... 뭐랄까 되게 노랬다.
음... 프라이드치킨 같아. BBQ 황금 올리브치킨 색깔이야.
박이 내 말을 듣더니 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그래서 못생겼다고?
음..... 못생겼는데 매력 쩐다.
그럼 한 번 보러 갈래?
그러자.
우리는 택시를 타고 치와와가 있는 집으로 갔다.
황금 올리브치킨 색깔의 치와와를 키울지 말지는 직접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치와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와 박을 기필코 몰아내고야 말겠다는 사명감으로 온몸을 떨며 바득바득 짖었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지 꼬리는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었고,
심지어는 짖는 동시에 두발로 서서 앞발로 물개 박수를 치는 기묘한 행동을 했다.
우리는 조금 당황하여 얘 왜 이러냐는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면서 대답했다.
만져달라는 거예요.
저렇게 악마처럼 짖는데 어떻게 만져요?라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박과 남자와 내가 작은 오피스텔의 바닥에 둘러앉았다.
치와와는 경계를 풀지 않은 상태로 바르르르 떨며 나와 박의 냄새를 맡는 중이었다.
남자가 물었다.
강아지 키워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고향집에 부모님의 보살핌과 나의 돈으로 키우는 개가 세 마리나 있고 강아지를 사람보다 사랑하며 유기견 후원도 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박도 나 못지않은 다소 집착적인 애견인이라고 설명하였다.
남자는 조금 안도하는 표정으로 본인이 치와와를 파양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하였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키우던 세 마리의 강아지 중 두 마리의 강아지를 저번 주에 파양 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이 강아지는 얌전하고 착한 강아지이므로 좋은 주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어쩐지 조금 화가 났지만 티 내지 않고 대답했다.
시험에 꼭 붙으셨으면 좋겠어요.
남자는 치와와가 얼마나 얌전하고 기특한 강아지인지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쟤는 좀 겁이 많기는 하지만 소심해서 그런지 말 짓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벽지나 장판을 헤친 적도 없고, 제 물건을 물어뜯어 망친적도 없어요.
아, 짖음도 없어요.
우리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치와와를 쳐다보았다.
치와와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월워월월!
남자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배변을 100프로 가려요. 얼마 전에 고향집에 일이 있어서 3일 동안 집을 비웠는데 똥과 오줌을 배변판에만 쌌더라고요.
나는 경악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3일은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박은 남자에게 책임비 15만 원을 입금하고 있었고
집 밖으로 나온 우리 품엔 황금빛 치와와와 애견 가방과 장난감들이 들려있었다.
우리 집으로 돌아와 치와와를 거실에 내려주었더니 정신없이 이 곳 저곳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아까와 다르게 꼬랑지가 안으로 잔뜩 말려있었다.
우리는 치와와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까지 섣부르게 부르거나 만지지 않기로 하였다.
박과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왠지 소곤거리며 치와와와 함께할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쟤와 함께 하게 될 십여 년의 세월 중 오늘은 첫날이었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아무래도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이름들이 후보에 올랐다.
황금이, 고양이, (박)아지, (박)사님 그러다가 강하고 담대하고 건강하고 존나 쎄지라는 의미를 담아 호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호랑이는 이름처럼 존나 쎄져서 산책하다가 만난 대형견 머리에 열정의 붕가붕가를 하며 권력을 자랑하는 담대한 강아지가 되었다.
우리 엄마는 강아지 이름을 호랑이로 지었기 때문에 애 성격이 저렇게 더러운 거라며 이름을 화평이나 체리나 성공이 같은 걸로 바꿔야 한다고 아직도 힘주어 말한다.
아무튼 치와와의 얼굴과 불독의 어깨를 가진 호랑이는 전 주인이 설명한 강아지와는 딴판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내 이불에 오줌을 싸고 벽지와 전기장판을 미친 듯이 긁어 헤치는 강아지이지만
그런 것들은 그에게 받는 위로와 무조건적인 사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호랑이를 데리고 광고 촬영장에 가던 날, 무릎 위에서 잠든 호랑이를 보니 새삼 기특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다가 문득 얘를 데려오던 날, 그러니까 황금빛 치와와가 주인에게서 버려졌던 날이 생각났다.
그 날의 치와와는 주인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버려졌다.
지금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강아지들이 인간의 비겁한 핑계들로 버려질까.
2년 전의 치와와를 포함한 수많은 강아지들은 주인이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사업이 망했기 때문에, 잘 짖기 때문에, 잘 물기 때문에 심지어 이제는 다 커서 귀엽지 않기 때문에 버려진다.
수많은 ‘때문에’들로 버려지는 강아지들의 상처는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쉬이 치유되지 않을 텐데.
괜히 짠해서 잠든 호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배를 긁어달라고 돌아 누웠다.
뜨끈한 호랑의 배를 긁어주며 생각했다. 너는 비록 박 씨 성을 가진 강아지이지만 박과 내가 함께 사는 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우리 품에 와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