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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Sep 18. 2018

막내작가 생존기

한 달을 남은 돈 20만 원으로 살아볼 궁리

966,000원. 

코미디 프로그램 막내작가 시절 피, 땀, 눈물을 사무실에 뿌려가며 주말도 없이 일 해 벌어낸 월급이었다.

통장에 966,000원이 찍히자마자 월세 30만 원, 휴대폰 요금 8만 원, 

이런저런 보험 10만 원, 주택청약 5만 원이 빠져나간다. 

40만 원 정도의 잔액을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뒤 20만 원을 비상금 통장에 송금한다. 

비상금을 모아야 방송이 쉬는 기획기간을 살아낼 수 있다. 

석 달마다 돌아오는 기획기간 동안 내 월급은 겨우 30만 원.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통장에 난리 법석으로 출금 내역이 찍히고 나면 

남은 잔액은 20만 원. 비참해서 눈이 질끈 감긴다.

그래도 애써 눈을 뜨고 앞으로의 한 달을 남은 돈 20만 원으로 살아볼 궁리를 한다.


우선 밥값, 나는 거의 매일 출근했으므로 30일 치의 점심 값이 필요했다. 

건강을 포기하고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면 한 달에 필요한 밥값은 약 10만 원. 

에라이. 점심 값을 제하고 나면 겨우 10만 원 남는다. 시발.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과장이 아니고 100원 단위를 아껴가며 살아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혀가 나올 것처럼 더운 날은 물론 칼바람에 볼이 썰릴 것 같은 겨울에도 

나는 40분 거리를 도보로 출퇴근했다. 

버스 카드 찍을 때 나는 ‘삐빅’소리, 

그 돈 먹는 소리가 사람 잡는 찜통더위나 칼바람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나는 없는 중에도 어쨌든 살아내야 했으므로 세트장에 남은 버려질 운명의 소품들과 

남은 도시락들을 매주 챙겼다. 

남들 눈에는 쓰레기 더미인 현장이 나에겐 노다지 밭이었다.


어느 가을 새벽, 소품이었던 2kg짜리 곡식 일곱 봉지를 욕심껏 챙겨 이고 지고 끌어 집으로 가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그래도 엉엉 울면서 끌고 온 곡식들로 잡곡밥을 지어먹을 때는 행복해서 웃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하던 날, 동기들과 함께 시간 대비 버는 돈을 따져보았다. 

우리가 버는 돈은 최저시급의 반도 못 미쳤다. 

그 초라한 금액을 똥 싸는 시간도 아껴가며 최선을 다해 벌고 있다니... 

목사님 딸인 동기가 생활비 대려면 노래방 도우미 알바라도 뛰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는 그냥 웃었다. 

그 날 새벽, 야간 할증 택시비가 없어서 캄캄한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어서 퇴근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노래방이 눈에 띄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고향에 있는 아빠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 

아빠는 늘 ‘방송 잘 봤다’고 말해줬고, 나는 그 날의 방송에서 내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약간 부풀려 이야기했다. 그러면 옆에서 듣던 엄마가 성급하게 전화기를 뺏어 들고는 그래서 우리 훌륭한 딸 언제 내려 올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일이 너무 바빠서 내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은 고향 가는 왕복 기차비 3만 원이 죽었다 깨어나도 없었다. 

엄마는 이번 달에도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물었다. 

나는 집에서도 제육볶음과 육개장과 카레를 잘 해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게 지난주 세트장에 버려지다시피 남아있던 한솥도시락을 얼려놓은 것이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받아 든 아빠가 용돈 보내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내 나이가 스물넷이야. 용돈은 무슨” 하고 쿨한 척 거절했다.     


우리 막내작가들은 거의 모두가 투톤헤어였다. 

뿌리 염색을 할 시간도 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그감이 뛰어난 출연자가 우스갯소리로 “강 작가 뿌염 해야겠어 뿌염!”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살짝 웃었다. 

거울을 보니 새삼 머리 뿌리가 거슬렸다. 손바닥 크기의 검은 뚜껑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다음 주에 약국에서 제일 싸고 검은 양귀비 염색약을 사다가 머리카락 전체를 염색했다. 

당분간 머리칼에 돈 쓸 일은 없을 터였다. 그 주에 다시 만난 출연자는 밝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나는 그 날 집에 가서 일기장에 그 출연자 욕을 두 페이지 넘게 썼다.    

 

제작진이나 스텝 앞에선 한없이 야박한 방송국 돈은 엄한 곳에서 줄줄 샜다.

어느 날의 방송 회차에 말하는 앵무새가 필요했다. ‘안녕하세요’였던가, ‘반갑습니다’였던가 

아무튼 다섯 마디 남짓 할 줄 아는 앵무새를 2시간 정도 섭외했고, 

그 날 그 앵무새는 80만 원을 벌어갔다. 그 사실을 안 뒤로 나와 동기들의 목표는 ‘앵무새만큼 벌자’가 됐다.

앵무새이고 싶었다. 

나는 30일을 밤낮없이 일해도 구십 육만 육천 원을 버는데, 앵무새는 시급이 사십만 원이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나 대신 새를 낳았더라면.... 

... 아.. 그래.. 이건 아니다.. 이건 좀 너무 속상하다..     


여느 때처럼 가난한 하루를 보낸 어느 날 퇴근 후 일기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대학시절 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눈에 띄었다.

나는 지랄하네!라고 읊조리며 죄도 없는 그 책을 당장에 뽑아다가 집 앞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남자였으면 오줌도 갈겼을 텐데. 

쾅!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일기를 쓰려는데 방금 버린 저 책을 중고로 팔았으면 얼마를 받았을까가 

자꾸만 궁금하고 찜찜해져서 날짜만 쓴 일기장을 그냥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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