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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Sep 11. 2018

적당히 속상한 이별

어젯밤에 같이 사는 친구의 작은 개가 아팠다.

어젯밤에 같이 사는 박의 작은 개가 아팠다.


열이 나는지 혀를 잔뜩 내밀고는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박은 수건에 찬물을 적셔 치와와의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6시간 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박이 안쓰러워서 내가 개의 몸을 닦아 줄 테니

너는 안심하고 들어가 자라고 말했다.

박은 괜찮다며 치와와의 겨드랑이와 코와 똥꼬와 발바닥을 오래오래 닦아주었다.

한참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박의 손에서 수건을 뺏고는 들어가서 자라고 말했다.

박은 마지못해 방에 들어가서도 몇 번이나 개가 괜찮은지를 묻다 잠들었다.

작은 개는 곧 괜찮아졌다.     


같은 날 밤에, 그러니까 박은 이미 잠들고,

작은 개가 정상 체온을 되찾은 그 시간에 네가 울고 있었다.

술에 취해 들어와 일찍 자는 줄 알았는데 방음이 형편없는 문 틈 사이로 네 울음소리가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나도 덩달아 속이 상해서 애먼 치와와의 몸을 한참 더 닦아주었다.

치와와는 완전히 괜찮아졌는지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잠든 치와와의 고른 숨소리가 너의 울음으로 인한 속상함을 상쇄한 덕에 나는 적당히 속상했다.

치와와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나도 울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네가 갑작스러운 이별에 완전히 슬퍼하다가 완전히 괜찮아지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셈해보았다.

열이 나는 개를 계속해서 닦았듯 끝모를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내면 괜찮아질까.    

 

너는 네가 그 애에게 얼마나 잘 해줬는지를 생각하며 걔가 너에게 이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네가 그 애에게 살뜰했다는 것은 너도, 나도, 걔도, 이 작은 개도 아는 사실이었다.      


네가 걔에게 수도 없이 싸줬던 따뜻한 도시락들과 피곤한 걔를 위해 포기했던 낮의 데이트들과

네가 참고 넘어갔던, 이해했으면 안 되었을 사건들과 네가 걔와의 여행을 위해 기꺼이 감내했던 가난들과

그리고 결국엔 가지 못했던 그 여행이 머릿속에 스치다가

 

싸지도 못하고 풀지도 못해 여전히 널려있는 너의 여행가방과 걔랑 밤에 먹으려고 네가 소분해놨던 김치통과

여행길에 입으려고 새로 산 너의 하늘색 원피스가 눈에 밟혔다.       


나는 너의 옆에 누워서 너를 키운 엄마와 아빠와 너와 함께 큰 나와,

우리가 함께 길러낸 고향집의 개들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해 주고 싶었는데

소용이 없는 오지랖이 될 것이 빤해 관두었다.


대신 걔 생각이 나는 노래를 자주 듣고, 공감이 되는 이별 글을 부러 찾아 읽고

행복했던 너희들의 한 때를 많이 생각하라고 말했다. 너는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노래를 들어도 더 이상 걔 생각이 나지 않을만큼 덤덤해지고,

좋았던 추억을 생각해도 눈물이 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독감 백신 주사에 약간 앓아야지만 튼튼해지듯 너도 걔 약간만 앓고 많이 튼튼해지기를 바랐다.     


나도 받지는 못하고 주느라 바빴던 마이너스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칭하기는 남루하나 다른 것으로 부르기에는 내 시간이 가엾다.

너의 이번 사랑도 남루했으 어찌 됐든 사랑이니 애를 쓰고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괜찮아진 뒤에는 질 좋은 사랑을 양껏 했으면 좋겠다.

더 귀하고 좋은 모양의 사랑을 배우려고 비싼 값을 치렀다고 생각하자.

그게 어렵다면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탓하거나 미워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네가 하는 모든 후회와 아쉬움과 미움과 욕과 걱정은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온전히 걔의 몫이다.

너를 향한 적의는 하나도 없어야 한다.     


평범한 시간들 사이로 ‘왜?’라는 질문이 침범해 종종 억울해질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이 일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굳이 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

애초에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식의 사랑도 하지 않았겠지.

      

무엇보다 너를 키운 엄마와 아빠와, 너와 함께 큰 나와

우리가 함께 길러낸 고향집의 강아지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를 많이 사랑해가며, 많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이로 키운 우리 가족이

어찌 보면 이 사단의 근원인데 너는 우리를 미워할 수는 없잖니.     


많이는 말고 적당히 속상한 밤들을 보내.

그런 속상한 밤들을 보내다가 어느 날 아침엔 네가 무엇을 하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를,

그 아침이 금방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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