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라는 걸 인생에서 배워 볼 일이 있을까? 연기의 세계가 늘 궁금 하긴 했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몰입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배우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배우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현실을 닮은 가상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연기로써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재밌어 보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의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고, 들여다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어린 시절 나는 부끄럼이 많았고 소심하기도 했고, 약간은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 감정이 살아가는데 크게 좋지 않다고 깨닫기까지에는 여러 가지의 사건들과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내 성격을 외향적으로, 쿨 하게 바꾸고자 해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좀 더 나의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부당함이나, 공정하지 않음에 욱하는 순간도 종종 생겼고, 회사에서도 내 목소리를 내야 할 상황이면, 서스름 없이 내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어린 시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를 성인이 되어서 갖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진짜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도 궁금해지는 순간이 왔다. 언제부터인가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보이지 않게 가둬놓으려 하기도 했고, 어린 시절 품고 있던 낮은 자존심과 소심함이 다시 올라오려 할 때면 그걸 내비치지 않기 위해 꾹꾹 내 안에 눌러 담기도 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난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하는 그런 나의 감정과 생각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생에서 누구나 그렇듯 뜻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고, 과도하고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유엔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지치는 순간이 왔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취미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나는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새로운 드럼이라는 취미를 가지면서 인생에서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많구나를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드럼을 시작으로 나는 또 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면서 나의 Comfort Zone (안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챌린지를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다.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그렇게 나는 액팅스쿨을 등록하게 된 것이다.
액팅스쿨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아마도 내 남편일 것이다.
나 연기를 배워볼까 봐
하고 그 앞에서 말을 꺼냈을 때 그의 답변은 과연 예상했던 대로였다.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그는 말렸던 적이 있는가. 당연히 그는
"좋아, 한 번해봐. 재미있겠네."
라고 말했다. 내가 연기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 더 궁금해줬으면 하는 내 마음 속 바람이 그에게는 전달되지 않았기에 내가 앞서 여러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고민되는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가격. 3개월에 21000바트가 들었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취미에 큰돈을 써본 적이 없었기에 많은 고민이 되었다.
두 번째는 '용기'였다. 어쩌면 이 순간부터가 Comfort Zone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시작이 아니었을까. 회사에서 미팅시간에 가끔은 발언하기도 무서워하는 내가 연기를 남들 앞에서 할 수 있을까, 아예 기본도 모르는 내가 시작해도 될까, 이제 와서 연기라. 그냥 10 대들 이 공부하기 싫어서 막연히 하는 생각처럼 일에 지쳐 나도 헛바람이 든 게 아닐까.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나를 컴포트 존에 두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걱정스러운 두 가지 부분을 남편에게 며칠을 털어놓으니 남편도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하고 싶대서 해라 했더니, 할 수 없는 이유를 줄줄 읊어대니 말이다. "그래, 그럼 좀 더 생각해 봐" 라고 하니, 수강료 할인기간이 곧 마감이라 이번 주까지는 결정해야 된단다. 그도 지칠 만큼 지쳤을 테나, 그는 잘 훈련된 로봇처럼 긍정적인 답변으로 매번 시도해 봐라고 내게 응원을 북돋아 줬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나는 회사에서 몇 가지 질문을 적어 액팅스쿨 홈페이지 채팅 창에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1. 연기에 대한 기본이 없어도 수강가능한가요?
2.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영어 연기가 가능할까요?
3. 출장이 잦은 직군이라 수업을 빠지게 되면 보강이 가능한가요?
이 세 가지 질문을 채팅창에 넣고 전송을 누르고 나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한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액팅스쿨 원장님이었다. 그의 이름은 로빈이고 독일인이었다. 내가 보낸 메시지의 내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는 내 질문에 답변을 주기 이전에 나에 대해 물었다. 방콕에서는 얼마나 지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연기는 왜 하고 싶은지 등등.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주었다.
그는 굉장히 자신감이 넘쳤다. 1. 이건 기본을 위한 연기 수업이니 기본이 없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2. 우리 수업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듣고 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3. 수업보강은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진행해 준다. - 나의 질문은 그걸로 완벽하게 해결됐다.
이제 솔직하게 나의 진짜 우려를 털어놓았다.
"나는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조금 걱정된다. 이런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또 한 번 자신감 있게 말했다. 저번 달에도 그 우려를 하는 학생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우려를 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곤, 그는 정말 네가 감정적으로 안전하게 연기를 배우고, 연기를 할 수 있게 지도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Comfort Zone에서 나오는 것이 물론 어렵지만, 그 과정을 절대 부담스럽지 않게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그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그럼 홈페이지에서 신청하겠다고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혼란하던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 길로 당장 등록을 완료했다.
처음 Comfort Zone에서 나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편의 로봇 같지만 전폭적인(?) 지지, 그리고 선생님의 자신감 있는 모습. 그렇게 나는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새로운 것에 겸허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등록을 했기에 이제 무를 순 없다. 희한하게도 하기로 결정한 순간이 지나니 어느새 잘 해보자 하는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듯하다. 점차 걱정은 기대로 바뀌었다.
그래, 해보는 거야!
나무 1을 하던, 행인 1을 하던, 해보는 거야. 또 모르지, 무대가 나의 체질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