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로빈은 우리에게 언제나 같이 원형으로 서라고 했다. 그러곤 질문을 던졌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극이라고 하면 늘 어딘가엔 절절한 사랑이 있어야 감정이 움직인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는 사랑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가도, 그 사랑 하나로 세상이 무너지는 감정을 경험한다. 나라, 세대, 성별을 초월해 사랑이란 감정은 늘 그렇게 깊다. 로빈이 돌아가며 사랑의 정의를 물었을 때,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 상대에 대한 헌신과 확신. 정답은 없었다. 모두의 정의가 곧 사랑이었다.
나에게 사랑은 마치 봄날 벚꽃이 흐드러진 가로수 길 처럼, 잘 빨고 덮는 포근한 이불처럼, 나른한 오후 햇살 아래 한입 베어무는 부드러운 초콜릿 케이크처럼... 향기롭고, 따뜻하고, 달콤하다. 사랑만큼 우리 삶을 다채롭게 해주는 감정이 있을까. 사랑 덕분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배운다.
내가 정의한 사랑은 조건 없는 애정과 관심이었다. 한 번은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 문득 물었다.
“만약에... 나나 우리 자식이 말도 안 되는 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갇혔어. 그래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먼저 대답했다.
“난 못 그럴 것 같아.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아니 오빠라도... 그건 힘들 것 같아.”
그런데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슬퍼... 너무 슬플 것 같아. 그래도 어쩌겠어. 나밖에 사랑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 죄는 미워도... 너는 사랑해야지.”
학창 시절, 나는 한국의 치열한 입시 문화 속에서 늘 위축되어 있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그게 곧 인생의 실패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사랑도, 괜찮은 삶의 기회도 얻을 수 없다고 믿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이 셋이나 있었고, 투자할 만한 애한테 투자하고 싶다는 말도 종종 하셨다. 그 말이 나를 동기부여하고 싶었던 방식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 시절 나는 사랑받기 위해선 일정한 조건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연애를 해도 단점이 보이면 쉽게 끝났고, 오래 사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서야 ‘사랑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배웠다. 그렇게 오늘의 내게 사랑은 ‘조건 없는 애정’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절 부모님의 조금은 서툰 격려도, 수많은 조건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부딪히던 지난 연애들도 단지 방식이 달랐을 뿐,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수업에서도 우리는 명상을 했다. 로빈은 우리에게 사랑했던 존재들을 차례로 떠올리게 했다. 먼 친척부터 가까운 사람들, 선생님, 반려동물, 친구, 연인, 그리고 마지막은 가족. 가족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한국의 집과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 그리고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난 아빠를 마음속에서 마주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아빠를 생각했다. 명상이 끝난 뒤 조용한 침묵이 흘렀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회상에 잠겼다. 전 세계에서 모인 우리가 떠올린 사랑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인간을 만들 때,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사랑은 비슷하게 느끼도록 설계한 것처럼.
이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그 사람과의 기억을 적으며, “그 사람에 대한 하나의 후회를 지울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아빠를 떠올렸다. 몽골로의 첫 유엔 인턴 파견을 앞두고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던 아빠를 떠올렸다. 내가 몽골로의 파견을 망설이자 아빠는 말했다.
“첫 시작이 중요하다. 너는 네 할 일을 하거라.”
그래서 나는 몽골로 향했다. 그 결정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대학생 시절 아빠와 종종 국밥집에서 마셨던 술잔이 마음에 남는다. 그때 아빠가 술을 조금만 덜 드셨더라면, 조금 더 건강하셨을까...
편지를 다 쓴 후,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짧은 연극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번엔 배우가 아닌 감독을 맡았고, 슈안이 아빠, 유리가 나를 연기했다. 씬은 병원 병실이었다. 아빠는 병상에 누워 있었고, 몽골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나는 조심스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묵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짧은 대화 그게 다였다. 하지만 나의 꿈을 지지하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랑이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채 그 장면을 바라봤다. 마치 그때의 나를, 또 다른 내가 바라보는 듯했다.
“나 정말 아픈 시간을 잘 견뎠구나. 버텨줘서 고마워.”
속으로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날의 수업은 눈과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마무리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슈안은 말했다.
“나는 자라며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 수리 아버지를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그런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난 그 말을 듣고 또 울컥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통해 내가 겪지 못한 감정을 몸으로 익히고 있었다. 로빈이 연기 대본을 가르치기에 앞서 강조했던 명상, 상상력, 감정 이입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천천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와의 우정을, 어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연기했다. 사랑이란 그렇게, 여러가지 상황과 각자의 언어로 표현되지만 결국 다르지 않은 감정이라는 걸 이번 주 연기 수업을 통해 깊이 느꼈다. 다채로우면서도 공통된 그 사랑은,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유이자 힘이었다.
저녁 아홉시나 되서야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평소처럼 바이크를 탔다. 밤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바이크에서 토요일 주말 저녁을 즐기는 여러사람들을 스쳤다. 손잡고 걷는 연인들, 재즈바에서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재즈공연을 보는 사람들, 나란히 걸어가는 노부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방콕의 밤이 나의 옴몸에게 건네는 사랑을 만끽했다.
이 얼마나 다채로운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