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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힘, 자존감에 대하여.

by 수리

오늘의 주제는 ‘Pride(자존감)’였다. 자존감이란 참 묘한 감각이다. 마치 정해진 적정량이 존재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의 자존감을 갖추면 삶이 풍요로워지지만, 그 수치가 부족하면 삶이 고달파진다. 반대로, 그 선을 넘어서면 본인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은 때로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적절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꾸려가기 위한 균형이 아닐까.


로빈은 지난주처럼 우리에게 자존감의 정의를 물었다. 그리고 두 명씩 짝을 지어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 나누라고 했다. 나는 공교롭게도 지난주 수업에서 내 아빠 역할을 맡았던 슈안과 짝이 되었다.


슈안은 패션모델 겸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친구다. 서른 후반쯤 되었고, 중국계 독일인으로 중국어, 독일어, 영어까지 능숙하다. 그녀는 예전에 밀라노에서 열린 알렉산더 맥퀸 쇼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밀라노 패션위크는 일반인도 거리에서 참여할 수 있지만 패션쇼는 초대장이 있어야만 입장 가능한 공간이다. 초대장은 오직 유명 셀럽, 인플루언서, 혹은 업계 주요 인사에게만 주어진다. 무려 7개의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야 메인 쇼장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슈안은 유명인도, 인플루언서도 아니었기에 쇼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친구들과 거리의 분위기를 즐기러 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인파에 섞여 걷던 중 친구들을 놓쳐버리고, 무심코 걸어가다 첫 번째 게이트를 통과하게 된다. 보안이 다소 허술했고, 그녀 자신도 자신이 게이트를 넘어섰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두 번째 게이트 앞으로 향하는데, 우연히 한 유명 인사와 마주쳐 짧은 대화를 나눴고, 그 유명인과 함께 걸어가던 그녀의 모습은 곧 셀럽의 지인처럼 비쳤던 모양이다. 두 번째 보안요원은 그녀를 아무런 의심 없이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슈안은 생각했다고 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자신감 있게 행동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


그 후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3번째, 4번째… 결국 7번째 마지막 게이트까지 통과했고, 결국은 알렉산더 맥퀸 쇼를 눈앞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어쩌면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이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시간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다운 용기 있고 유쾌한 에피소드였다.


슈안의 에피소드가 끝난 뒤, 나는어떤 걸 말할까 고민이 됐다. 처음 로빈이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나누라”고 했을 땐,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슈안의 위트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뭔가 가볍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올해 초, 내 남동생이 방콕으로 교환학생을 왔다. 한국에서 한의대를 다니는 동생은 현지 의대에서 한 달간 수업을 듣게 되었고, 방콕에 도착하면 연락주겠다고 했다. 나는 도착하면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다음 날, 저녁을 사주러 나갔는데 무려 친구 5명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동생의 기를 살려주고 싶어 술이며 음식이며 이것저것 주문하고, 마지막엔 멋지게 카드로 계산했다. 동생과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사는 콘도에는 수영장이 있다. 동생에게 방콕에 있는 동안 시간 나면 와서 수영도 하고 놀다 가라고 편하게 말했는데, 다음 날 정말로 찾아왔다. 퇴근하고 네 시쯤 집에 들어서니 거대한 물개(?) 같은 남자애들 여섯 명이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시끄럽진 않을지, 더럽히진 않을지. 주의를 단단히 주고, 방에 올라간 뒤로도 틈틈이 내려가 소음과 쓰레기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물개들은 조용히 놀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어떤 사람이 우리 사진을 몰래 찍어.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는 물었다.

“너희 혹시 시끄럽게 했어? 누가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했니?”
“아니야. 그냥 조용히 수영하고 얘기하고 있었어.”
“그래? 그럼 가서 직접 물어보지 그래. 왜 사진을 찍냐고.”
“응. 다시 갔어. 좀 지켜볼게.”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우리 경찰에 신고하겠대…”

나는 당장 내려갔다.


거기엔 내 키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남자가 물개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얘네가 누군데 여기서 수영하고 있는 거야?”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제 가족과 친구들이에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는 정확한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계속 화를 냈다.

“나 경찰 부를거야. 얘네들이 뭔데 내 수영장에 있는거야!”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혹시 시끄러웠나요? 불편하셨다면 애들 가라고 할게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는 다짜고짜,

“내가 이 집에 월세를 얼마 내는 줄 알아? 살지도 않는 애들이 왜 여기서!“

점점 말이 안 통했다. 나도 점점 화가 올라왔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좋게 말하시면 되잖아요. 어른이라면요. 당신이 뭔데 제 가족한테 무례하게 구세요? 무단으로 사진을 찍고 경찰 운운하시고…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고, 수영장 사용은 사무소에 허가도 받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죠? 젠틀해지세요. 제 가족에게 무례하게 하는 거 저는 못 참습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이 허리에 올라가 있었고,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격앙되어 있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시끄럽지도 않았고, 허가도 받았고, 방해된 것도 없었으니까.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돌아갔다. 뒤에 서 있던 물개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만큼만 놀고 가는 게 좋겠다. 외부인이 공간을 쓰는 걸 괜히 불편해하는 사람인 것 같아. 너희는 잘못한 거 없어. 들어가서 쉬어.”

그날 밤, 남편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며 속상함이 올라왔다. 무례한 그 남자도 짜증났지만, 내가 동생과 그의 친구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낸 게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싶었다. 그때 남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누나,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 ㅠㅠ."

나는,

“괜찮아.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있는 법이야. 신경쓰지마. 이 일로 괜히 너희가 속상할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한참 후, 동생이 덧붙였다.

“근데 있잖아, 누나 지금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완전 이상형으로 등극했어. 다들 부럽대. 널 지켜주는 든든한 누나가 있어서.”

그 말에 실소가 터졌다. 하긴, 키 150짜리 작은 여자가 거대한 덩치를 상대로 할 말 다하고 되돌려보냈으니... 그들 눈엔 꽤 멋져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속상한 감정은 조금씩 가셨고, 대신 ‘내 가족을 지켰다’는 묘한 뿌듯함이 남았다.


지난 몇 년간 해외에서 혼자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낯선 경계에 부딪혔다. 그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그리고 내 사람들을 지키는 법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슈안도 재밌다며 웃었다.


우리는 서로로 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앞에서 발표했다. 내가 마치 상대방이 된 것처럼, 생생하게,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이후에는 지난 시간처럼 명상 수업도 잠시 했고, 공을 던지며 서로 눈을 맞추는 유대감 형성 활동도 이어졌다. 다음주가 지나면 우리는 두 명이서 실제로 연기를 선보여야 하기도 하니, 내면적으로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듯했다. 여러 재미있는 활동들과 함께 오늘의 3시간의 수업도 끝이났다.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뜻밖에 찾아오는 듯하다. 당황스러운 일이나 화가 나는 일, 혹은 실패를 겪고 그것을 이겨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감정. 어쩌면 자존감이란 건 그런 극적인 순간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힘. 흔들리는 상황일수록 더 뚜렷이 드러나는 감정이 자존감 아닐까.


드라마나 연극 속 우리가 좋아했던 주인공들은 보통 온갖 수모를 겪는다. 그리고 그들이 그 상황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극복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 순간을 묵묵히 살아내며 어쩌면 조금씩 성장하고, 극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하루도 있는 반면, 어떤 날은 그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한 날이 있다. 그런 날들을 지나오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당장의 변화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매일을 살아내고 있으며, 살아냄으로써 결국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하루를 잘 살아낸 당신께,
당신 안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을, 당신은 미쳐알아차리지도 못했을, 당신을 지켜낸 무한한 힘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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