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왜 미술을 눈여겨볼까?

#미술이 산업이 될 때

by 인생은 아름다워


아빠는 어릴 적부터 내게 “백화점을 유통업이 아니라 부동산업으로 바라보라.”라고 말씀하셨다. 현상의 이면을 볼 줄 알라는 당부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생각의 범위를 한정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상하이 K11 쇼핑몰을 보면 아빠가 말씀하신 이야기의 좋은 예가 되어준다.

K11은 ‘사람’, ‘자연’, ‘예술’이라는 세 가지 분명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K11에서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쉬며 영감을 얻는 공간.”

쇼핑몰의 입점 브랜드로 차별성을 두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특히 상하이에서 고급 백화점이 가장 많은 신천지에서 럭셔리 브랜드로만 소비자에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예술을 그저 쇼핑몰의 인테리어 정도로 본 것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접근했다.

우선 지하 2층 모든 공간을 K11 Art Museum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었다면 대관 비용 정도의 수익으로 백화점에서는 손 놓고 관리할 텐데, 국내외 미술대학 출신의 전문가를 고용하여 전시와 소장품을 철저히 운영 관리한다. 모네의 대규모 전시도 진행했고, MoMA PS1과 전시 협약을 맺어 전시를 가져오기도 하는 등 전시의 수준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모든 층에는 K11 Art Foundation에서 소장한 국내외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어 Art station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데미안 허스트, 이이남 등 회화, 설치, 조각, 미디어아트를 불문하고 작가와 장르 모두 현대미술의 중심에 있는 “진짜” 컨템포로리아트를 지향한다.

중국을 넘어 미국과 유럽에서도 K11은 쇼핑몰보다는 미술관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쇼핑몰 속의 작은 미술관이 아닌, 미술관 속에 쇼핑몰을 넣어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도 미술을 사업으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신문에서 신세계 본점 미술품에 대한 기사가 났길래 다녀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미술품은 액세서리 정도의 인테리어였다. 콘셉트도 없고, 의도도 없었고, 의지도 없어 보였다. 우선 전문성이 결여된 작품 선정이 가장 아쉬웠다. (작가의 작품성을 논하는 게 아닌, 콘셉트가 없는 작품 선정이라는 것 )

올든 버그의 조각과 서도호의 설치 작품은 백화점 소장 같았고, (이 마저도 작가의 주요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나머지 회화 작품은 대여한 것 같았다.

중간에 갤러리나 기획사가 끼여있는 것 같았는데 지난주에 신문 기사가 났고, 다음 주에 백화점에 걸려있는 청년작가가 삼청동 소재의 모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린다는 걸 보니 계획한 일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술이 산업이 될 기회를 날려버리는 일, 그리고 여전히 한국에서는 예술을 소모성 비용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쉽다.


상하이에서는 미술을 통해 유통업과 부동산업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미술을 돈 먹는 하마로만 여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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