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작품이 되고 공간이 된다.

<제니 홀저 JENNY HOLZER>展

by 인생은 아름다워


“끈질기게 반복하는 악을 개선하거나 멈추데 하는 일을 예술이 조명할 수 있어요. 예술에는 그런 열망이 있거든요.”


_제니 홀저 인터뷰,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P.207 참고


제니 홀저는 작년과 올해를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한 적이 있는 국내에 꽤 알려진 작가다. 다채로운 공공장소에서 작품 활동을 선보이며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미국관을 대표했을 뿐 아니라 그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화려한 이력보다 작품이 주는 파워풀한 메시지 자체로 관람객들을 사로잡는다. 이번 국제 갤러리에서는 미국 정보 공개법에 따라 공개된 정부 문서를 회화로 번안해 내는 방식의 작품이 선보였다. 이미 상당히 검열된 상태로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및 군부 문서가 작가의 손을 거쳐 거대한 추상화로 변모하고, 이때 정부 문서 상의 검정색 검열 막대기는 다채로운 금박 및 은박으로 호환된다.


또한 LED 작품은 작가가 선별한 문장 및 글자가 LED를 타고 다채로운 속도로 깜빡이며 흘러간다.
“LED 사인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 있는데, 나는 이것이 구두로 전달하는 말과 비슷하여 좋아한다. LED 사인을 통해서는 글자를 강조할 수 있고, 흐르게 하고나 멈출 수도 있는데, 내게는 이것이 마치 우리가 목소리로 나는 억양의 동적 등가물처럼 느껴진다.”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경구들 TRUISMS>이란, 작가가 1979년대부터 꾸준히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 해온 일련의 격언 문구들을 칭한다. 엄격한 동시에 유머러스하고, 공격적이면서 때로는 모순적인 경구들이 국문과 영문으로 번갈아 제시된다.

전례 없이 가속화된 분열의 세상 속에서 지난 한 해는 각 개인이 끊임없이 자신을 잃고 다시 찾는 노력을 반복해야 하는 지리한 시간이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마주한 지금, 작가는 ‘생생한 공상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IT’S CRUCIAL TO HAVE AN ACTIVE FANTASY LIFE)’라는 핵심 문장을 화두로 건네며 조심스럽되 적극적으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국제갤러리 제니 홀저 소개 자료 중 참고)


바버라크루거와 제니 홀저의 공통점이 바로 언어를 시각화하여 작품을 한다는 것과 단순하고 명확한 텍스트로 던지는 이미지는 사회문제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한다는 것이다. 쉽지만 가볍지 않은 그녀들의 메세지가 내내 생각하게 하는 것도.
LED조명 사이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텍스트를 통해 오늘의 이 시대와 사회 속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작품을 보면서 오랜만에 단순함이 주는 명쾌함이 좋았지만 CIA의 비밀문서가 화려한 작품이 된 것이 좀 우습기도, 아이러니하다고도 생각했다. 갤러리의 벽면에 걸린 비밀문서 작품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컬렉터와 작품 판매를 위한 갤러리스트의 대화를 들으며 그들은 비밀에 가치를 뒀을까, 영원할 줄 알았던 비밀이 온 세상이 공개된 것에 가치를 뒀을까? 생각했다.

코로나에 내 삶을 뺏기지 않을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들른 전시장에서 여유롭게 그림 쇼핑을 하는 컬렉터들의 모습에 약간 이질감을 느꼈지만, 예술은 원래 아이러니의 연속 아닌가 쿨해지기로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