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두 번째 퇴사일기.
종로에서의 마지막 출근길과 퇴근길.
20살이 되기 직전의 겨울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효자동에 살면서 광화문으로 직장을 다니겠다고.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기자님이 있는 저 신문사 문화사업부에서 일하며 미술산업을 일으키겠노라고.
30대가 되어 서울로 귀국한 후, 얼추 비슷하게 그 꿈을 이루었다. 대신 고된 감정노동과 영과 혼과 정신까지 갈아넣으며 주말시간까지 몽땅 쏟아 부어야만 했던 기형적 조직구조, 낯설고 이질적인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일을 버티지 못하고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퇴사를 결정했다. 마지막 퇴근길에 나는 인왕산 초입의 벤치에 앉아 달을 보며 엉엉 울었고, 다시 돌아갈테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걸릴 것 같다며 한참을 집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그리고 옮기게 된 미술관에서의 생활은 만족도는 낮았으나 정신적 체력적인 힘듦은 거의 없었다. 적당히 무난한 공기업의 문화가 나에게 맞지는 않았다. 그래서 20대를 관통하던 나의 꿈과 열정도 함께 사그라들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나의 인생도 나의 커리어도 모두 끝났다는 늪에 1년을 넘게 우울감에 허우적 거리며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그 시기를 버티게 해준건, 우리 동네.
예쁜 서촌의 거리를 구경하면서, 청와대 앞마당 산책로를 뛰면서, 인왕산 자락길을 걸으면서 힘든 마음을 많이 털어냈다. 나의 아지트였던 전망대에 앉아 서울의 야경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고, 하나님께 촘촘히 기도하던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건강을 돌보게 됐고, 다시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태초에 ‘경희궁의 아침’에 살았던 것 처럼, 대대손손 ‘청운동’ 주민인 것 처럼 살고 싶은 나의 꿈은 오늘로 잠시 쉼표를 찍는다. 종로구 만세를 외치던 나에게는 아쉬운 작별. 동네의 예쁜 곳곳을 더 많이 다녀보지 못한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이렇게 광화문, 서촌, 삼청동의 시대는 끝을 내기로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직장생활을 해서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많이 정이 들었나 보다. 동료들의 선물과 편지 그리고 응원에 약간의 눈물을 찔끔거렸고, 각부서 어른들께 수고했다는 인사를 받으며 마무리 한 오늘의 기억은 다음 스텝에 큰 용기가 될 것 같다.
알 수가 없는 인생이란게 이런 건가 싶은 요즘이다.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고 성실하게 지내야지. 그리고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지. 다 내가 했다고도 착각하지 말아야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잊지 말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