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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아름다워 Nov 25. 2022

출퇴근길 독서 타임

박완서 <나목>

나는 무척이나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신기술이나 새로운 기계에 대한 호기심도 별로 없을뿐더러 아날로그의 감성을 좋아하며, 그런 취향을 선호하는 사람.


그런 나도 요즘은 온종일 핸드폰을 손에 쥐고 화면 속 세상에만 빠져 산다. 업무와 관련된 일을 빼고서도 의미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불필요한 콘텐츠를 무의식적으로 소비한다. 무언가에 단단히 종속된 것 같은 요즘이다. 게다가 알고리즘은 나에게 편협한(?) 사고를 유도하는 것 같아 정보의 바닷속 좁은 시야에 갇혀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무서웠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기로 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는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거리의 계절 변화도 느끼고, 손으로 글을 쓰고, 종이 책을 넘기며 사는 것이 내 삶에 훨씬 필요한 일인 것 같아서 시작한 출퇴근길 독서.


박완서 선생님의 다른 책들은 그래도 간간히 읽었는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 와 산문집) 정작 대표작이라 불리는 나목은 읽은 적이 없었다. 본가에 간 김에 아빠 책장에서 꺼내와 지난 보름간 열심히 읽었다. 퇴근 후에도 읽으면 좋으련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출퇴근 시간에만 겨우 읽었더니 속도가 느렸다.


내게 익숙한 박수근 화백을 모티브로, 이 책은 전쟁 중 이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시절의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지만, 피난민으로 연고 없는 부산에 정착하게 된 우리 할머니와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여 내게는 익숙한 소재였다.


전쟁이라는 무겁고도 큰 주제 안에 우리는 개별 인물들, 그 개인의 섬세한 감정들은 묵살하며 모두가 전쟁의 상흔에 고통한다 치부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며 당시의 이경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 속 여주인공은 주저앉지 않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미래를 꿈꾼다. 전쟁 속 회색 풍경 안에서도 또렷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잊지 않으려고, 또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시대와 내 모습을 반추했다.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일, 내가 살아보지 않았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다. 출근길 앞으로도 많은 책을 읽어야지…!


“<나목>은 모든 사람이 쓰는 너무도 닳아있는 말들을 통해서 무구한 젊음의 그리움과 외로움과 미움과 설움을 담은 슬프고도 진한 전쟁과 청춘의 책이다. “ _ 유종호(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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