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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pr 14. 2021

남편 없는 삶에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떠난 건 그인데 죄책감이 드는 건 왜일까.

남편이 사업을 위해 집을 나가 월간부부 생활을 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에 우리는 각자 많은 일을 겪었고, 또 각자 인간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따로 사는 일상에 익숙해져 가면서. 물론 간헐적으로 외로움이 닥쳐와 우리가 부부가 맞는가 하는 현타가 올 때도 있지만 생활 자체는 안정적이고 가끔은 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익숙해져도 되는 게 맞는 걸까?




남편이 떠나고 그 빈자리와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도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기로 했다. 그 첫 시작은 늘 꿈꿔왔던 체중감량.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어서 주에 3-4번은 헬스장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식단 관리를 더해 남편이 떠나던 시점보다 8kg 정도를 감량했다. 늘 M사이즈 가끔은 L사이즈를 입었던 몸은 이제는 종종 S사이즈를 입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 요리 솜씨가 좋은 남편 덕에 함께 지낼 땐 식단 관리를 꿈도 못 꿨는데 지금은 내 의지와 컨디션, 스케줄에 따라 자유롭게 운동하고 음식을 조절하며 지낸다.


집 관리하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빨래는 반으로 줄었고, 먼지도 확실히 덜 쌓인다. 옷방도 내 마음껏 쓸 수 있으니 어지럽지도 않다. 종종 새벽까지 축구를 보느라 TV를 틀어뒀던 남편이 없으니 수면의 질도 훨씬 좋아졌다. 퀸사이즈 침대를 혼자 널찍하게 쓰기도 하니까. 더 이상 TV 채널 쟁탈전도 없다. 넷플릭스를 연결해서 보고 싶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실컷 봐도 이런게 재미있냐고 구시렁대며 다른 거 보자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주말이면 또 배달시켜먹냐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고 푸념하는 사람도 없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술주정하는 사람이 없으니 밤에 속 시끄러울 일도 없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들 모두 차로 4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계셔서 며느리 모드가 되는 건 명절, 양가 부모님 생신 정도일 때 밖에 없으니 요즘의 나는 그냥 결혼식을 경험해본 싱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종종 결혼하지 않은 지인들조차 나의 자유를(?) 부러워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보이니... 확실히 편한 생활을 하고 있고 스트레스라고는 회사에서 종종 받는 그 정도일 뿐이다. 이래서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건가 싶다. 게다가 우리는 월말 부부니 우리의 조상님의 조상님의 조상님들은 아주 큰 덕을 쌓으셨던 게 분명하다. 




다만 굉장히 좋은데! 정말 편한데 늘 마음 한편에서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아도 되는 거야?’ 싶을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덩그러니 남겨진 건 나인데 왜 내가, 도대체 누구에게, 미안함과 찝찝함을 느끼고 있는 걸까. 


멀쩡하게 일상을 즐기고 한 번씩 혼자 나들이도 잘 가다가도 결혼한 게 맞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괜히 내가 미안하고 외롭고 쓸쓸해 보여야 하나 싶다.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에 간 서방님을 기다리는 아련한 여인네가 되어 독수공방 하는 그런 무드라도 내어야 하나 하면서. 


내가 너무 잘 지내면 시부모님은 괜히 서운하실까?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이렇게 우리 엄마는 매일 전화를 해서 혼자 있는데 밥은 잘 챙겨 먹느냐고 묻는 걸까. 나는 오늘도 치킨을 야무지게 한 마리 뜯었는데 말이다. 결혼하기 전에 7년 동안 혼자 자취하던 시절에도 그렇게까지 연락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참 '결혼'을 했다는 게 뭐라고. 정작 남편과 나는 그저 롱디 하는 커플처럼 잘 지내고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왜 죄책감이 드는지 조금은 명확해졌다. 또 남편과 나 둘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다. 으레 이런 모습, 이런 걱정, 이런 상황, 이런 감정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짐작해서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 잘 지내는 나 자신이 괜히 미안스럽게 느껴졌을 수밖에.


됐어요! 

남편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저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하면서 아주 잘 지냅니다. 우리는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떨어지는 방법을 택했으니 매일매일 더 잘 살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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