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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pr 03. 2021

월간부부의 부부싸움.

먼 거리에서도 아주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몸이 떨어져 있으니 아주 애틋하겠다고, 싸울 일이 없겠다고 종종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은 간혹 발생하는 우리의 싸움이 얼마나 차갑고 냉정한지 알지 못한다.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싸움, 그건 가끔 아주 잔인하다.






부부 혹은 연인의 싸움은 언제나 그러하듯 시작은 불분명하지만 끝은 아주 선명한 상처로 남는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많다. 요즘 우리가 싸울 때마다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는 80년대 드라마 대사와 아주 닮아있다.


“아니 내가 나 혼자 잘 살자고 이래?!”

“아니 내가 그거 해달랬어, 내가 가랬냐고! 오빠가 좋아서 해보겠다고 가놓고 왜 나한테 난리야!”

“나는 여기 혼자 와 있으면서 다 괜찮은 줄 알아? 나는 안 힘들겠냐고! 왜 너만 생각해!”

“다 결국 오빠가 선택한 일이잖아. 아 몰라 끊어!”


싸움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싸울 때면 꼭 저 대사들이 나온다. 왜일까...?


월간부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생활에서 단면만 보게 되었다. 아무리 전화와 카톡으로 회사에서 있었던 일, 사업하면서 만난 진상 고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 짓는 표정과 얼굴에서 느껴지는 피로감과 서러움, 조금 더 디테일한 상황 묘사가 상당 부분 생략된다. 그래서 서로에게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는 게 아무래도 바로 옆에 있을 때보다는 어렵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는 데 노력하는 걸 대충 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충 듣고 대충 반응하다 보면 어느 한쪽은 눈치를 채고 서운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금 내 얘기 듣고 있어?”로 시작하는 시비조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한번 더 그 대사가 나오면 전쟁으로 번지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뿐.


바로 앞에서 얼굴을 보고 싸우고 있는 거라면 한쪽이 먼저 억울하거나 미안한 표정을 짓거나 그 와중에 옆에서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쳐다보는 강아지 표정이 너무 귀엽거나, 혹은 누가 손이라도 먼저 잡거나, 장난식으로라도 입을 막아버리면서 별거 아닌 잠깐의 말다툼 정도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전화 혹은 카톡으로 하는 싸움에서 그런 경우는 절대적으로 없다. 게다가 최악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일방적으로 한쪽이 대화를 끝내 버리는 게 너무나도 쉬워진다는 것이다. 전화는 끊어버리면 그만이고 카톡은 읽씹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심지어 카톡으로 싸울 때는 온갖 미운 말들이 그대로 박제되어 남아있으니 대화창을 올리며 눈으로 곱씹을 때마다 화가 점점 더 난다. 그러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화난 감정을 그대로 머문 채 정체되어 있는 상태로 계속해서 존재한다.


함께 지낼 때는 보통 싸우면 감정의 끝까지 치달아 서로에게 쏟아내더라도 문제를 오래 안고 가지 않는 편이었다. 불같이 화내다가 와다다다 쏟아내면(주로 내쪽이지만) 금세 속이 시원해져서 ‘배고픈데?’ 한마디로 해결됐었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한쪽이 장난을 쓱-걸면 “사과해!” “응 미안!”하고 심플하게 끝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침에 싸우면 저녁까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저녁에 싸우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서로 출근은 잘했는지 정도 확인하는 것 외에는 긴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시간 내내 싸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 일과를 보내느라 더 그렇게 되긴 하지만 의도치 않게 냉전의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다가 결국 전화로 “사과해~ 사과해라~”하고 ‘일단은’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에 직접 만나게 되면 여지없이 ‘근데 그때 있잖아.’하며 그때 그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했던 이야기를 한번 더 하면서 마침내 현피를 떠야 진짜로 끝이 난다.


결론은 전화와 카톡으로는 제대로 된 싸움도 화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은 그냥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니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지 않기 위해 넘어가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상처와 화를 굉장히 선명하게 저장해 놓는다. 그리고 판이 깔리면 쌓아두었던 서운함, 화, 서러움 카드를 한 장씩 꺼내게 된다. 그렇게 긴긴 대화(가끔은 화와 눈물을 곁들인)가 있어야만 서로 이해하고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면서 월간부부로 롱런하기 위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쨌든 카톡으로 싸우는 건 최최최최최악이다.

싸울락 말락 했던 어느 하루를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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