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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Mar 21. 2021

월간부부, 그래서 외롭지 않냐고요?

어디 한번 정말 솔직하게 말해볼까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외로움은 옆에 누가 있건 없건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거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보냈던 학창 시절에도, 늘 따순밥에 폭신한 침구와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방이 있던 가족과 살던 집에서도 그랬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김없이 외로움은 불쑥 찾아와 나를 심해 저 끝으로 끌어내려 가곤 했으니까. 누군들 안 그렇겠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20살 때부터 시작 한 자취생활 덕에 집에 혼자 있는 일에는 익숙해져서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 집이 우울하거나 심심하고 암울한 공간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 주인공처럼 방 3개를 혼자 쓰는 도시 여성이 된 기분이라 우쭐할 때도 있다. 집안 곳곳에 아무 데나 널브러진 정장 양말과 사각팬티가 없는 것도, 소주병과 맥주캔, 막걸리병이 베란다에 쌓이지 않는 것도, 화장실 선반에 있던 면도기와 쉐이빙 폼이 사라진 것도, 옷방을 온전히 혼자 다 쓸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좋다.


‘그래도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으로 집에 있는 반찬들을 다 넣고 볶음밥을 해주었던 남편 대신, 모자 툭 쓰고 편하게 집 앞에서 만나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그런 친구.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퇴근길에 만나 소주 한잔하면서 온갖 육두문자 섞인 욕을 들어주던 남편 대신, 집 근처 포차에서 꼬치에 소주 한잔 같이 해줄 수 있는 친구. 일요일이면 창문을 다 열고 대청소를 함께 하던 남편 대신, 일요일 오후에 우리 집에서 넷플릭스에 배달 음식 시켜먹으며 애써 다가오는 월요일을 함께 외면해 줄 수 있는 친구. 주말 저녁에 카페에서 각자 말없이 책 읽고 핸드폰을 보다가 밥 먹으러 가자!라고 외쳐주던 남편 대신, 백운호수 드라이브를 함께 해 줄 수 있는 친구. 일상의 소소함을 같이 나눠 줄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 걸 보니, 소소하게 남편의 자리가 시리긴 했나 보다.



진짜 신속한 119


‘31살 여성,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돼. 반려견만이 옆을 지켜.’라는 기사가 내 이야기 일 수 있다.  

1년에 아픈 날을 손에 꼽는데 이번 주는 몇 년 치의 아픔을 한 번에 겪었다. 재택근무가 끝나고 다시 정상 출근이 시작됨과 동시에 회사가 이사를 하면서 출근 시간이 2.5배 늘어났다. 거기에 회사에서의 이런저런 소동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엄청났는지 수요일 새벽 예기치 못한 복통이 시작됐다. 처음엔 그냥 배앓이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증상이 심각해서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을 정도였다. 구토와 설사 증상이 있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앞으로 꼬꾸라져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근데 이렇게 쓰러져 있은들 나를 발견해 줄 수 있는 이는 우리 집 강아지뿐. 아쉽게도 우리 집 강아지는 스마트폰을 쓸 줄 몰라 신고도, 전화도 해 줄 수 없었다. 30분가량을 119에 신고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이 시국에 나 따위가 고작 이런 증상으로 119를 부른다는 게 오버인지 아닌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허리를 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어서 결국 119에 신고를 하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문을 열고 구급대원을 만났을 때의 그 반가움과 서러움과 안도감이란... 병원에 도착해서 링거와 진통제, 주사를 맞고 조금 진정된 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벼락같은 소식에 놀란 남편이 올라오겠다고 했지만 그가 올라온들 당장 무얼 해 줄 수 있겠나 싶어 됐다고 했다. 증세가 호전된 후 혼자서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약을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혼자 죽을 수도 있겠다, 무얼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싶어 서럽고 외롭고 화가 났지만 그때뿐이었다.


외로움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익숙해져야 할뿐.


잠옷 바람으로 병원에서 돌아오던 길






외로워도 슬퍼도 우린 더 잘 살기 위해 이 선택을 한 거니까.

어찌 됐든 종종 사람들이 외롭지 않냐고 물을 때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말하지만, 정확히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 혼자 죽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는 해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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