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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Aug 30. 2021

월간부부, 부부와동료 사이

가족끼리 일한다는 건...

월간부부 생활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던 달에 남편은 계획했던 대로 본인의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오, 결국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쳤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인간으로 느끼는 외로움과 사회인으로 느끼는 압박감, 파트너로 느끼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는 균형을 잡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 (사실 그 줄타기는 현재 진행형...)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양쪽 다 동시에 줄을 놔버린 적은 없다는 것. 한쪽이 힘이 빠져 그 줄을 놓으려고 할 때 다른 쪽에서 줄을 당기다 못해 아주 따갑게 채찍질을 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무사히 보냈고 사업을 오픈하면 모든 게 전보다는 안정화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모님 소리 좀 들어보나 했더니 졸지에 나는 잡부가 되어야 했다.


남편이 시작한 사업은 다름 아닌 요식업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비주얼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매장의 큼직한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컵, 접시를 비롯한 각종 집기부터 간판, 포스터, SNS 채널, 지도 등록 등 온라인 상에서 챙겨야 할 것들이 정말 126,751,290가지는 되는 듯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마케터로 살아온 세월이 있는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이 하는 일이니 돕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번 돕기 시작하니 점점 일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서울과 거제도를 오가면서 초반에 몇 개의 나름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니 남편은 아예 나에게 "전무" 타이틀을 부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요즘 세상에 본업만 하는 바보는 없다고, 다들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본적으로 하나씩은 한다지만 나는 그래도 내 본업에 대해 자부심이 있고 커리어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 내 본업이 우선이다. 그런데 자꾸 남편이 내가 본업을 하는 시간을 침범해 오는 것이었다. 업무를 보고 있는 와중에 카톡으로 계속 뭘 물어보고, 자료를 툭툭 던지더니 재촉까지 하기 시작하는 것.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각 잡고 이야기를 했다.


"이건 당신의 사업이다. 나는 이 사업을 조력해 주는 사람이지 당신이 뽑은 직원이 아니다. 막말로 당신이 나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나는 당신에게 투자를 한 사람인데 어느 사업체 대표가 투자자를 이렇게 대하느냐. 당신 이름을 걸고 당신이 사업자를 내서 하는 일이면 당신이 책임을 져야지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는 나는 더 이상은 못하니 다른 사람을 찾아라."


다행히 남편은 이 부분에서 본인의 과오를 인정했고 역할분담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초반에 내가 잡고 있었던 일은 일단 모두 마무리를 지었다. 그다음부터 남편이 중간중간 마케팅이나 경영적으로 나에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이전처럼 일을 던지지 않고 정리된 내용으로 요청을 했다. 특히 내 업무 시간 중에는 절대적으로 다른 일 이야기로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땐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부분까지는 내가 어느 정도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겠으나, 그 외적인 부분까지 도와주는 건 어렵다. 직접 처리하거나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식으로 나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애매하게 시작했다 서로 스트레스만 받고 결과물이 나쁜 것보다는 그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니까.


영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장 인테리어나 소품, 청결 부분에 대해서 한 번씩 내려가서 피드백을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내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해주었다. 단, 메뉴 구성이나 가격, 자재 공급 등 절대적으로 사업의 본질인 요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로서의 피드백 정도 외에는 남편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았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남편을 존중하고 지지해야 하니까.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투닥거리면서 이렇게 동료로서의 역할 분담도 균형을 맞췄다.


글로 쓰니 이 과정이 굉장히 깔끔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가기도 했고 서로의 책임을 탓하는 언쟁이 있기도 했다. 그런 정신머리를 가지고 어떻게 사업을 하냐, 남편이 하는 일을 물심양면 도와줄 수는 없는 거냐, 그것도 아이디어라고 내냐, 디테일이 그게 뭐냐, 센스가 있냐 없냐, 이럴 거면 다 때려치워라는 등...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런 관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앞이 깜깜 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우리 부부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서 세계를 확장했다.

부부의 영역에서 동료의 영역까지 확장되었으니...

지금은 딱 적당한 경계선을 찾은 것 같다.



그래도 누군가 가족과 함께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게 서로의 배우자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가족끼리 일하면 안 된다고 하는 데는 역시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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