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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ul 11. 2021

자식 노릇을 해야 할 때

최고의 팀워크가 발현되는 순간

친정 엄마의 환갑.

친정 아빠의 생신.

시어머님의 환갑.


지난 3월엔 양가의 주요 집안 행사가 다 몰려있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설 명절도 건너뛰었던 우리는 3월만큼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했다. 명절은 매해 다시 돌아오지만 환갑은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으니까. 환갑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잔치를 하거나, 친인척들을 모두 불러 모아 식사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기에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다만 이주일 간격으로 몰려있는 이 환갑 일정들을 어떻게 케어해야 할까. 환갑 걱정하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2월부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던 우리는 매일 통화할 때마다 “근데 3월에 우리 어떻게 하지...”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결국 정신 차리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자식 노릇을 하기 위한 팀워크를 발휘해 보기로 했다.


우리의 주요 미션은 크게 3가지

1. 5명의 가족들이 안전하고 맛있고, 깔끔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섭외

2. 양가 부모님에게 드릴 적정한 용돈과 선물

3. 편도 3시간이 넘는 거리의 이동 일정


이 3개의 미션을 양가에 한 번씩, 총 2번씩....


이걸 매번 다 같이 의논하고 정리하기엔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었다. 그래서 크게 ‘내 집은 내가, 네 집은 네가’를 기준으로 잡았다. 즉 친정 행사와 관련된 것들은 주로 내가 맡아서 진두지휘하고, 시댁과 관련된 것들은 남편이 맡아서 진두지휘 하는 것. 나름 경영학과 출신인 우리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팀플 정신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1. 식당 섭외

우선 일정상 먼저인 우리 엄마의 환갑 준비를 위해 내가 순천-여수 지역의 이름 좀 있고 고급지다는 호텔, 한정식, 일식, 중식 식당을 서칭 해서 2-3개 정도로 추렸다. 그중 내가 생각하는 1,2,3순위를 정해서 남편에게 공유했고 남편은 리스트 중에서는 내가 1순위 식당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첫 번째 미션은 클리어했다. 남편 역시 시어머님 생신을 위한 식당을 부산의 오마카세 전문점을 3개 정도 추려서 나에게 공유해줬고 위치나 퀄리티를 감안해서 최종 확인만 나와 같이 했다. 양가 모두 비슷한 예산 내에서 식사를 해서, 식사 비용 역시 내 집은 내가, 네 집은 네가.


2. 부모님 용돈과 선물

이 항목은 처음부터 양가에 드리는 예산을 맞췄다. 우리 엄마는 딱히 갖고 싶다고 하는 게 늘 없는 스타일이라 전체 예산을 다 용돈으로 드렸고, 마침 시어머님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그 물건을 사드리고 예산에서 남는 금액은 역시 용돈으로 드렸다. 이 부분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현금이 최고이니, 현금에 대한 부담은 현재 고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내가 다 책임졌다.


3. 양가 이동 일정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이 부분이 체력적으로 제일 힘들었다. 남편은 아직도 일요일밖에 시간을 낼 수 없고, 나도 연초부터 휴가를 남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동과 식사, 간단한 티타임, 주변 구경 등 모든 행사 일정은 일요일 하루에 끝내야 했다. ktx를 타고, 식당 근처의 케이크 가게 혹은 꽃가게 위치를 미리 파악해서 예약 주문을 넣어두고, 식당으로 가기 전에 픽업하고,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서 차를 마시고... 하는 동선을 미리 다 짜서 공유했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 다 식사 후에는 오랜만에 만난 월간 부부 둘이 가서 자유 시간을 주셨지만 :)



우리가 다른 부부들처럼 매일 저녁을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이 모든 준비 과정은 대화를 통해 이뤄졌을 거다. 하지만 각자 일을 해야 하고 낮밤이 약간 차이가 나는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서로 맡은 일은 각자에게 완벽하게 책임을 부여했고 그냥 믿었다, 선정된 장소 등에 대해서는 카톡으로 링크를 공유했다. 대신 선정 한 장소에 대해서는 꼭 부연 설명을 했다.


‘찾아보니까 이 식당은 보통 상견례할 때 많이 찾는 곳 이래. 요리도 코스로 나와서 다양한데, 메인 디쉬를 셰어 하는 게 아니라 1인분씩 나와서 요즘 같은 때도 괜찮은 것 같아. 가격도 우리 예산에 맞고.’


‘현금으로 드릴 용돈은 00원이 좋겠어. 그게 양가에 드리는 전체 비용이 맞을 것 같고, 이번 달에 현금이 그 정도 여유가 생기네. 살짝 생신 느낌 내는 게 부족할 수는 있을 것 같아서 케이크랑 꽃은 픽업하기 좋은 장소에 미리 주문해 둘게.’


이런 식으로. 그러면 그냥 서로의 안목과 선택 이유를 무조건적으로 믿는 거다. 그저 “OK”만 외쳐주면 된다.

통화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한 명이 “아 근데 거기는... 좀....”이러는 순간 “아 그래? 그럼 오빠가/네가 찾아봐.”라고 하며 감정싸움이 시작될 테니까. 어쨌든 3월의 가족 행사는 나름대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갈등 한 번 없었던 우리의 팀워크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었다.


확실히 멀리 살면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제한이 걸린다.

그런데 그럴수록 그냥 서로의 능력, 시간, 마음, 성향, 취향 등 모든 걸 더 굳게 믿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벌써 4개월 전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오늘 다시 깨닫는다. 믿음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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