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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Feb 18. 2021

월간 부부의 데이트는 여행과 같아서

계획적인 만남

월간 부부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우리 부부의 만남은 평균적으로 월 1.5회 정도이며, 한번 만나면 보통 1박 2일 같은 1박 3일 보낸다. 계획 없이 데이트하고 즉흥적으로 여행했던 전과는 다르게 한정된 시간 안에서 서로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매우 계획적인 커플이 되고야 말았다.


 




우리의 만남은 모두가 잠든 사이 시작된다.

토요일 저녁까지 일을 하는 남편은 집에 오는 날엔 일을 마치고 토요일 밤 버스를 탄다. 도착하면 보통 새벽 2시 정도. 그럼 나는 잠이 든 것도 안 든 것도 아닌 채로 혼자 토요일 밤을 보내다가 남편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남부터미널로 출발한다. 모두 잠들어, 고양이조차 보이지 않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조용히 시동을 켜고 스멀스멀 빠져나갈 때면 혹시나 내 소리에 누가 깨기라도 할까 조마조마한 마음과 30분 뒤에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심장이 벌렁벌렁해진다. 불법 유턴과 신호 위반, 과속이 만연한 야밤의 도심 고속도로에서 초보 운전자는 내 남편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편안하게 모셔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비속어를 남발하며 운전을 해댄다(열녀 났네...). 택시만 줄지어 서있는 남부터미널에 도착해서 매번 우리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장소에 차를 대고 백미러를 쳐다보고 있으면 남편이 뛰어온다. 그 모습을 보면 남편이 차에 오르기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네비를 세팅한다. 5분 이상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 카메라에 찍히기 때문에... 여기선 늘 스피드가 생명이다.

 

마침내 남편이 차에 오르면 그의 온몸에 배어있는 비린내가 짜르르 전해져 온다. 처음에는 “윽! 이게 뭐야. 안 씻었어?”하고 타박했으나 이제는 받아들였다. 하루 종일 생선을 만지다 오는 남편에겐 오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생.. 이 아니라 일을 했다는 증거니까. 이제는 코에 비린내가 쓱 들어오면 찌르르하며 짠해진다. 


다시 같은 길을 30분을 운전해서 집에 도착한다. 이 밤에 갑자기 엄마가 어딜 나간 건가 싶어 문 앞에서 기다리던 상수(강아지)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누구인가 싶어 3초 정도 경계하다 이내 있는 힘껏 달려든다. 옷을 갈아입고 앉아 소파에 기대어 밀린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은 4시 30분쯤. 동이 트기 전에 일단 눈이라도 붙이기로 한다. 



이번엔 어디야?

원래 아침잠이 별로 없는 우리 부부는 새벽 4시 반에 잠들어도 10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움직인다.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면서 이번엔 어디 어디를 들러야 하는지 체크한다. 보통 자연경관을 누릴 수 있거나 데이트에 적합한 곳 1곳과 요식업 시장 조사를 위한 맛집 혹은 카페를 포함한 핫플레이스 2곳 정도.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주의 컨디션에 따라 데이트 장소는 달라지지만 어쨌든 보통 우리는 사람이 한산하고 자연이 가까운 곳으로 많이 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떨어져 있는 주말엔 각자 쉰다기보다는 만나는 주간에 하지 못할 일들을 대비해서 일을 하거나, 작업을 하거나, 책을 보며 촘촘하게 보내기 때문. 월간 부부의 만남 주간은 서로에게 휴가를 위한 스케줄로 빼놓는 시간이다. 

코로나 시국에 최근 데이트 장소로 가장 적합했던 곳은 청계산과 서울 대공원, 설 연휴에 다녀온 글램핑장 이렇게 3곳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3곳의 공통점이라고 도착지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고 꼭 근처에 맛집 혹은 핫플레이스 한 곳 정도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물론, 목적지에 따라 식당은 유동적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는 11시에는 집을 나선다. 어딜 가든! 


우리가 강남역같이 늘 붐비는 곳은 잘 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보통의 일요일 오전 11시는 어디든 아직은 한산하다. 그 시간에 우리는 새로운 곳에 가서 서로의 일 이야기, 사업 이야기, 지인들의 새로운 소식 등 어젯밤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공간을 경험하고 탐험한다. 주로 나는 데이트 장소와 카페에서 생기가 도는 편이고 남편은 식당에 가면 아주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 각자 집중하는 시간에는 되도록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준다. 물론 그 조용한 시간을 깨는 건 늘 "오빠 뭐해? 뭐 봐?"라고 묻는 내쪽이지만. 그렇게 간만의 데이트는 끝이 나고 본격적인 시장 조사가 시작된다. 



우리에겐 식당이 식당이 아니다.

요식업으로 사업을 준비하는 남편의 아이폰에는 온갖 가게의 정보들이 수두룩하다. 전국 팔도에서 잘한다 싶은 집들에 대한 정보를 다 수집하는 중이다. 그리고 기회만 있다면 늘 직접 찾아가서 경험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식당이 단순히 밥을 먹고 배를 채우는 데이트 장소가 아니다. 시장 조사이자, 먼저 자리를 잡은 업계 선배님들의 노하우를 경험하는 시간이랄까. 


남편의 시장조사는 식당 입구로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다. 주변을 쭈욱 훑어보고 착석하기까지의 동선도 살피고, 메뉴판 구성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직원수, 청결 상태, 서빙 방식, 가구 상태와 브랜드, 하다 못해 젓가락 숟가락 디자인까지. 사실 한 번씩은 그냥 맛있게 밥만 먹고 싶을 때도 있다. 못 참고 제발 밥만 먹으면 안 되냐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안 되겠냐고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어쩌겠나 조사해온 내용들을 썰풀듯 설명해 주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며 눈빛을 반짝거리는데. 다 결국엔 그의 사업에 밑거름이 될 경험일 거라고 생각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그리고 사실 마케터로 일하는 나에게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남편의 핫플레이스 정보 수집 속도는 인스타 좀 달고 산다는 나보다도 빠를 때가 많은데 덕분에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요즘 어디서 어떻게 뭘 먹고 사는지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시간을 소비만 하고 살던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뭐라도 배우고 얻어가고 저장하려고 참 많이 변했다 싶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하루 종일 시간을 쪼개어 데이트를 하고 핫플레이스 투어를 마치고 나면 늘 배가 부른 상태로 집에 돌아오게 되지만, 이때부터 우리에겐 정말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월요일 새벽 첫차를 타고 남편은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괜히 아쉬운 마음에 꼭 아파트 상가에 있는 슈퍼에 가서 맥주 4캔과 주전부리를 산다. 같이 보려고 꾹꾹 참았던 영화를 보면서 강아지까지 세 식구가 소파에 스르르 포개진다. 중간에 계속 힐끔힐끔 시계를 보면서 헤어지려면 몇 시간이 남았나 계산하곤 하지만 이 시간이 우리에겐, 아 적어도 나에겐 한 달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그러다 보통 나는 먼저 잠에 들고 시간을 잡고 싶은 남편은 새벽까지 EPL 경기를 보다 2-3시쯤 스멀스멀 침대에 합류한다. 


그리고 새벽 6시. 우리는 또 다음을 기약하며 남부터미널에서 헤어진다.




안녕,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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