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괜찮아. 내가 벌고 있잖아.
이번에는 내가 남편을 위해 희생(?)할 차례가 온 것이다. 결혼 후, 마음대로 2번이나 퇴사하고 훌쩍 여행을 다녔던 달콤했던 순간은 이렇게 굵직한 몽둥이가 되어 돌아왔다. 당장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이 짙었다.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벌고 있는 데 무슨 걱정이냐고, 걱정할 시간에 더 빨리 계획하고 움직이라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오랜만에 계산기를 돌렸다.
일단, 남편이 회사를 다니면서 꼬박꼬박 받았던 월급은 나의 월급보다 더 많았다. 그의 월급으로 아파트 대출 이자와 원금, 자동차 관리/보험료 등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굵직한 비용들이 해결됐었는데 이제 그 부분이 싹-날아가는 거다. 회사에서 받는 퇴직금도 있긴 하지만 사실 그 퇴직금마저도 결혼할 때 회사에서 받았던 대출금을 상환하고 나면 많지 않다. 그리고 그 금액은 그의 사업 준비를 위해 쓰여야 하기 때문에 절대.절대.절대 손댈 수 없다.
자, 그럼 이제 한 사람분의 월급으로 둘이서 어떻게 살아야 갈까?
내 월급으로 아파트 대출금, 자동차 관리비, 둘의 보험료, 강아지 병원비, 생활비, 저축(이라 쓰고 사업 투자비라 읽는다.)을 해결하면 되는 거다. 아, 참-쉽구먼;
그냥 덜 쓰고 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 월급 중 고정 금액을 저축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펑펑 쓰며 살았던 이 소비 습관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여행과 음식에 돈을 아낄 줄 몰랐던 소비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일이 참 쉽지 않았다. (이 소비 습관은 사실 지금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남편의 퇴사가 확정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건강보험 등록.
늘 회사에서 건강보험을 처리해 주었으나 이제 남편은 소득이 없으니 나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새로 시작하려고 하는 사업이 몸을 쓰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 가장 먼저 진행했다. 방법은 건강보험 공단 홈페이지에서 피부양자 등록을 하면 된다. 사이트에서 바로 할 수 있어서 아주 간단한데 집으로 수정된 보험 등록증이 오고 나면 기분이 이상하다.
이제 당신이 이 가정의 가장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건강 보험 등록증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직은 둘 다 젊다는 이유 하나로 그냥 꿈을 좇아 겁 없이 도전할 가벼운 일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과 건강, 돈을 들여 도전하는 현실이라고. 경기도와 경상남도, 대한민국의 끝과 끝에서 남편과 나는 계속해서 방향을 읽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고 수평을 맞춰가며 살아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부양자와 피부양자로서 더 떳떳할 수 있도록.
오늘도 먹고 싶었던 햄버거 세트를 포기하며,
이 햄버거 세트가 훗날 남편의 사업자금으로 쓰이고,
번듯한 사업체로 돌아올 달콤 짭짤한 꿈을 꿔본다.
정신 차리자, 나는 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