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Feb 05. 2021

월간 부부 10개월의 회고

무엇이 무엇이 달라졌나.

2020년 6월에 시작된 월간 부부 생활이 어느덧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시간은 늘 그랬듯 순간엔 느리면서 지나 보면 참 빠르기도 하다. 헤어질 땐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봄이 오는 날을 기대하고 있으니. 설을 앞둔 금요일의 오늘은 우리의 시간들을 정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떨어지게 1년을 채우고 쓸까 하다 또 2개월 사이에 이 생활에 익숙해져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으니 생각날 때 남겨두기로 했다.

 


1. 생활 밀착형 어른이 되었다.

개미도 잡고, 변기도 고치고, 자동차 보험 처리도 잘한다.


결혼하기 전 자취를 8년이나 했지만, 그때보다 지금 자취 스킬이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갖게 된 것들이 더 많아져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진 것이다. 월말 부부가 되기 전 우린 여느 부부들이 그러하듯 살림을 늘려왔다. 특히 강아지와 집과 차. 남편이 있을 때는 집에 대한 것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분담이 되었다. 부엌, 화장실, 아파트 관리실과 연계된 것들은 남편이, 그 외에 것들은 내가 맡아왔는데 남편이 맡았던 것들이 나에게 오고 보니 은근히 꾸준히 손이 가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꼭 잔고장들은 왜 남편이 떠나고 나서야 발견되는 것인지...


한여름에는 부엌에서 개미떼가 줄지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집에서 밥을 자주 먹지 않고, 그릇도 많이 쓰지 않으니 설거지 텀이 길어졌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개미가 침투한 것이다. 몇 날 며칠을 손으로 잡고 구석구석을 닦아 보았지만 보란 듯이 다음날이면 개미떼는 싱크대 위를 졸졸졸 기어갔다. 강아지가 있어서 약을 여기저기 발라 놓는 게 위험할 것 같아서 유튜브, 쿠팡, 네이버를 다 뒤져서 작은 뚜껑 사이에 약을 짜서 놓아두는 제품을 발견했다. 다행히 쿠팡에서 로켓 배송이 가능해, 발견하고 즉시 주문해서 자기 전에 개미가 출몰했던 스폿 곳곳에 약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나니 효과는 대성공. 방심할 때면 나타나 속을 긁었던 개미들이 약을 치고 나서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개미 잡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변기 안에 줄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느 날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평소와 다르게 뭔가 ‘툭’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다시 레버를 움직여봤는데 힘이 하나도 없이 덜렁거리는 것이었다. 뭐가 문제인지는 몰라도,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했다. 한 번도 개봉해보지 않았던 변기 뚜껑을 열어보니, 뭔가 선이 축 쳐져있는 게 보였다. 뭔지는 몰라도 저게 문제구나 싶어 그대로 네이버에 ‘변기 줄’이라고 치니 나와 같은 문제를 겼은 사람들의 글이 수두룩 빽빽하게 나왔다. 변기 레버와 물이 오갈 수 있는 통로에 있는 마개를 이어주는 줄이 끊어진 거라 그걸 갈아주기만 하면 끝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쿠팡 새벽 배송으로 변기 줄을 주문해서 유튜브를 보면서 해결했다. 근데 이게 줄 길이를 잘 조절해야 수압이 잘 조절되기 때문에 은근히 어렵고 세심한 작업이다. 어쨌든, 줄은 2개 더 남아있으니 앞으로 변기가 2번은 더 고장 나도 끄떡없다.


마지막으로 차.

남편이 회사 다닐 시절에 타던 차를 두고 갔다. 차를 놀리는 게 아깝기도 하고, 출퇴근을 차로 하게 되면 1/3이나 시간 단축이 되기 때문에 운전 연수를 받고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만 할 줄 알았지 차 관리는 1도 몰랐기에 점검받을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신나서 강원도 양양도 가고, 거제도까지 왕복 운전을 하기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렇게 싱싱 달리고 다니던 어느 날 고속도로를 타고 퇴근을 하는데 자꾸 핸들이 한쪽으로 꺾이고 바퀴에도 뭐가 낀 것처럼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소리를 지르면서 겨우겨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손을 벌벌 떨면서 차를 확인해보니 한쪽 바퀴에 바람이 빠져서 차가 거의 주저앉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이 상황에 어버버 하면서 혼이 빠져나가 멍하게 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보험회사 이름을 알려줘서 전화를 하니, 10분도 되지 않아 레커차가 도착했다. 그 순간 나에게는 그 레커차 기사님이 하느님이고 아버지고 생명의 은인이었다. 바퀴가 완전히 찢어져서 스페어타이어로 갈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으나, 다음날 스페어타이어마저도 터졌고 그러고 한 3주 뒤에는 차 배터리가 나갔다. 1년에 6번 출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난 한 달 사이에 3번이나 받은 것이다. 그렇게 호되게 차 관리에 대해서도 배우고 셀프로 손세차장도 몇 번 다니면서 차 관리 왕이 되었다. 일단 다음 주에는 무료로 점검을 받을 수 있으니 또 점검받으러 갈 거다. 이젠 남편보다 내가 더 차를 잘 안다.


2. 건강하고 단단해졌다.

남편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 서른에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남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운동이 취미이자 습관이 되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그저 퍼져 있기만 했었는데 남편도 없고 하니 헬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약속이 없는 날이면 매일 헬스장에 갔고, 시간 때우기로 시작했던 운동이 이제는 취미이자 습관이 되었다. 남편이 없어 야식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으니, 야식도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더 건강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확실히 체력도 많이 늘어 청계산을 오를 때 한 번도 쉬지 않고 쭉 올라갈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인생 최저 몸무게도 찍고 서른의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는 바디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남편의 도전 덕에 나도 나만의 도전을 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이 좋으니 확실히 짜증도 줄었다!


3. 시간의 소중함을 매일 깨닫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제 00일 뒤면 남편이 오겠구나. 보겠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텍스트로 쓰니 매우 애틋해 보이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남편과 만나는 날을 기준으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만나기 전에는 남편과 만나기 전에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생각하고 정리한다. 소소하게는 집안일, 크게는 업무/다른 사람들과의 만나는 스케줄까지. 그리고 남편과 만났을 때는 - 보통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 2박 3일을 보낸다.- 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워서 최대한 알뜰살뜰하게 쓴다. 남편이 서울로 올 때면 서울에서 꼭 가야 하는 곳 리스트를 정리해 두고, 떨어져 있던 동안 같이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은 꼭꼭 한다. 이 역시 거창한 것은 아니고 등산하러 가기 사업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 몇 곳을 둘러보는 일, 보고 싶었던 영화를 꾹 참았다가 같이 보는 일 정도. 그리고 다시 남편을 보내야 할 때는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일부러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늦게까지 티브이를 본다. 늘 옆에 있을 때는 몰랐던, 유한한 시간을 최대한 가치 있게 끈적하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월간 부부 생활을 해야 하는지 기약 없는 상황에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싶다. 물론 외로움과 심심함, 불쑥불쑥 올라오는 억울함과 화를 감당할 길이 없어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며 얼굴을 붉히는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어쨌든 지난 10개월은 서로 수고했다고 토닥여 주고 싶을 만큼 잘해 온 것 같다. 앞으로도 굳건하길 바라며 -





이전 03화 안녕하세요, 안사람이지만 가장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