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4살,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하다

나의 일상을 뒤바꾼 전화 한 통

by 세라

"병원에 좀 바로 오실 수 있을까요?"


7월 3일 오전 11시 15분, 나의 일상을 완전히 뒤흔든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목요일이었을 뿐이다.

오전 10시, 사무실에 출근해서 매일 체크해야 하는 업무들을 한번 쭉 훑고 특이사항 체크를 완료한 시점이었다. 급한 업무들은 다 정리했으니 모닝커피를 한잔 마셔볼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낯설면서도 묘하게 눈에 익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18XX로 시작하는 번호라 스팸인가 싶었으나 이상하게 꼭 받아야 될 것만 같았다.


"네 여보세요?"

"XX님 되실까요? 여기 어제 건강 검진하셨던 병원이에요."


딱 여기까지만 해도, 어제 건강검진 중에 대장 내시경하면서 떼어갔다던 용종의 조직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온 건가-보다 했다. 별일이 아니니 전화로 안내 해주나 보다. 되게 빠르고 친절하네?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나온 예기치 못한 단어는 내 말문을 막아버렸다.


*아래부터의 기록은 굉장히 당황했던 가운데 주고받았던 대화로, 왜곡된 기억력에 의한 각색이 들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음.. 혈액 검사 결과가 먼저 나왔는데, 이상 수치가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추가 검사가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병원에 바로 오시는 게 가능할까요?"


"어떤.. 수치가 어떻게 이상한 대요?"


"CA19-9라는 수치가 있어요. 정상 범위가 37까지인데 지금 202가 나오셨어요. 이 수치가 통상적으로는 췌장암이나 췌장염, 담도암 쪽 관련 질환 가능성이 있을 때 올라가는 수치라.. 빨리 추적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 대화에서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췌장암, 담도암 두 단어와 내가 정상보다 5~6배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삼시세끼 정크 푸드만 먹는 주제에 주 2회 필라테스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 건강에 자만했던 벌을 이렇게 받는 것일까. 스트레스받는다고 반주로 맥주를 자주 마셨던 게 잘못되었던 걸까? 피곤하면 습관처럼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셨던 게 이렇게 된 걸까? 요즘 들어 부쩍 체력이 떨어지고 짜증이 쉽게 났던 것도 다 이 문제 때문이었을까. 혹시나 정말 암이면 어떡하지?... 그것도 암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다는 췌장암이면 어떡하지?


... 나, 정말 죽으면 어떡해?


부정적인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외래 예약 시간을 잡는 전화 통화가 다 끝나기도 전에 눈물부터 터져버렸다. 자리에 앉아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을 쓱쓱 닦아내고 리더님과 가장 가깝게 일하는 동료, 남편에게 내 상황을 알렸다. 당일 휴가를 올리고, 오늘 꼭 끝내야 하는 급한 업무들만 빠르게 처리하고 회사를 나섰다.





죽음은 늘,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어떻게 불시에 나에게 다가올 줄도 모르고, 삶에 대해 자만하고 있었다.

전화 한 통에도 이렇게나 당황할 거면서.


내 인생 처음으로

다른 이가 아닌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