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2018년 10월, 아주 긴 휴가를 얻었다.
그때의 나는 갑작스러운 이별들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껏 지나온 시간들도 앞으로 지나갈 시간들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교토로 떠났다.
기내용 트렁크에 필요한 것들만 가볍게 챙겨 버스에 올랐다. 가장 좋아하는 빛이 예쁜 시간에.
노란 밤을 눈에 담고 다음날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참 좋다.
한자와 일본어, 한국어, 영어가 섞여 애매하게 낯선 표지판들 속에서 외부인이 된 기분.
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교토타워. 일본 느낌 물신 나는 버스기사님과 숙소로 가는 길.
첫 일본 여행은 후쿠오카였다. 텐진 호르몬에서 먹은 음식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 질서 정연하고 깔끔한 이곳이 나에겐 다소 차갑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이웃나라 일본을 선택했지만 정갈한 거리를 걷다 보니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교토에서 묵었던 피스 호스텔 산조점. 깔끔한 건 당연하고 직원 모두 친절하고 시설도 편리했다.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일본어. 나마비루 쿠다 사이!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가 사부작사부작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역시 불편한 2층 침대. 도미토리에서 자며 배낭여행할 날이 또 있을까. 30대가 되니 돈을 더 쓰더라도 자꾸만 몸이 편한 걸 찾게 된다.
나는 이날 내 인생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동안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던 상실감과 거기에서 오는 허탈함. 그것이 홀로 낯선 곳으로 떠나온 지금의 내 모습 같아 답답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감정들을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그동안 꾹꾹 눌러뒀던 온갖 말들을 일기장에 쏟아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의지 하지 않고도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있다! 물론 아직도 매우 매우 매우 어렵다.
모든 걸 다 쏟아내고 홀가분한 아침. 내일이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라던 로또의 말이 사실이 되었네.
하필 태풍 콩레이가 왔던 10월의 교토. 귀여운 우산과 함께 아라시야마로 출발.
조용한 시골마을 느낌이라 해서 찾은 곳. 마침 비가 그쳐 따릉이를 빌렸다. 여행지에서 따릉이는 사랑. 그리고 예쁜 커플이 찍어주신 따릉이와 나!
줄이 엄청 긴 맛집을 피해 우연히 들어간 숨은 맛집.
청수사에 사람이 너무 많아 한적한 곳 찾아 도망가기. 푸릇푸릇 피톤치드 가득 산책!
교토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서 기사 아저씨가 직접 그려준 정류장 약도. 덕분에 이번 일본 여행은 좀 더 따스워졌어요.
돌아오는 날에도 교토의 노란 밤을 담아왔다. 나는 아직도 네가 낯설어.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