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프라하 직항 인아웃 티켓을 끊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덕분에 이후 여행을 할 땐 꼭 동선을 먼저 짜 보고 항공권을 구매한다.
그래도 마지막 여행지이니만큼 기간도 여유 있게 잡고, 그동안 짐 때문에 마음껏 하지 못한 쇼핑도 하기 위해 환전까지 두둑하게 해 뒀다.
편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한인민박을 이용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에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오스트리아에서 프라하로 오는 내내 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바로 관광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약을 먹고 좀 쉬기로 했다. 다행히 조금씩 기운을 차려 저녁도 먹을 겸 나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긴장했던 마음도 풀 겸, 아픈 별이를 위해 부담이 적은 한식을 추천한 나 자신아 반성해라. 이 저녁을 먹은 후 정말 지옥행 열차를 탔다. 배가 점점 아프기 시작하더니 괜찮았던 별이도 결국 다시 앓아누웠다. 여행하며 처음 사 먹은 한식인데 세상 속상하네 정말. 챙겨 온 비상약 하나씩 먹고 바로 기절한 그날 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배는 아팠지만 조금 나아진 것 같은(?) 기분에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했다. 미리 예약해둔 버스를 타고 프라하 근교 여행지인 체스키크롬로프로 떠났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또 속이 안 좋다. 정신을 놓고 화장실만 찾아 걸어가던 중 부슬부슬 비까지 온다. 젠장!
날씨가 급 추워져서 근처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체스키 성. 아기자기한 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체코의 상징 빨간 지붕들 너무 귀엽잖아.
성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점점 해가 보인다. 이 모습 못 보고 갔으면 어쩔 뻔했어. 너무 예뻤다.
근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굳어가고 있는 나. 슬슬 또 아프기 시작함.
심지어 날씨까지 다시 어두워지는 중. 갑자기 비 오고 바람 불고 온 몸이 덜덜 떨리면서 가누기 조차 힘들 정도.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정말 지옥을 맛봤다. 이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정말 지옥 그 자체. 배는 계속 아프고 몸살 기운에 근육통까지 와서 버티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버스에 화장실이 있었던 것이 신의 한 수. 없었으면 나 진짜 버스 세우고 뛰쳐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 통틀어 그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나.
체스키 여행 후 우리가 가장 많이 본 장면. 천장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파....
어지러운 침대 옆 아련하게 올려져 있는 약과 물. 다시 봐도 정말 절레절레.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다 죽어갈 듯 누워서 별이 살아있나 확인하는 것.
밤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챙겨 온 약을 하나 더 먹어봅니다. 정확한 병명을 모르니 그냥 감기 몸살약, 지사제 다 챙겨 먹었다. 병원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약국을 가긴 했는데 증상 설명을 제대로 못하니 그 약을 믿지도 못하겠고... 정말 총체적 난국. 돌이켜 보니 식중독 증상이었던 것 같은데 자연치유로 그 고통을 이겨낸 이슬과 별. 인간이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더라.
다음 날 아침, 관광을 위해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원래 체스키 여행 다음 날 독일 드레스덴으로 근교 여행 가려고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네.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어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
아파도 가족들 선물은 사야지... 프라하에서 쇼핑하려고 그동안 자린고비 마냥 아꼈단 말이야. 어디 멀리는 못 나가겠고 동네 마트에서 유명하다는 밀카 초콜릿을 열심히 담아본다. 너무 힘들어 바닥에 앉아 쉬다가 쇼핑하다가를 반복하니 직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괜찮아요 우리.
밀카 초콜릿과 외국 과자들로 가득 채워지는 캐리어와 배낭. 프라하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숙소에서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끝이 났다.
오후 비행기를 예약한 덕분에 마지막 날 잠시나마 프라하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예쁜 날씨 안녕!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길. 이때 몸도 안 좋은 데다 서로 예민해서 살짝 다툼이 있었다. 여행 가서 한 번쯤 다들 싸우고 그런다던데!
또 만난 빨간 지붕! 이번엔 완벽한 날씨도 함께다. 그래, 이런 게 동유럽 갬성이지.
체코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비투스 대성당. 저런 섬세한 건축물을 그 시대에 어떻게 만든 걸까. 스페인 여행 때도 그렇고 오히려 기술이 발달하기 전 건축물들이 더 예술성이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로운 프라하 모습. 잠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 여긴 못 지나치지. 체코에 왔으면 프라하성 스타벅스는 구경해줘야지.
민박에서 내내 죽만 먹다가 조심스레 도전해 본 외부음식(?)들. 아프진 않았지만 건방지게 마음 놓지 말자며 별이와 조심 또 조심. 정말 많이 힘들었나 보다 우리.
아니 우리 별이 며칠 사이에 살 빠진 거 실화냐. 안쓰럽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프라하에서 유명하다던 굴뚝 빵을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혹시나 탈이 날까 봐 꾹 참았다. 예상치 못한 병치레로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항상 별이와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하는 프라하 여행. 대부분의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으니 오히려 프라하에서의 경험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첫 해외 여행지였던 프라하.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했던 네 첫 모습이 난 아직도 생생해. 조금 간지럽지만 여긴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꼭 다시 오고 싶더라. 이 정도면 우리 꽤 친해진 것 같아. 트렁크 가득 담아온 밀카 초콜릿처럼 우리 다음엔 더 달달하게 만나자!
우리의 반짝이던 2016년, 안녕